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신뢰성과 정확성에 관하여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이 북조선공산당으로 탈바꿈한 날짜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위키 백과에 따르면 1946년 6월 22일 북조선분국 7차 회의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되어 있으나 김준엽·김창순의 기념비적 노작 <한국공산주의운동사> 권5 407쪽에는 이것이 1946년 4월 19일 이전일 것으로 추정하며 다음과 같이 정리되어 있다.
“북한의 유일한 관영통신인 조선중앙통신사가 발행한 최초의 연감도 1946년 4월 19일에 비로소 북조선공산당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그 이전에는 ‘조공북조선분국(朝共北朝鮮分局)’이라고 칭하였다. 예컨대 1946년 1월 2일에는 “朝共北朝鮮分局, 全評北朝鮮總局, 朝鮮民主靑年同盟, 平南農委, 朝鮮獨立同盟, 女性總同盟 등에서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에 대한 공동성명서 발표”라고 하였고, 또 같은 달 29일에는 조공북조선분국, 조선독립동맹, 조선민주당, 전평 북조선총국, 女盟, 朝鮮文協, 民靑, 平南人委, 朝民黨平南市委, 朝鮮農組北朝鮮聯盟委 등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의 전말을 천명하면서 전조선동포들에게 격하는 공동성명 발표‘라고 하였다.” (한자는 일부러 저자가 쓴 그대로를 실었다. 지금의 20, 30대는 머리가 아파서 읽기가 좀처럼 내키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 어문 교육의 실태인 점을 필자는 늘 안타깝게 생각한다)
이 사실에서 보면 1946년 1월 29일까지는 평양에는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만이 있었고, 북조선공산당은 존재하지 않았다. 1946년 4월 19일 이르러서야 비로소 “북조선공산당 소미 코뮤니케 제5호에 대하여 성명발표”라고 하였으므로, 정확히 말한다면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은 1946년 1월 29일에서 4월 19일 사이에 개칭한 것이 된다. 이것은 북한 관영통신의 기록이기 때문에 발표문서에 관한 한 그들로서는 최고권위의 문서이다.
김준엽·김창순의 한국공산주의운동사 전5권은 1962년부터 1976년 사이에 고려대 아시아문제연구소에서 간행된 “한국학의?이정표라 볼 수 있는 이 중요한 저작은 최고의 찬사를 받을 가치가 있다”고 하는 명저 중의 명저이다. 미국에서 서대숙 교수의 <The Korean Communist Movement, 1918~1948>은 1976년 간행되었고 스칼라피노와 이정식 교수의 <Communism in Korea 1, 2>는 1972년 간행되었다. 이 책들은 모든 학자들이 정확성과 엄밀성의 전형로 삼기에 족한 노작(勞作)이고 북한학에 관한 한 기본 텍스트이다.
이종석과 박명림의 서적들도 상당한 노작이지만 차원이 다르다. 문제는 이런 명저가 젊은 세대에는 썩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주체사상 등 말도 되지 않은 요설(妖舌)에 휘둘리는 것은 이와 같은 기본에 대한 공부가 부족한 때문이고 그 책임은 기성세대에 있다.
위키피디아가 정확을 기하려 노력하는 권위는 인정하지만, 원저자에 의한 리서치가 아니라 가용한 자료를 취합하여 정리한 백과사전이라는 성격을 파악한다면 ‘분국이 북조선공산당으로 개칭한 날짜가 1946년 6월 22일’이라는 것도 국내 어느 서적에서 뽑은 것일 것이다. 위키 백과의 문제점은 “김일성은 ‘분국’을 거부하고 위원장에 추대되었다”는 구절에서도 드러난다. 이때 김일성은 위원장이 된 것이 아니라 책임비서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기본적 용어의 사용에도 오류가 있다면 위키 백과의 신뢰성과 정확성은 더욱 떨어진다.
불과 수십년 전의 기본적 사실(fact)에 대한 것도 이런 착오가 생길진대 진리와 진실을 추구하는 학자나 언론인은 항상 겸손하고 정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