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겸 칼럼] ‘쓰레기만두’ CJ와 ‘페이퍼컴퍼니’

조삼모사(朝三暮四)가 횡행한다는 느낌이다. 나라 안팎에 관련 된 큰일을 이미 하기로 약속해 놓고서는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들 시끄럽다. 경솔하다. 진득함이 아쉽다. 여기서 이렇게 하겠다고 얘기하면 저기서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한 곳에서도 두 말이 나와 뭘 믿고 움직여야 할지 헷갈린다. 경박하다. 잔득함이 그립다. 뒤꼭지에 부은 물은 발뒤꿈치까지 흐르기(灌頭之水 流下足底 ; 旬五志, 灌頂之水 必流于趾 ; 耳淡續纂) 마련이다. 저절로 시정 장사치와 여염 갑남을녀(閭閻 甲男乙女)가 물든다.

출퇴근길에 남산 산기슭 호텔 옆 큰 식품회사 본사 앞을 지난다. 그 회사 주차장에서 나오는 승용차가 좌회전해서 남산방향으로 가곤 한다. 목전에서 당하여 놀란 적도 있다. 그곳에서 나오는 차는 우회전해서 서울역 방면으로 가야 한다. 중앙선이 노란 색 실선이다. 좌회전은 하지 못한다. 너 죽고 너 다쳐도 좋다는 가벼움이다. 틀려먹은 회사구나 하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물류회사도 그 대기업 소유여서 유심히 보게 된다. 운전하는 사람의 사진을 트럭 뒤에 크게 붙였다. ‘나는 안전운전을 한다’는?방이 붙어 있다. 그 다짐의 문구와 사진이 없었더라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붙여놓고 열심히 교통규칙을 위반한다. 종횡무진 달리고 맘대로 주정차 한다. 생각이 모자란 가벼움이다.

이제 배가 불러지니까 이러나 보다 하는 감을 버리지 못한다. 아니나 다를까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쓰레기 만두 사건에 그 회사 이름이 나왔다. 극구 자기네는 아니라며 거명하는 쪽을 공갈협박 했다는 전문(傳聞)을 들었다. 참 가소(可笑)할 가관(可觀)의 가벼움이다.

선산에 다녀온 다음 허기져서 아들이 만두를 점심으로 먹었다. 한 끼니 때운 게 아니다. 정식 점심이었다. 냉장고 속 많은 만두를 통째로 버렸다. 아까움과 배신이 교차하는 집사람 표정이었다. 쓰레기 만두를 먹고 그 회사 선전문구대로 “즐기세요!”를 즐길 사람이 있을 리 만무하다. 즐기는 게 가능하도록 정직하게 장사를 하면서 “즐기세요!” 해야 한다.

2013년 6월 이 회사는 사주 재벌 3세가 Tax Heaven에 페이퍼 컴퍼니 몇 개를 세워 운용한 사실이 들어났다. 그는 직원들 앞으로 경영을 위해 불가피했다는 발표를 했다 한다. 뻔뻔하다. 이런 일들이 어디 한둘에 그치는 게 아니다. 둘러보면 도처에서 횡행하고 있다. 자동차 운전행태가 불법과 탈법을 가늠하는 대표잣대다.?차로를 바꾸며 왼쪽 또는 오른쪽 신호를 넣는 운전자가 다섯에 하나 꼴이다. 교차로도 그렇다. 좌우회전 차로로 가면서 좌우회전 미등은 그대로다. 손가락이 절단된 모양이다.

고속도로 휴게소 주차장은 주말과 휴일에 몸살을 앓는다 한다. 특히 인근에 골프장이 있는 곳은 더 심하단다. 골프 치러 가는 사람들 때문이라 한다. 새벽에, 심지어 간밤에 네 대가 와서 세 대는 세워놓고 한 대로 골프장엘 간단다. 건강은 고사하고 마음에 병이 들어 곧 죽을 작자들이라고 주차원은 푸념한다. 저주받는 가벼움이다.

사회는 상식으로 굴러간다. 상식은 ‘그건 그렇지!’ 하면서 공감하는 느낌이다. 상식 지키기는 말 이전의 암묵의 약속이다. 간사함과 영특함으로 인해 상식과 약속이 가벼움에 휘둘리고 있다. 더 위에 선 자, 더 가진 자가 상식과 약속을 무겁게 여겨야 한다. 말(言)을 묵중하게, 움직임(動)을 묵직하게 하는 언동(言動)의 무거움을 수련해야 하는 세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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