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다시쓰는 6·25] ⑫ 미군개입과 김일성의 ‘외통수’
서울이 함락된 직후 6월 29일 박헌영은 남한의 노동당원 및 인민들에게 인민군의 진격에 호응하여 궐기하라는 방송연설을 하였는데, 여기에서 박헌영은 전황의 전개에 대해 매우 낙관적인 전망을 하고? 있었다.
“수도해방은 실로 이번 전쟁의 승패를 사실적으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벌써 미제국주의자들은 남반부로부터 총퇴각을 시작하였으며 그의 침략도구인 유엔 조선위원단도 동경으로 달아났습니다. 이승만 역도들은 서울을 버리고 도망질 했습니다. 남반부 전체의 완전해방은 오직 시간문제입니다.”
6월 29일 B-29 27대의 평양 공습은 이와 같은 낙관에 찬물을 끼얹는 충격이었고 전쟁의 전도가 만만치 않으리라는 것을 확인하게 하는 치명적 상황 돌출이었다고 보여진다. 7월 5일의 스미스 부대의 출현은 이를 다시 확인시켜 주었을 것이다. 김일성은 7월 8일 방송연설에서 전국이 급속도로 변화되고 있는데 대한 심각한 우려를 절절히 토해내고 있다.
“왜 미제국주의자들은 우리 조국강토에 자기의 군대를 들여보내고 있습니까? 무엇 때문에 이 약탈적 흡혈귀들은 우리나라의 신성한 영토를 침범하고 있습니까?”
“미제국주의자들은 우리 조국과 우리 인민을 반대하여 무력침공을 개시하였습니다. 조선인민들은 일찍이 북미합중국으로 영토를 촌토도 침범한 일이 없으며 그 자주권을 추호도 침해한 일이 없습니다. 우리 인민은 미국 인민들에 대하여 어떤 적대적 행동도 취한 일이 없으며 북미합중국의 평화적 주민들의 생명, 재산을 한 번도 침해한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미제국주의자들은 우리 영토에 자기의 군대를 들여보내서 우리나라 내정에 대한 군사적 간섭을 감행하며 우리의 아름다운 조국강토를 피로 물들이고 있습니까?”
“남조선에서 미 제국주의자들의 충실한 도구로서 미국의 정책을 실시하여 오던 이승만도당이 패망하자 미국강도들은 조선인민에 대한 무력침범을 노골화하고 있습니다. 만일 미제국주의자들의 직접적인 무력간섭이 없었더라면 그 주구들이 일으킨 동족상잔의 내란은 끝나고 우리 조국은 벌써 통일되었을 것이며 남반부 인민들은 미제와 이승만 도당의 경찰통치에서 완전히 해방되었을 것입니다.”
박헌영이 6월 29일 연설에서 “남반부 전체의 해방은 오직 시간문제일 뿐입니다”고 했던 것이나 김일성이 7월 8일 연설에서 “미제국주의자들의 직접적인 무력간섭이 없었더라면 우리 조국은 벌써 통일되었을 것입니다”고 한 단언은 같은 맥락에서 파악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보면 눈앞에 있던 남조선해방이 미군의 개입으로 돌연 심각한 어려움에 처하게 된 데에 대한 김일성의 원망(怨望)과 분노, 위기의식이 손에 잡힐 듯이 드러나고 있다. 김일성이 최고사령관을 맡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취해진 비상조치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