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행정의 달인’ 고건의 대북관을 보며

두 번에 걸쳐 국무총리를 지낸, 자타가 공인하는 ‘행정의 달인’ 고건 총리의 회고록이 <중앙일보>에 연재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노무현이 탄핵을 받아 대통령 직무대행을 하고 있을 때 북한 평북 용천에서 대규모 열차 폭발사고가 터졌는데 이를 판단하고 대처하는 대목이 흥미롭고 놀랍다. 무엇보다도, 고건은 만약 김정일이 죽었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이 컸다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사는 보통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김정일이 죽었다고 하면 북한에 어떤 형태로든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고 이는 장기적으로는 바람직한 방향이겠거니 하고 생각하는 것이 맞는 것 아닌가? 아무리 햇볕정책을 추진한 김대중 정부에서 총리를 지낸 사람이라고 하지만 남북관계를 보는 기본 시각이 이렇게 보통 사람과 다를 수가 있는가?

독재체제가 정상적인 체제로 진입하는 데는 많은 진통이 따른다. 소련이 1953년 스탈린의 사망 이래 말렌코프, 흐루시초프, 브레즈네프, 안드로포프, 체르넨코 등을 거쳐 개혁 개방을 내세운 고르바초프와 옐친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에는 50여년이 걸렸다. 중국도 등소평 이래 장쩌민, 후진타오 체제를 이어 시진핑 체제에서 이제야 인치(人治)가 아닌 법치(法治)를 앞세우는 정상국가로 진입하고 있다. 한국도 1979년 박정희 유신정권의 해체로부터 1987년의 6·10 시민혁명을 거쳐 오늘의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30여년이 흘렀다.

북한도 반드시 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축약(縮約)될 수는 있겠지만 건너뛸 수는 없다. 그 기폭제는 김일성 왕가의 몰락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은 필연적이다. 따라서 김정일이 폭살되었다면 북한 개방의 첫 단계로 보고 기대해야 마땅하다. 우리가 할 일은 이를 지켜보면서 도울 수 있는 일은 도우는 일이다. 목마른 자를 우물가에 데려다줄 수는 있으나 물을 떠서 삼키는 것은 목마른 자 스스로 할 수 밖에 없다는 자세로 북한을 지혜롭게 돕는 일이다.

고건은 북한이 권력 진공상태로 발전하게 되면 큰일이라고 생각했다는데 북한 급변사태에 대한 준비가 그렇게 안 되어 있었다는 말인가? 북한 급변사태에 대한 연구와 준비는 국방부에서는 이미 김영삼 정부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에서도 통일부 국정원 NSC 차원에서 심도 있게 진행되어 왔다. 그런데 고건 총리만이 아니고 통일부 국방부 장관 등도 이에 대해 책임성 있는 답변을 하지 못했다니 이는 천안함 폭침시 안보관계장관들이 두 시간 동안이나 우왕좌왕(右往左往)하고 있었다는 것을 연상케 하는 한심한 일이다.

이 에피소드(?)에서 새삼 확인하게 되는 것은 국가를 실제로 움직여 나가는 엘리트 집단인 관료들 간에도 상호소통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외교안보부문과 재정기획부문, 내무행정부문, 법무부문이 각각의 왕국 속에 안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일본에서는 서기관으로 승진해서 과장 보직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타 성청(省廳)에서 3년 근무를 거쳐야 한다. 평생을 MOFIA로 살아 온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국방부 차관이 된다는 것은 한국에서나 있는 일이다. 또 하나는 장관들이 실무국장들의 보고를 건성으로 듣고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한마디로, 아래 사람의 보고를 들으면서도 생각은 딴 데 가 있다는 것이다.

‘행정의 달인’의 회고를 접하며 한국의 문관 관료들의 안보와 통일에 대한 관심과 준비를 엿보게 되어 씁쓸하고 아쉬운? 생각을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