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남북군사회담 김영철 상장께 드리는 글

김영철 상장!

엊그제 남북장성급 회담에 귀하가 대표로 나온 것을 보니 여러 생각이 드는군요. 1995년부터 2004년까지 10년 동안 귀하와 적수로서 다투어왔던 나는 전역한 지 벌써 10년인데 나보다 5년 위인 귀하는 3성 장군으로 한창이고 나의 한참 후배인 류제승 국방부 정책실장과 대좌하여 회담을 하고 있으니 북한의 간부정책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북한의 군의 오늘이 이러한 간부정책의 덕분이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되는군요. 2007년 김용순에 이어 통일전선부장이 된 백전노장의 김양건이 이번 방남에 끼인 것을 보고 느꼈던 것도 이와 같소.

그러고 보니 1995년 강릉지역에 잠수함 침투사건으로부터 귀하와 나의 승부가 시작되었지요. 그러나 귀하의 존재와 역할을 확인한 것은 사실 2000년 9월 제주도에서의 남북국방부장관회담 부터였소. 그날 밤 회담을 마무리하는 공동성명을 가지고 협상할 때 귀측 대표는 유영철 대좌였고 우리 측 실무대표는 나였었지요. 외무부의 송민순 북미국장, 김희상 국방대학교 총장도 있었지만, 조성태 장관에게 결재를 받아야 할 실무대표는 나였지요.

유 대좌와 내가 새벽 2시경 문안을 확정짓고 상부에 결심을 받는 것만 남았는데, 우리는 조장관이 임동원 수석과 협의하여 대통령의 재가를 바로 받을 수 있었으나, 귀측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시간을 끌기에 의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이 바로 옆에 있는데 그 이상 결재 라인이 왜 이리 복잡한가? 혹시 총정치국장 조명록 차수를 거쳐 국방위원장에 올라가느라고 이리 시간이 걸리는가 하고 짐작하던 기억이 나는군요. 그 후 남북군사실무회담 등 30여 차례, 수백 시간을 귀측과 회담하다 보니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결재를 받은 것은 수십년 동안 대남업무에 정통한 귀소였고 김일철, 조명록은 형식적 채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남북 군사실무회담이나 장성급 회담에서, 회담장에는 누가 나왔든지 회담을 사실상 지휘한 사람은 귀하와 나였지요. 영화에서 배우는 화려한 각광을 받으나, 결국은 감독이 작품의 모든 것을 연출하고 이에 대해 최종 책임을 지듯이, 귀하와 나는 10년 동안 남북군사회담 진행에서 실질적 책임을 졌던 것을 잊을 수가 없군요. 그러나 둘의 입장은 사뭇 달랐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지요. 귀하는 자기 경험과 논리에 따른 주장을 국방위원장에게만 납득시키면 되었지만, 나는 국방부와 행정부, 유엔사, 국회, 언론 등 여론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느라 무진 애를 써야했지요. 그에 비하면 귀소와 無泊 3일에 걸친 밀고 당기기는 차라리 약과였지요.

박근혜 대통령도 밝혔듯이, “전쟁 중에도 회담은 한다”는 정신으로, 또는 “We agreed to disagree”가 외교의 본질이라는 점에서 남북대화는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낫다”는 자세로, 그리고 “남과 북은 통일을 향해 가는 가운데의 잠정적 특수관계”라는 남북기본합의서의 대명제를 두고 두고 씹어보면서 남북관계를 풀어 가는데 귀소도 한 몫 하기를 바라오.

당에서 나온 최룡해나 황병서보다는 오랜 동안 남북군사대화를 해온 귀하가 더 남북관계를 풀어 나가는데 성과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드는군요. 그럼 오늘은 이만 줄입니다. 예비역 소장 김국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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