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스포츠 거목’ 김운용 죽음과 ‘부음기사’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어떤 이는 세계 태권도계의 대부로, 어떤 이는 IOC위원으로, 어떤 이는 스포츠계의 거목으로 또 다른 이는 비리온상으로 그를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상당수는 아예 그의 이름조차 알지 못할 것이다.

그의 현직은 두가지가 남아있다. 대한체육회?고문과?대한태권도협회?명예회장. 지난 3일 새벽 86세를 일기로 별세한 김운용씨 얘기다.

그만큼 파란만장의 삶에 엇갈리는 평가를 받는 이도 드물 것이다. 추석연휴 한 가운데 작고한 그의 죽음은 일부 방송과 인터넷매체에서 간단히 처리됐다. 그가 숨을 거둘 시간에 신문은 그날치 최종판 윤전기 작동이 끝났다. 그의 부음소식은 종이매체엔 아직 인쇄돼 나오지 않았다. 9일자 신문에는 실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때 태권도를 시작으로 대한체육계 그리고 세계스포츠계를 주름잡던 거인의 마지막은 그다지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연휴 탓만 아닐 터다. 미디어 환경이 바뀐 탓이다. 다루는 소재와 방식이 크게 바뀐 까닭이다. 속보 위주에다 경쟁에 내몰리면서 정작 필요한 취재가 부족한 탓도 있다.

필자는 그의 삶을 조망할 만한 경험을 갖지 못하고 있다. 그를 개인적으로 만난 것은 단 한번 2002년 봄 그가 체육계의 공직에서 물러난 후였다. 문병하면서 만난 30분 채 안되는 시간, 그는 회한이 많은 듯했지만 말로 옮기지는 않았다. 스포츠맨답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후에도 그의 삶은 평탄하기보다 곡절로 이어졌다.

기자는 연세 많으신 분들을 뵈면 ‘언젠가 돌아가실 텐데, 저분 삶은 어떻게 요약될까?’ 하는 궁금증을 갖곤 한다. 그런데, 하필 김운용에 대해선 그런 생각을 해오지 못했다. 지난 3일 낮 그의 죽음을 접하곤 뭔가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중압감 같은 게 들었다. 그리고 그와 관련한 기사들을 조회하고, 그를 만났던 순간을 반복해 되살려냈지만 역시 그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무리였다.

하여 김운용의 삶과 죽음에 관한 글은 비교적 정보를 풍부히 담은 글(아래 링크)을 인용하고, 필자는 평소 가져온 부음기사에 대한 관점 혹은 입장을 소개하려 한다.

먼저 미국 유머를 하나 소개한다. 어느 시골마을 신문이 제임스의 부음기사를 실었다. 50대 농부인 제임스는 이웃한테서 자신의 사망소식이 신문에 났다는 것을 알고서 신문사 편집국에 달려가 “산 사람을 죽었다고 했으니 어쩔 셈이냐. 책임지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듣고 있던 편집국장, 눈만 껌벅이더니 “걱정말고 돌아가 밭일이나 마저 하세요. 내일 아침 출생난에 실어드릴 테니···”

1971년께 <여성동아> 부록으로 실린 ‘동서유머집’에서 읽은 줄거리다. 지금도 사람이 죽으면 그의 생애를 조명하는 스토리텔링으로 된 기사들을 미국신문에선 자주 볼 수 있다. 거기서는 사망자가 시장이든, 농부든 혹은 주부든 상관없이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사망날짜에 구애받지 않고 △출세한 유족이 아니라 사망자 본인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물론 억지로 이야기를 꾸미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우리와 정말 많이 비교된다. 우린 참 부끄러운 수준이다. 어떻게 하면 될까? 지면제약이 없는 온라인의 장점이 부음기사에서 최대한 발휘될 수 있다고 본다. 언론사는 망자의 삶을 객관적인 방식으로 서술하고 수집 및 공개 가능한 비주얼 자료를 묶어 일차로 보도한다. 1차 보도 후 가족을 비롯한 지인들이 기사에 대해 댓글을 달 것이다. 댓글 중에는 전혀 무관한 사람들이 쓴 것도 있을 것이다. 인터넷 부음기사는 바로 추모로 연결된다. 또 공식적인 장례절차 이후에도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지금껏 우리가 써온 부음기사, 그리고 장례문화 이대로 좋은가? 이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스포츠계의 풍운다 김운용이 기자였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풀까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그는 무에서 유를,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게 참 많은 분이기 때문이다.

삼가 김운용 총재의 명복을 빈다.

http://news1.kr/articles/?3116999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