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선거의 여왕’ 통치는 초년병···박근혜의 해답은 어디?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갈린다. 자유와 인권을 짓밟은 독재자로 저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우리를 만성적 빈곤에서 벗어나게 한 영웅으로 칭송하는 사람도 많다. 모두 결과만 가지고 이야기하고 그 과정에 있었던 일들, 특히? 산업화를 이룰 때까지 그가 어떻게 준비하고 조직하고 감독하여 결과를 이루었던가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 즉 박정희 리더십의 실체를 정밀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오늘날 한국사람 중에 많지 않다. 오히려 등소평이나 이광요 등이 박정희 리더십을 깊이 연구하여 성과를 거두었다. 지난번 대선에서 박정희에 대한 논란이 많았지만 이대로 피상적으로 지나치기에는 아쉬움이 많다. 특히 박근혜가 앞으로 국정을 구상하고 펼쳐나가는데?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통치 실체에 대한 겸손하면서도 사려 깊은 연구는 참으로 중요하다.

박근혜 당선인은 아버지 박정희를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특히 권력의 생리와 무상함에 대해 뼈에 사무친 정리(情理)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정리는 인간이 나이가 들면 누구나 가지게 되는 소박한 경험일 따름이다.?정치는 권력을 얻는 과정이다. 통치는 권력을 사용하여 이루는 결과다. 민주주의에서 정치는 말로 이루어진다. 처칠은 의회에서, 레닌은 거리에서의 사자후(獅子吼)로 권력을 잡았다. 김대중은 1971년 대선과정에서의 빼어난 웅변으로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1998년 종내 대통령에 이르는 집권의 기초를 잡았다. 이처럼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선거에서 말로 인심을 얻고 표를 얻는다. 박정희는 생리적으로 이러한 종류의 정치를 극도로 혐오하였다. 10월유신은 여기에서 나온 편법이었다.

박정희는 최고의 교육기관인 사범학교와 육사를 나왔다. 모두 실질을 숭상하고 검소 질박(儉素 質朴)한 생활태도를 길러주는 교육기관이었다.?그는?과학적 사고와 합리적 조직운영을 익혔다. 야당의 본류인 한민당의 양반 토호출신의 신사들과는 출신과 생리가 달랐다. 박정희는 산업화를 조직화해 나가는데 손발이 되는 관료를 먼저 훈련시켰다. 70년대에는 자주국방을 추진하는데?이병형 장군 같은 유능한 군인과 육사 출신의 미국 유학 과학자들을 발탁하여 활용하였다. 일본군 포병 소좌 출신의 신응균 장군을 발탁하여 국방과학연구소를 시작하였다. 초도 순시에서 기관총을 국산화하는데 얼마나 걸리겠느냐고 묻자 10년이 걸릴 것이라는 답이 나왔다. 박 대통령은 두말할 것도 없이, “올해 크리스마스까지 만들어 갔다 놓아라. 안되면 국과연은 해산이다”고 선언하였다.

혼비백산한 과학자들은 백방으로 뛰어 청계천 등에서 기관총 부속 등을 구해 조립해서 마침내 크리스마스까지 갖다 놓았다. 박정희는 그 사정을 짐작하면서도 짐짓, “그것 봐. 하면 되지 않나?”라고 하며 격려했다. (김성진 박사에게서 직접 들은 일화다) ‘하면 된다’는 박정희 시대의 국민정신은 이렇게 하여 길러진 것이다. 산업화는 이런 지도자 밑에서 우리가 다 같이 이룩한 것이다.

박근혜 당선인은 통치는 이제 시작한다는 겸손한 의식으로 출발하여야 한다. ‘선거의 여왕’은 이제까지 통했다. 이제부터는 통치의 초년생 박근혜를 보좌하는 국무총리가 중요하다. 대통령과 총리는 이인삼각(二人三脚)과 같이 완벽한 소통을 하면서 긴밀한 국정운영을 도모해야 한다.?박근혜는 먼저 박정희 대통령의 통치력의 비밀을 구명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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