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의 경제토크] ‘숫자’가 지배하는 세상

초등학교 4학년에서 5학년으로 올라가면, 산수에 큰 수라는 개념이 도입된다. 그 전에는 45 곱하기 78 정도인데, 47893 곱하기 237896으로 승급된다. 거기서 많은 사람들이 숫자와 산수라면 질려버린다. 내가 생각하는 대표적인 잘못된 교육 중 하나다.

음, 5만 곱하기 25만 보다는 상당히 적겠군. 125억보다 적으니 115억 정도나 되려나? 정확한 건 계산기 두들겨 봐. 이게 정답이다. 그 이상 나가면 미친 짓이다. 그런데 그걸 손으로 정확하게 하려니 멀쩡한 애들만 잡는다. 나도 그때 정말 괴로웠다.

내가 숫자를 다시 좋아하게 된 건 대학에 들어가서였다. 그래서 경제학을 공부하게 된 건지 모르겠다. 경제학도 금융 쪽으로 전공을 한 것은 분명 숫자놀음과 관련이 있다.

경제학에 여러 분야가 있는데, 성장이냐 분배냐 이런 황당한 논쟁을 하면서 평생을 보내는 사람들을 나는 아주 싫어한다.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금융 쪽은 가부를 숫자로 정확하게 갈라준다. 즉 실수(實數)가 지배한다. 넌 석유가격이 오를 것으로 생각했니? 그럼 거기 걸어. 난 아닐 것으로 보거든, 난 이쪽에 걸게. 이런 식으로 승부가 확실히 갈린다. 잡소리가 필요 없고 뒤끝이 없다. 숫자란 게 그런 거다.

성장론자? 경제학자, 경제관료 가운데 성장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나? 별 웃기는 철학도 다 있다. 의사가 ‘건강론자’라고 불리는 것과 같다. 의사 중에 환자가 건강하게 되는 데 반대하는 사람 있나?

그 사람들이 말하고 싶은 건 아마 이런 소리일 것이다. ‘재벌 총수님들을 옹호숭앙지원존경하자. 왜냐면 왠지 기분에 그게 성장에 도움될 것 같은 그런 필링이 오늘따라 강하게 오는 거 있지…’ 뭐 그런 정도의 논리 아닐까.

실제로는 ‘개수(犬數)’가 지배하지만, 언뜻 보기엔 숫자가 지배하고 있는 듯한 영역도 많다. 예를 들어 747 (2013년 전에 7% 성장에 4만 달러에 7대 강국) 이 따위 개수들 말이다. MB 그 분은 사업을 하면서도 그런 식으로 해왔던 것이 분명하다. 업적을 뻥튀기하고, 그러고 얼마 지나고 나면 오너가 자살하고. 그런 사건이 몇 번 있었는데, 그분이 사실은 숫자에 밝은 사람이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1000조 원 가계부채. 음, 재벌들 재산 1000조 원. 요거 묘하게 우연히 일치하네? 요런 감을 잡는 사람이 숫자에 밝은 사람이다. 대형할인점 매출증가와 전통시장 매출감소가 소수점 두자리까지 묘하게 우연히 일치하네? 요런 게 눈에 보여야 한다.

부자감세 액수와 공공부채 액수 증가가 거의 동일하게 맞아 떨어지면, 세금으로 하던 일을 부자들이 세금 안 내고 나라 빚으로 하려는 그런 모종의 썸싱이 있었구나. 요걸 감 잡으면 숫자에 밝은 사람이다.

숫자와 숫자 사이의 인과관계, 공조현상 같은 걸 느끼고 즐길 필요가 있다. 계산하는 게 아니라 그냥 느끼는 것이다.

회사도 그렇다. 매출이 늘어나고 줄어들고 어느 부서가 어떻게 돌아가고가 숫자로 뭔가 나와야 한다. 그런데 책임자의 얘기 가운데 숫자는 언제나 거의 없고, 직원들의 단합분위기 같은 이야기만 나오고, 물어봐도 모르고 그러면 그 부서, 그 회사는 반드시 어려워진다. 아니 이미 어렵기 때문에 그렇게 얘기하고 있는 걸로 봐도 틀림없다.

나는 자신에게 늘 다짐하는 말이 있다. 누가 보고해서가 아니라, 그냥 추측해서 오늘 아침 회사의 몇 개 계좌 잔고를 거의 정확하게 알아 맞출 수 없으면, 바로 그때가 회사에서 손을 떼야 할 순간이라고. 그게 그냥 느낌으로 감이 들어오지 않으면 회사를 맡지 않았을 것이다.

성장론자, 이런 사람들이 경제 수장이 된다는 거 무서운 일이다. 性이 壯하게 되면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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