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겸 칼럼] 금융·세금의 사생아 ‘조세피난처’ 없애려면···

실태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1998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 ‘유해한 조세경쟁’이 나왔다. 그때 조금 알려졌다. 단속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매듭지었다. 조세경쟁은 다른 게 아니다. 법인세율을 다른 나라 다른 지역보다 낮게하거나(=>감경), 아예 없애버리는(=>면제=비과세) 경쟁이다. 기업과 부자의 돈을 불러들이려는 경쟁이다.

글로벌 기업은 국경을 넘어서 사업을 전개한다. 세율이 적은 곳에서 과세되도록 세적을 조정한다. 부유층도 금융자산을 맡길 때 세금이 적거나 내지 않는 장소를 선택한다. 조세 회피지역을 제공하는 쪽에서는 그러한 자본을 이용하여 경제 활성화를 도모한다. 더 많은 돈이 들어올수록 경기가 더 좋아진다 생각한다. 그런 욕심에 세율인하경쟁에 나선다.

그렇지만 조세인하경쟁은 국가의 조세기반을 무너뜨린다. 세금이 적게 들어오면 정부 지출을 줄여야 한다. 복지대책도 감소시켜야 한다. 납세자인 국민의 국가에 대한 신뢰가 훼손된다. 국가는 국민과 기업으로부터 세금을 걷는다. 이 재원으로 복지, 교육, 사회간접자본 건설 등 공공 서비스를 충당한다. 국민과 기업은 이를 이용하여 경제활동을 하고 납세를 한다.

이렇게 돈이 혈액처럼 국가 안에서 필요한 요소요처를 순환했다. 그런데 조세인하경쟁과 세금도피로 인하여 돈이 국가 밖으로 흘러 나갔다. 세금으로 나라 일을 하는 조세국가의 기능이 교란 당한다. 영국의 시민단체 Tax Justice Network가 발표했다. 부유층이 조세피난처(tax haven)에 보유하고 있는 금융자산이 최소 21조 달러라 했다.

성장전략의 하나로 약방의 감초가 된 정책이 있다. 경제특구다. 특별히 법인세를 감면해 줄 테니까 사업하러 오시오 하는 기업유치 구역이다. 자본이 오게 하여 경제 성장과 활성화를 기도하는 정책이다. 그러나 이는 세금을 적게 내거나 내지 않게 함으로써 조세국가의 목을 조이는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지구화시대에 직면하여 조세국가라는 관념 자체의 재정립이 요청되고는 있다. 이 몇 십 년 동안에 일어난 변화에는 그 뿌리가 있다. 금과 달러의 교환을 정지한 1971년의 닉슨 쇼크다. 그로 인해 2차 대전 후 정립된 Bretton Woods 체제가 붕괴됐다.

통화주의자(monetarist)들은 당시 브레튼우즈에서 주장했다. 개인과 시장의 자유를 중시하면서도 돈의 큰 흐름은 국가가 장악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돈을 금에 묶어 놨다. 닉슨 시대에는 돈을 금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만들었다. 해방되자 이내 돈은 국가의 관리범위를 벗어났다. 변동환율제는 실물의 뒷받침 없는 돈과 돈의 거래를 급속히 증대시켰다. 금융규제도 점차 완화됐다. 이어 철폐됐다. 인터넷이 금융거래를 효율화시켰다. 대량의 투기자금이 순식간에 국경을 넘나드는 현상이 야기됐다.

어떻게 해야 좋은가. 금융거래에 세금을 부과하는 토빈세 아이디어. 실은 닉슨 쇼크 이듬해에 나왔다. 국경을 왕래하는 소득에 대한 국제과세로 주목받았다. 현재도 논의되고 있다. EU만 해도 독일과 프랑스를 비롯해 11개 국가가 지지한다. 영국은 반대하고 있다. 돈에 오랏줄을 감는 개혁은 좀처럼 진전되지 않는다.

세계인구의 1%를 차지한다는 부자들은 세금 안 내는 수단을 갖고 있고 있다. 실제로 이용한다. 99%의 중-저소득층은 벌이마다, 소비마다 꼬박꼬박 세금이 쫒아 다닌다. 과중한 세금에 시달린다. 조세국가의 모순이 현저하다. 부자는 세금 회피한다. 가난한 자는 피하지 못한다. 정치 불신으로 이어진다.

납세에 대한 의무감을 느끼기는 한다. 그러나 가진 자가 요리조리 피하는 모양을 보고 들으며 지내는 서민. 내게 수단이 없어 탈세(脫稅)는 못하더라도 절세(節稅)를 꿈꾼다. 정부와 정치라는 공(公)을 개혁하기는 내 힘이 미치지 않는다. 권세 쥔 자들에게 기대하기는 더 요원한 얘기다.

나 자신만의?생존을 위해서라도 남은 몰라도 나만 좋으면 되지 않느냐는 풍조가 만연해진다. 결국 방도 모르고, 방책 없어 생각에 그치지만 불공평감과 불공정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왠지 억울한 느낌이다. 지난 2010년부터 영국에서 일어난 ‘Un-Cut’시민운동. 긴축재정에 반대하여 “행정 서비스를 줄이기보다는 조세 회피-세금 탈루하는 기업으로부터 징세하라!” 주장한다. 은행과 기업을 포위하며 외치고 있다.

단 한 사람이라도 목소리를 내면 공감하고 동행하는 사람이 생기고 늘어난다. 너무 나가고만 금융만능주의에 대치하는 가치관을 확산시켜 나가야 한다. 돈놀이에 빠진 어둠의 자식-금융과 세금의 사생아 tax haven. 이를 없애는 작업은 용이치 않고 간단치 않다.

그래서 손 놓는다? 세상의 모든 제도와 법률은 요구의 산물이다. 외쳐야 이미 다 알고 앉아 있는 정치가 알아듣는다. 알아 듣고서도 뜸 들인다. 그래서 지금 바로, 그리고 계속 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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