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북적대시’ 정책을 어떻게 바꾸느냐는 것은 북한정권의 절체절명 과제였다. 이를 위해 지금까지는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환을 요구해왔다. 이에 대해 한국과 미국은?주한미군을 철수시키려는 책략과 수순으로 간주하고 일축해왔다. 그리고 평화협정이 맺어지더라도 21세기 한미관계가 전략동맹으로 강화되는 과정에서 주한미군은 북미간의 문제 또는 남북간의 문제가 아니라 한미간의 문제라는 입장을 취해왔다.
북한의 생존을 위해 북미관계 정상화는 필수 전제조건이다. 북한은 1990년대 초 공산권이 붕괴되는 마당에서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계산으로 남북기본합의서를 맺었다. 그런데? 김영삼 전 대통령이 “민족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면서 비전향장기수 이인모를 북으로 송환해주는 뜻하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 나아가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으로부터는 핵과 미사일을 확보하는데 결정적인 현금을 손에 쥐었다.
그러나 더 이상의 남한과의 교류 협력은 북한에게 치명적인 독이 된다는 것을 김일성 왕조는 명확히 알고 있었다. 이러니 비핵 및 개방을 하면 1인당 소득 3000달러를 이루도록 돕겠다는 이명박 정부 시절 남북관계가 답보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북미수교는 다르다. 미국이 북한과 수교하면 곧 일본이 뒤따를 것인데 일본은 청구권 명목만으로도 수백억달러를 제공할 용의가 있다는 것을 밝힌 바 있다. 그렇게 되면 북한은 굳이 한국으로부터 지원을 받지 않고 중국에 기대지 않더라도 정권유지에 필요한 통치자금을 확보할 수 있고 개방에 필요한 자금도 확보할 수 있다. 공식수교에는 여러 절차와 조건이 필요하니 우선 북미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다.
미국은 장기적으로는, 북한을 중국에서 떼어내기 위해 북한에 개입(engage)하려 하지만, 당장은 북한과 핵 협상을 하려 한다. 북한핵의 완전 해체를 북핵문제의 해결이라고 한다면 이 문제는 풀릴 수 없다. 이것이 궁극적인 목적(goal)임은 분명하나 당장의 목표(objective)는 보다 현실적이고 단계적일 수 있다. 북한이 이스라엘에 치명적인 이란의 핵 보유를 돕는 것을 중지하는 것만으로도 미국은 거래(deal)를 할 수 있다. 북한이 미국과 핵군축 협상을 하자는 것은 이런 것을 노리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김정은의 최근 유별난 행동은 박근혜 정부를 길들이려는 것과 더불어 북미관계를 정상화하자고 미국의 문을 두드리는 요란스러운 노크이다. 당초 김일성이 핵을 보유하려는 것은 한반도에 대한 미군의 개입을 저지하려는 것이었으나 이제 와서는 미국과의 deal을 위한 유일(唯一)의, 그리고 최선(最善)의 카드가 바로 핵이라고 보는 것으로 핵전략이 진화해왔다. 북한이 핵이라도 가지고 있으니 미국이 상대하지 핵이 없는 북한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은 지난 20년 동안의 북미협상을 통하여 더욱 절실히 깨닫게 된 것이다.
미국과 북한이 핵을 놓고 벌이는 게임을 한국은 바라만 보고 있어야만 할 것인가 하고 비관할 필요는 없다. 어떤 과정을 통해서든 북한이 외부세계에 문을 열게 된다면 한반도 안정과 평화, 그리고 통일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열린 자세로, 이를 위해서 한국과 미국이 역할을 적절히 분담한다는 계산으로 지켜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에서는 이같은 큰 그림을 놓고 대북 ‘대전략’이 영글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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