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칼럼] 부자가 3대 가기 어려운 이유
부자가 3대 가기 어렵다는 말, 정말 그렇다. 왜 그럴까, 그 이유를 좀 생각해 보자.
창업주들은 다들 보통 인물이 아니다. 결단력, 추진력, 기회포착력…. 이런 것이 탁월하니 기업을 일으키고 크게 키운다. 이유 없이 사업이 클 리가 없다. 그 다음 세대는 이미 성공한 아버지를 보고 자란다. 아버지의 비굴했던 과거는 보지 못했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결단력, 추진력, 기획포착력이 아버지보다 약하다. 그런데 자신은 그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다행히 아버지가 살아계셔서 큰 사고는 안 친다.
외국 가서 MBA 따와서 국제경영을 논하고, 신사업 진출을 시도하고, 기획관리실장을 해보고 하지만, 아버지가 살아계시는 한 큰 사고를 못 친다. 아버지에 대한 불평을 툴툴거리면서 일생을 지내기 십상이다. 내 주위에 그런 사람들 많다. 객관적으로 보기에 아버지보다 못해도 한참 못하다. 아서라… 소리가 절로 나오지만 그런 말 했다가는 화 내고 팔짝팔짝 뛸테니 그냥 놔둬야 한다.
2세들은 아버지의 성공이 비상한 기회포착 능력에 있었다는 것을 모른다. 겉만 보고 아버지가 주위 사람들에게 매섭게 한 것에 성공의 비결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성공한 사람이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하는 차갑고 매섭고 난폭한 행동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필요도 없는데 난폭한 행동을 자주 해본다. 오히려 더 터프하게 한다. 직원을 쉽게 해고시켜 보기도 하고, 깡패흉내 내면서 복싱 연습을 하기도 한다. 그래도 2세들은 아버지가 어느 정도 훈련을 시켜놓아서 다 말아 먹지는 않는다.
그러다 3대째가 되면 자기 집안이 원래부터 위대했다는 착각을 하기 시작한다. 할아버지가 얼마나 비굴하고 초조하게 사업을 따내기 위해 노력했나를 2대에서는 막연하게나마 짐작이라도 하지만, 3대에 가면 그걸 안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김우중 회장만 하더라도 50대에는 상공부에 들어가면 수위고, 주사고 무조건 보기만 보면 ‘형님, 형님’ 했던 시절이 있다. 아니 ‘아무개 성'(친할려면 ‘형’ 소리가 ‘성~’하고 코맹맹 소리가 나오게 된다)하고 지냈다. 그러던 분이 나이가 들면서 장관에게 “공무원들 하는 일이 뭐요?” 이렇게 나갔을 때 대우는 이미 몰락의 길에 들어서 있었다.
아무튼 3대는 자기에게 마치 공후백작과 같은 귀족의 피가 흐른다는 착각에 빠진다. 친구들도 그런 친구들만 사귄다. 사람 꼬드기고, 여자 소개시켜 주고, 요상한 사업하라고 부추기는 사람들이 이 사회에는 득시글거린다. 반드시 거기 넘어가게 되어 있다. 이 친구들이 으쓱하게 부추겨주기만 하면 다 넘어간다. 그러나 제대로 된 사업 아이템이라도 와서 굽실거리지 않고 으쓱하게 해주지 않으면 절대로 채택하지 않는다. 그러니 제대로 된 사업이 들어올 리가 없다.
2대로 넘어오면서 한번 탈세한 상속세를 3대로 넘어가면서 계속 탈세하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그래서 회사를 장악하는 지분이 점점 내려간다. 자기 패를 만든다고 같잖은 사람을 주위에 모아 욕을 바가지로 먹게 된다. 그러다 그나마 있는 개인재산도 담보로 잡혀서 회사 지분 장악한다고 나서다가 결국은 패가하게 된다. 또 이런 친구들이 꼭 파이낸스 게임을 좋아한다.
삼성만 해도 그렇다. 3대로 들어가면서 감옥 거의 다 간 것을 겨우 안 간 것 아닌가. 세상에, 잘 살려고 재산 모으고 그런 건데, 이 양반들은 그 많은 재산을 가지고 감옥 갈 일들을 하니… 하긴 그런 식으로 악다구니로 해야 돈이 모이는지도 모른다.
e삼성이라고 이재용에게 다 몰아주는 공작을 하다가 왕창 깨진 것을 기억하실 지 모르겠다. 그 때는 뭐 준비 없이 일을 벌렸겠나. 준비? 글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아무 의견도 내지 말고, 아무도 만나지 말고 그렇게 지내라는 것을 교육시키면 모를까.
한국의 유명한 경주 최부자 댁은 자신들이 스스로 대를 끊었다. 유대계 거부 브론프만(Bronfman)가도 3대째에 딱 망했다. 거 참, 그렇게 생각하면 돈 벌겠다고 그렇게 아등바등할 일만도 아니다. 이래저래 손자대에 가면 다 날리고 말 것이니 말이다.
지금 한국의 보수세력 전체가 2~3대 현상을 보이고 있다.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인권을 개무시하고, 빈민을 짓누르는 것이 경제발전의 비밀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공안권력을 휘두르고 무조건 빨갱이로 몰아서 두들겨 잡는 것을 경제성장과 보수의 성공 비결로 여기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마르크스가 말한 대로 패망의 길을 가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노조가 있어서 노동자의 권익이 지켜졌기 때문에 무산계급 혁명을 사전에 막아서 그런 것이다. 노조를 탄압하는 건 역설적으로 자본주의체제의 붕괴 위험성을 높이는 일이다. 오너가 있고, 노조가 있고 서로 견제를 하면서 각 생산요소의 공헌과 분배가 균형을 맞춰가는 것인데, 제대로 성공도 해보지 못한 고용사장의 경험만 가진 사람의 눈에는 노조가 골치 아픈 존재로만 보이기 마련이다.
그런 보스와 이야기할 때 노조 이야기만 나오면 무지하게 핏대를 올리면서 “쉐끼들, 다 이북에 보내 아오지 탄광에서 일하게 해야 돼” 이런 말을 서로 경쟁적으로 하며 누가 세게 나오느냐로 충성을 겨루게 된다. 무허가 철거민도 인간적 존엄성이 있다거나 사회가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재빨리 소독 박멸해야 하는 병균이나 해충으로 보게 된다.
한국에서 스스로를 하층민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매우 적다. 웬만하면 중산층이라고 생각한다. 수학적으로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사람이 자신의 상대적 위치에 대해 심각한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더 슬픈 일은 바로 실제적 빈곤층, 정신적 중산층이 빈민 탄압정책을 더 적극적으로 옹호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바로 인간 내면의 본질적인 악마성 때문 아닌가 싶다.
부자가 3대가기 어렵다는 속담이 이제야 이해가 갑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