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다시쓰는 6·25] ⑤’커밍스 수정주의’의 재수정
6월 24일자 <문화일보> 보도를 발췌하여 인용한다.
수정주의 사관에 기초해 한국전쟁사를 연구해온 브루스 커밍스 미국 시카고 대학 석좌교수가 “1950년 6월 25일 일어난 한국전쟁은 남침이며 미국이 의도적으로 전쟁을 유도하지도 않았다”고 20일 밝혀 주목된다. “나는 수정주의자도 아니고 미국과 남한이 북한을 침공했다고 말한 적도 없다”면서 “전두환 정권이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을 1985년부터 그렇게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커밍스 교수는 1981년과 1990년에 펴낸 <한국전쟁의 기원, 1,2권>에서 1949년 8월 옹진, 개성, 철원 등지에서 남북간 군사적 충돌이 격화됐고 남한의 군사적 자극이 한국전쟁을 촉발시킨 원인 중 하나라고 주장하면서 “한국전쟁 발발에는 미국과 한국도 큰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같은 그의 주장은 6·25전쟁에 대한 수정주의적 사관으로 불리워졌고 일부 좌파 인사들이 주장하는 6·25 북침설의 핵심적 근거가 되기도 했다.
커밍스 교수는 <서울신문> 인터뷰에서 “내가 쓴 한국전쟁의 기원은 1950년 6월에 전쟁이 시작됐다는 기존의 관념을 허물려는 시도였다”면서 “한국전쟁은 1945년 미국이 한반도 분단을 일방적으로 결정한 이후 일어난 일련의 사태와 일제강점기에 불거진 한반도 내부 모순에 뿌리를 둔만큼 다각도로 원인을 진단해야 한다”고 해명했다. 즉 수정주의의 수정이다.
이것으로 일세를 풍미한 커밍스는 갔다. 그의 나이 70세로 털고 간다는 점에서는 이해가 가나, 그러면서도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려 한 흔적은 눈에 띤다. 전라도 말로 “만만한 것이 홍어 X”이라고 난데없이 ‘전두환 운운’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동안 김학준 교수가 커밍스를 한국 학계에 소개한 대표적 학자이니 커밍스의 전향을 접한 소회는 어떤 것인지 들어보자. 한국 학자들의 커밍스 콤플렉스를 넘어섰다고 하여 ‘나오자마자 고전이 된’ <한국1950: 전쟁과 평화>의 저자 박명림도 마찬가지다. 특히, 박명림의 이승만에 대한 평가는 날카로우면서도 신랄하다.
전쟁이 시작되자 남한의 최고지도자 이승만은 서울에 있는 것처럼 방송하여 민중들을 감쪽같이 속인 채 도망치며 (고딕 필자) 전쟁을 세계적 전쟁으로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미국과 손잡자 전쟁은, 적어도 군사적 수준에서는 이승만의 전쟁에서 미국의 전쟁이 되었다. 그것은 전쟁을 세계적 전쟁으로 만들어 한국방어를 동아시아 전체의 방어문제로 상승시키려 한 전전(戰前) 이승만식 전략의 성공이었다. <한국1950:전쟁과 평화>(p.736)
<해방전후사의 인식>으로 낙양의 지가를 올린 강만길도 마땅히 할 말이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