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경제토크] 투자귀재가 금융사기꾼 되는 경로
연전에 밴쿠버 한인사회에서 대형 금융사기 사건이 터졌다. 캐나다 주류신문에까지 대서특필되면서 떠들썩하다가 사건 장본인이 한국에서 검거돼 재판 받고 현재 수감 중이다. 지난번 글에서도 많은 피해자들이 왜 다 속았을까를 얘기했지만 결론은 속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대형 속임수는 초기 단계에는 상당한 실제적 성과를 거둔다. 처음부터 완전 사기로 시작하는 케이스는 매우 드물다. 처음엔 어느 정도 성공적인 투자가 일어난다. 그러면 펀드 매니저는 당장 스타가 된다. 그 스타는 드높은 자부심을 갖게 되고, 프라이드가 급상승한다.
요즘 세상은 ‘돈’이 ‘하나님’이 돼 있다. 그래서 자기 돈을 불려주는 사람을 ‘사제 (Priest)’로 존경하게 된다. 더 나가면 ‘신격화’한다. 심지어 교회도 이렇게 ‘기도하면 돈 많이 벌고 대통령도 될 수 있다’는 요령을 가르쳐 주는 교회가 성장한다. 사람들은 그런 목사님이 용한 목사님이라고 생각하고, 나중에는 그런 목사님이 자신을 하나님으로 착각한다.
펀드 매니저나 인베스트먼트 회사는 더 말할 나위 없다. 돈이 벌리면 바로 신격화된다. 투자귀재란 말에서 ‘귀’는 귀신을 뜻한다. 투자도사라는 말도 많이 쓰는데, 도사는 도교의 사제를 의미한다. 문제는 투자라는 것이 그렇게 항상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바로 그 때 사람의 본색이 드러난다. 투자에 실패했을 때 머리를 긁으면서 “우이… 또 헛다리 짚었네!”하면서 자신의 예측이 틀렸음을 자인하고 투자자들에게 그대로 알려주면 대부분 그냥 넘어간다.
그러나 투자 잘 한다는 것 하나가 유일한 자존심이었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질 못한다. 자기 자신이 그것을 받아들이질 못한다. 엄청 남겨서, 그것도 매년 남겨서 투자자들에게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던 내가 그저 그런 놈으로 전락하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내가 관리하는 수억~수백억 달러의 펀드가 사라지는 것을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내가 늘 말하는 건데, 이 세상이 ‘엉망(messy)’이란 것을 빨리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 자기 자신이 그렇고 그런 놈이라는 것을 빨리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대형사고를 치게 마련이다.
내가 수억 달러 펀드를 굴리고 하나님으로 추앙받고 있는데, 올해 잃은 것은 내년에 또 따서 보충하면 돼. 회계사들도 어드저스트먼트로 다들 넘어가게 돼있어. 이런 건 규정상으로도 합법적인 거야. (정말 그렇다. 어느 정도 회계상의 착오는 불법으로 취급되지 않고 다음 회계연도 결산 때 고치면 된다.) 올해 약간 불려서 투자자들에게 얘기한 건, 내년에 버는 돈으로 메우면 돼. 그러면 사후적으로 사실이 되는 것이니까, 거짓말은 아니야. 실제로 나를 믿어주신 투자자님들께 불필요한 혼동을 드릴 필요가 없지. 그리고 내가 누군가, 투자의 신 아닌가. 내가 내년에도 계속 잃는다는 것은 확률상으로 거의 불가능한 거야… 이렇게 생각이 돌아간다.
그러나 확률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그 일이 실제로는 아주 자주 일어난다. 그게 문제다. 그렇게 되면 이건 뭔가 마가 낀 거야. 내 스트레티지가 뭔가 잘못된 거야. 옳지, 그동안 스트레티지의 반대로만 투자를 해봐야지… 그런 생각이 든다. 얼씨구 그렇게 했더니, 원래 스트레티지가 맞았던 것 같다. 그러면 반대로 했던 만큼 손해를 보게 된다. 재수 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법이다. 그래서 이번엔 앞으로 넘어져 본다. 그러면 정말로 제대로 코가 깨진다.
어이쿠 그러면 그렇지! 내 스트레티지가 틀릴 수 없어. 내가 누군가, 투자의 신 아닌가. 역시 믿음으로 밀고 나가야 돼. 그러면서 다시 뒤로 넘어지기를 해본다. 그러면 이번에는 반대 스트레티지가 맞는다. 어?! 역시 나는 그 때가 옳았어. 나는 양쪽을 다 보고 있었어. 역시 나는 시장을 양쪽을 다 읽고 있었던 거야. 이런 생각이 든다.
이쯤에서 다 털고 고백하고 실수를 밝히고 정리하는 사람은 참으로 드물다. 왜냐, 자기가 신이기 때문에 그렇다. 바로 위의 과정을 봐도, 자기는 양쪽을 다 읽고 있는 사람인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더 크게 한방 터뜨리기 위해 투자자를 더 모은다. 그리고, 베팅도 더 크게 한다. 결국은 폐인이 되고 마는 것이다.
미주 한인사회에서 가끔 터지는 금융사기의 대표적인 패턴은 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난다. 위에 언급한 밴쿠버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교회에 나가 열성을 보이면 목사님이 ‘제일 믿음 좋은 신도’로 인정해준다. 거기다 헌금까지 척척 내면 그 땐 정말 교회에서 방방뜨게 된다. 그러고 나서 높은 이자를 쳐주면서 신자들의 돈을 모은다. 십일조라면서 헌금 많이 하면, ‘그 집사님 장사 잘 되는가봐’하며 신도들은 더 믿음을 준다. 폰지사기에 아주 좋은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내 주위에서 교회에서 열심히 신앙생활하던, 개인적으로 잘 아는 사람들 중 이런 식으로 폰지사기를 친 사람을 두 명 봤다. 똑같은 패턴, 똑같은 수법인데 사람들은 번번이 당한다. 이런 경우 사실 해당 교회의 목사님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본다. 영적으로 그런 것도 분별하지 못한다는 말인가. 신도들이 어느 사람에게 투자하고 그러면 조심하도록 주의를 환기시켜야 마땅한 일이다. 교회를 무대로 사기를 쳤으면, 피해를 보험으로 보상받는 길이 있을 수 있다.
내가 경제 얘기를 하면서 자꾸 사기수법을 들먹이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예전에 캐나다 앨버타대학 교수가 되고 나서 첫 해 강의를 마친 뒤 올해의 교수상을 탄 적이 있다. 그 때 세무· 금융·회계를 망라한 강의를 했는데, 학생들이 졸기만 하고 영 흥미를 갖지 않기에 세법 강의내용을 ‘탈세수법 총정리’ 이런 식으로 바꿔서 해봤다. 그랬더니 강의실이 터져나가도록 큰 호응을 받고 상까지 타게 됐다.
사기수법을 소개하는 것은 그런 수법을 잘 활용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런 수법이 많이 유통되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뜻이기도 하고, 또 그런 사기수법에서 경제의 오묘한 경지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