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조선공산당’과 ‘조선로동당’

조선공산당은 1925년 4월 결성되었다. 1917년 러시아에서 볼세비키 혁명이 일어나고 1921년 중국공산당이 창당된 것과 비교하면 조선에서도 비교적 일찍 공산당이 조직된 셈이다. 그러나 조선공산당은 일제의 가혹한 탄압과 지도력의 부족으로 1928년 코민테른의 ‘12월 테제’에 의해 해체되어 지하로 들어갔다. 이처럼 한인공산주의자들은 당을 가지지 못한 채 8·15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 기간의 지도적 인물은 단연 박헌영이었다. 1945년 9월 11일 지하에 남아 있던 장안파는 박헌영을 중심으로 조선공산당을 재건하였다.

소련 군정하에 있던 북한에서는 국내파 공산주의자 1945년 10월 13일 이북5도당 책임자 및 열성자 대회를 개최하고 김용범을 책임비서로 조선공산당북조선분국을 설치하기로 결정하였다. 북한에서는 10월10일을 당의 창건 기념일로 기념하고 있는데 이때 만들어진 것은 김일성을 수령으로 하는 조선로동당이 아니라 박헌영을 지도자로 하는 서울의 조선공산당 중앙에 충성하는 조선공산당북조선분국에 불과하였다. 조선공산당북조선분국은1945년 12월 17일 제3차 확대집행위원회를 개최하고 책임비서에 김일성을 선출하였다. 이때에도 김일성은 역시 북조선분국 비서로서 당중앙 총비서 박헌영에 복종해야 하는 하부기관이었다.

소련 군정 하에서 북한의 권력은 김일성에 주어졌는데 당 조직상으로는 서울의 당 중앙에 종속되어 있는 것이 부자연스러워 1946년 6월 조선공산당북조선분국은 북조선공산당으로 분리되었다. 이는 1946년 2월 8일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만들어져 북한에 정권기관이 정비된 것과 궤를 같이 한다. 북조선공산당은 다시 1946년 8월 당명을 북조선로동당으로 바꾸고 1949년 6월에 남조선로동당을 흡수하여 조선로동당이 되었다.

북한에서 이 과정을 알고 있는 사람은 선전담당비서 김기남 정도의 원로 밖에 없을 것이다. 박헌영은 존재 자체가 북한의 역사에서 말살되었다. 김일성이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서 1950년 10월에 발령한 명령에는 박헌영이 총정치국장으로 분명히 기록되어 있으나 박헌영이 숙청된 후 이런 기록은 ‘조국해방전쟁사’ 등에서 송두리째 말살되었다. 박헌영 만이 아니라 6·25 남침에서 공을 세운 연안파의 무정 김웅 방호산 등도 인민군의 역사에서 사라져 버렸다. 2000년 9월 남북국방부장관회담에 온 대좌 소장 등도 이들에 대해 아는 바가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이후의 여러 차례의 군사실무회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인민군이 창건된 것은 1948년 2월 8일로서 북한은 줄곧 2·8절을 건군절로 기념해 왔으나, 1975년부터는 김일성이 무장혁명대를 조직하였다는 1932년 4월 25일을 건군절로 바꾸었다. 거짓말도 자주 들으면 진실로 들리게 된다는 것은 공산당의 선전 선동의 기본전략이다. 이를 깨우치는 데는 기록을 스스로 살펴보아야 한다.

문제는, 눈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글을 읽지를 못하니 문맹이 따로 있는가? 오늘의 30~40대는 국한문 혼용으로 쓰여진 책과는 완전히 남이다. 1950~60년대의 사상, 문화, 예술의 보고(寶庫)인 <思想界>를 읽지 않고서 현대사를 논할 수 있는가? 1970년대에 출판된 대학 교과서도 읽기를 주저한다면 ‘배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오호라! 60~70대는 후학들을 계몽하고 진실을 알리는데 보다 힘차게 분기(奮起)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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