中 ‘남중국해 섬 재판’ 필리핀에 패소 “천안문사태 이후 최대 외교 타격”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중국의 해상전력은 청일전쟁에서 일본의 연합함대에 완파당한 이래, 사실상 내놓을 만한 것이 없었다. 중국공산당 정권 수립 후 해군은 소련 해군을 본받아 성장했다. 그런데 소련 해군은 크론슈타트에서 제정러시아 해군이 몰락한 후 실전에서 존재를 보인 것이 없었고 전통적인 해양국가와 달리 기뢰전에 치중한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다. 그러나 근래에 중국 해군은 유화청 해군사령원의 지도 아래 크게 성장했다. 현재 중국 국방비는 미국의 1/6 수준에 불과한데도 세계 제2위다. 그중 많은 부분을 해군력 증강에 투입하며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다.
반면 일본 해상자위대는 보란 듯이 욱일승천기(旭日昇天旗)를 펄럭이며 확장되고 있다. 태평양전쟁 당시 세계 3대 해군국은 미국, 영국에 이어 일본이었다. 오늘날에도 서방에서 일본해군은 미국해군 다음이라고 할 수 있다.
해군은 기본적으로 기술군인데 진주만에서 태평양 함대를 수장시킨 전통과 역량은 그대로 온존되고 있다. 더욱이 태평양에서 미국과 일본해군은 ‘2인 3각’의 긴밀한 유대를 과시하고 있다.
아베로서는 최근의 참의원선거 압승으로 평화헌법 개정의 고지에 섰다. 다만 헌법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더라도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 현재 국민여론은 백중하나, 안보상황의 추이가 시시각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태평양에서 중국과 미국해군의 대치가 격랑을 일으키면 전쟁을 배제하는 헌법 제9조가 무리한 것이 아니냐는 여론이 높아질 것이다. 이래저래 아베는 득의양양(得意揚揚), 환호작약(歡呼雀躍)하게 생겼다.
남중국해 도서와 관련해 필리핀의 손을 들어준 헤이그 중재재판소는 강제력은 없으나 해양질서에서 세계의 상식과 논리를 대표한다. 중국이 이를 부정한다면 세계의 해양질서 속에서 살아갈 수 없다. 국내 한 일간지가 이번 사태를 ‘천안문 사태 이후 최대의 외교적 타격’이라고 표제를 붙인 것은 정확하다. 1960년대 중반 중국은 모택동이 벌인 문화혁명으로 암흑에 빠져 들어갔다. 후진타오와 시진핑은 이 시대를 거치며 성장하였다. 1979년 등소평은 개혁개방을 창도했다.
그러나 개혁개방은 민중의 정치개혁 요구로 발전되었고 급기야 1989년 천안문광장에서 폭발했다. 군사위 주석 등소평은 군으로 이 소요를 진압했지만 천안문사태는 한국의 광주항쟁에 비할 만한 비극이었다. 천안문사태는 중국의 암흑을 표출한다. 등소평의 유훈은 도광양회(韜光養晦)였다.
헤이그 해양중재재판소의 판결은 중국외교의 완패다. 중국으로서는 재판관 구성이 전 일본인 재판소장에 의해 된 것이라고 분을 풀어서 될 일이 아니다. 재판소는 중국의 9단선도 일축하였다. 세계가 중국에 등을 돌린 것이다. <인민일보>, <환구시보>는 애국운동을 절규하나 이것은 일본의 침략을 받을 당시와 같이 외부의 경멸을 살 뿐이다. 중국은 미국을 비판하나 세계는 역시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현실을 확인한 것뿐이다.
중국은 ‘新도광양회’로 돌아갈 것을 깊이 검토해야 한다. 남중국해에서 중국에 밀려오는 파고는 높다. 바야흐로 미국과 중국은 건곤일척(乾坤一擲)이다. 한국은 이 큰 그림에서 국가생존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