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DMZ, 남북관계 새 장 여는 통로로 ‘최적’
김정은 체제가 순항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장담 못한다. 그러나 일단은 김정은 체제 아래서라도 북한동포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게 개혁·개방에 나서도록 유도하고 지원하는 것이 우리의 대북전략과 통일정책의 큰 줄기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국과 중국, 유엔, 그밖에 세계 여러 나라도 이 방향에서 역할을 나누어 노력해야 한다.
문제는 북한체제 자체가 전반적으로 노쇠하였다는 것이다. 김일성-김정일 세대는 1945년부터 60년 이상 지속되었다. 소련에서 브레즈네프가 죽자 그 뒤를 이은 안드로포프, 체르넨코도 각각 수년을 넘기지 못하고 사라졌는데 서방에서는 이것을 ‘사자(死者)의 죽음’이라고 불렀다. 북한도 이런 경향을 보이고 있다. 최근 김경희의 와병설이 돌았지만, 그밖에도 북한의 당정군 간부들은 대부분 수십년 이상 그 자리에 있었다. 김경희와 더불어 김정은을 실질적으로 떠받치고 있는 행정부장 장성택만 하더라도 5공시절부터 우리와 상대한 사람이다. 2000년 남북국방장관회담에 온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은 회담 당시 이미 10년 이상 그 자리에 있었고 최근에야 노령으로 현직에서 물러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 마디로 북한의 권력 엘리트는 너무 늙어서 개혁을 추진하기에는 심신양면으로 역불급(力不及)이다. 스위스에서 교육받은 ‘젊은 지도자’ 김정은이 부인 리설주를 등장시키는 등 조금은 특이한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이들 노쇠한 권력 엘리트들을 이끌고 얼마나 효율적으로 개혁·개방에 나설 수 있을지는 의문이고 걱정이다.
김정은의 개혁개방을 실질적으로, 그리고 가장 효율적으로 도울 수 있는 의지와 수단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다. 북한은 중국에 상당한 기대를 하고 있겠지만, 경험에서 보듯 중국의 지원은 한정되어 있다. 북한은 선군체제 아래에서 모든 것을 희생하여 핵실험을 하고 장거리 미사일을 날리고는 있지만 경제·산업수준은 아프리카와 캄보디아 등 열악한 동남아 국가수준이다. 이들 나라에서는 한국의 경제개발의 경험, 특히 새마을운동은 일대 붐을 이루고 있다. 우리는 이들 나라와 함께, 북한도 마치 부모가 걸음마를 가르치듯이 지도하고 원조해나가야 한다.
이제 남북간에 실질적인 회담을 추진할 계절이 왔다. 새 정부 들어 남북간의 새로운 관계를 조정하기 위한 협상은 어떤 형태, 차원에서도 있게 마련이다. 2000년 경의선 동해선 철도·도로 연결을 위한 남북군사실무회담은 좋은 보기를 제공한다. 회담을 하여 가면서 상대에 대한 파악도 하고 의제와 회담전략도 진화해 간다는 것을 서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남북회담의 긍정적 효과를 인정하더라도 우선, 남북간에 누가 먼저 손을 내미는가 하는 것이 문제다. 이제는 이를 좀 더 대승적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영국 우체국 차량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쓰여져 있는 것을 보았다. “I don’t write a letter because he doesn‘t write a letter to me.” 삼촌이 편지를 안 쓰니 나도 편지를 안 쓴다는 것인데, 삼촌은 삼촌대로 조카가 편지를 안 쓰니 나도 편지를 쓰지 않는다고 할 것 아닌가? 이래서는 삼촌과 조카 사이에 편지가 오고 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누군들 먼저 편지를 쓰라고 권유하는 켐페인을 영국 사람다운 위트 있는 문구와 방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남북간에도 이와 똑 같다. 서로 선행조건을 요구하다보면 회담은 종내 이루어지지 않는다. 결국 우리가 ‘강자(어른)의 입장’에서 북한에 손을 내밀어주자. 이와 같이 하여 남북이 일단 회담장에 앉으면 같이 앉았다는 것 자체가 의의가 있다.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다. 협상은 주고받는 것이다. “양측은 많은 협상을 하였으나,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다는 것에 합의했다”(We agreed to disagree)는 것이 모든 협상-남북 간이든, 한미 간이든, 여야 간이든-의 기본자세다.
그동안 남북 간에는 수많은 회담이 오고 갔다. 국방부장관 회담이 있었고 수십 차에 걸친 군사실무회담도 있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회담도 있지만 대부분은 일방적인 선전공세인 경우도 많았고 국내외의 여론에 따라 겉치레로 회담을 한 경우도 많았다. 남북관계가 정체기에 있는 지금 그동안 각종 남북회담에 참석했던 남북 ’회담꾼’들은 그래도 “없는 것 보다는 나았다”(better than nothing)고 회고하리라고 본다.
남북회담의 실질적 성과를 올리기 위해서는 등소평 이래 중국이 양안(兩岸)관계에서 적용하는 입장, 구동존이(求同存異) 즉 서로 다른 것은 일단 놓아두고 같은 것부터 찾는다-는 자세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공동의 관심사, 서로 간에 공동의 이익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을 찾는다면 돌파구는 분명히 찾아질 수 있다. (남에서는) 북핵문제, (북에서는) 평화체제전환 등은 말하자면 경성(硬性) 의제다.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이고 어떤 방식으로건, 어느 회담에서건, 반드시 언급해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만족할만한 해결이 어렵고 시일이 걸리는 문제이다. 아마 통일이 될 때까지 해결되지 않는 문제일 수도 있다. 이에 비해 DMZ의 평화적 이용은, 말하자면 연성(軟性) 의제다. 해결하려는 의지만 있으면 가능한 문제다.
비무장지대는 분단의 현실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며, 남과 북이 가까우면서도 얼마나 먼 지 절감하게 하여주는 세계에 유례가 없는 지역이다.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채널을 다양화한다는 것도 시도해 봄직하다. 예를 들어, 도(道)와 군(郡) 단위별로 남북이 서로의 맞닿은 측이 직접 나서는 것이다. 물론 북한에서는 통전부가, 우리 측에서는 통일부가 전반적인 조정·통제를 하겠지만 직접 마주보고 있는 사람들끼리 논의한다는 방법이 보다 신선하고 실질적일 수 있다. 이는 마치 지방자치가 중앙정부의 일원화된 행정에 비해 지방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이점을 갖는 것과 마찬가지다.
‘코리아DMZ협의회’에서 그동안 꾸준히 쌓아온 자료와 경험은 놀라운 것이다. 생태계 보존과 활용, 문화와 역사탐방, 관광구간의 개척 등 당장 어떻게 실현될지를 모르는 꿈과 비전을 가지고 꾸준히 계속해온 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는 기본적으로 우리의 산과 강,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사랑하는 심성이 가득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들이 모여 남과 북의 마음이 합치는, 즉, 통일로 가는 발걸음이 되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DMZ의 평화적 이용을 제창하고 나섰다. 가시적인 성과가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