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다시 쓰는 6·25] ②’잊혀진 전쟁’ 아닌 ‘잊혀진 승리’
전쟁에 개입된 나라들이 그 입장에 따라 상이한 용어를 사용하여 온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 미국과 일본이 싸운 태평양 방면의 2차대전을 미국은 태평양전쟁이라고 부르고 일본은 (지금까지도) 대동아전쟁이라고 부르고 있다. 독소전쟁을 가리켜 소련은 대조국전쟁(大祖國戰爭)이라고 부르고 당시의 독일은 동부전역(東部戰役)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오래 동안 6·25사변이라고 불러 왔는데 이승만 정부가 북한의 기습남침에 당한 놀라움과 치욕을 사변(事變), 동란(動亂)이라고 불러 폄하(貶下)한 것이다. 북한은 조국해방전쟁(祖國解放戰爭),? 중국은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戰爭)이라고 부른다. 그 외의 나라에서는 주로 한국전쟁(the Korean War)이라고 불러왔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브루스 커밍스 등은 ‘한국인들의 전쟁’을 강조하는데, 이는 한국전쟁이 본질적으로 남북한 간의 내전이며 미국 중국 등의 참전은 외세가 여기에 개입한, 또는 남북한이 끌어들인 전쟁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공간전사와 국제정치학자들이 쓰는 한국전쟁은 ‘한국에서의 전쟁’을 뜻하며 남북한을 포함한 미국, 소련, 중국 등의 강대국과 여타 세계의 많은 나라가 직간접으로 관련된 국제전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얼마 전부터 ‘6·25전쟁’이라는 용어를 쓰기로 하였다. 1950년 6월 25일에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되었으나 사변, 또는 동란의 차원을 넘는 ‘전쟁’이라는 것을 규정한 것이다.
필자는 6·25전쟁은 한반도에서 벌어진 ‘잘못된 시기에, 잘못된 장소에서 치러진, 잘못된 전쟁’-이 아니라 2차대전 후 미·소를 축으로 한 동·서 양 진영이 한판 승부를 겨룬 ‘미니 세계대전’이었으며, 여기에는 이러한 대결을 유인하고 촉발시킨 민족내부의 갈등요인도 작용했다고 보는 것이 적확(的確)하다고 본다.
한국전쟁 당시 소련 공군이 위장을 하고 직접 전투에 참가-압록강에서의 미그 회랑전투- 하였으며, 중국은 건국한 지 일천한 상태에서 한국전에 참전하기까지 그 부담과 희생에 대해 모택동이 얼마나 노심초사하였던가는 잘 알려져 있다.? 미국도 당시 12개 사단 가운데 7개 사단이 한국전에 투입되어 유럽에는 1개 사단 밖에 배치하지 못하였고 본토에는 2개 사단의 예비병력 밖에 보유하지 못하였다.
이처럼 소련 중국 미국이 직접 대결한 한국전쟁은 ‘미니 세계대전‘이라고 불러 손색이 없다. 한국전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미국은 유럽에서 서독을 재무장하고 NATO를 결성하는 등 소련과의 대결 준비에 박차를 가했는 바, 이는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완벽한 승리로 냉전을 끝내게 되는 기반이 되었던 것이다.
한달 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일이 다가온다. 한국전쟁은 ‘잊혀진 전쟁’이 아니라 ‘잊혀진 승리’였다. 미국에서도 한국전쟁의 기억은 잊고 싶은 쓰디 쓴 기억이 많은 전쟁이었기에 오래 동안 ‘the Forgotten War’라고 불러왔으나, 이제는 한국전쟁이 냉전 승리의 초석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the Forgotten Victory’ 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