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앞둔 美한인사회①] 타소수계 커뮤니티와 비교해보니···
미국 이민 130년, 미국 땅에 사는 한국 이민자와 그 자녀들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바람직한 정체성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이민자와 2, 3세들은 한국인인가, 미국사람인가? 미국 대통령선거를 앞둔 교민사회는 과연 어떤 모습이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21세기 글로컬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는 요즘, 뉴욕이나 워싱턴 같은 경제, 정치 중심도시 못지 않게 시카고는 미국의 평균적인 이념과 생활수준을 엿볼 수 있는 모델도시다.?
<아시아엔>은 시카고 거주 재미동포 사회를 통해 들여다본 미국 한인사회의 현주소를 몇 차례에 걸쳐 싣는다. 필자인 김정일 해설위원은 20대에 미국으로 이민 가 40년 이상 <미주한국일보>와 <시카고기독교방송>에서 취재와 칼럼 기고, 방송해설 등을 하고 있는 베테랑 언론인이다. -편집자
[아시아엔=김정일 <시카고기독교방송> 해설위원] 한인들이 미국에 뿌리를 내린 지 1세기가 훨씬 넘었다. 시카고에 거주하고 있는 것도 반세기가 훌쩍 넘었다. 꽤 긴 세월이다. 현재 한인들이 어떤 삶의 태도를 가지고, 어떤 목표를 지향하고 사는가? 즉 우리의 지금 이슈는 무엇으로 설정됐는가?
이 질문은 현재의 삶을 성찰하고, 미래를 조망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인종, 다민족, 다문화사회인 미국은 자의든 타의든 커뮤니티라는 단위로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 현상을 분류하게 된다. 선거에서 표심의 형태가 그룹마다 극명하게 다르고, 사회경제적 이슈에 대한 요구나 기준도 다르다. 따라서 각 그룹의 이슈와 지혜와 결속 수준에 따라서 그 그룹의 사회적 위치가 달라진다. 그래서 커뮤니티의 이슈가 무엇인지가 중요하다.
한인들의 개인적인 성취도는 높다고 볼 수 있다. 경제적으로 대부분 중산층 이상에 진입해 있고, 후세 교육도 성공적이다. 그러나 ‘그룹’으로서 평가를 한다면 그렇게 높은 점수를 받기에 어려운 면이 있다. 여러 다른 평가가 있을 수 있겠으나, 미국의 일반적인 기준으로 볼 때, 우리가 정치적으로 취약하고, 경제적으로 열등하며,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문화적으로 낙후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1992년 LA폭동 이후에 나온 ‘정치력 향상, 사회적 고립 탈피’라는 진단서는 4반세기가 지난 지금 거의 실종된 상태에 있다. 우리의 삶의 태도에 대한 분석과 이슈정리 및 우리의 결심이 아직도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소수계 커뮤니티들은 과연 어떤 이슈를 갖고 살고 있나? 놀랍게도 다른 소수계들의 공통적인 이슈는 한인사회에게 매우 생소한 것들이다. 우리가 별로 들어보지도 못한 것들이다. 즉 다원주의, 인권, 참여, 외국인 혐오, 인종차별 등이 그것이다. 소수계 권익단체들의 중요 이슈를 살펴보면 과연 우리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며, 이 생각은 옳은 것인가, 우리의 미래를 위해 가치 있는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물론 다른 소수계들의 태도가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것과 비교해보면 우리 것의 다른 점, 부족한 점은 무엇인지 자성해 볼 수 있다. 정답의 제시라기보다 문제의 제기다.
필자는 몇가지 범주로 나눠 우리의 자화상을 살펴보려 한다.
1.우리의 현주소
실제 일어났던 해프닝을 소개한다. 필자는 헬스클럽에서 운동 중 옆에 있던 백인 남성 2명의 대화를 들었다. “저 친구 책을 읽고 있네?” “그러게.” 그들은 내가 영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으로 취급했다. 내가 “당신들 내 이야기 하는 듯한데…이 책 읽어 봤소?”라고 되물었더니 그들은 매우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한인들 수백명이 살고, 수십개의 한인비지니스가 있는 모턴 그로브(Morton Grove)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런 곳에서 외계인 취급당한 것이다. 당혹스럽기는 피차 마찬가지였다.
글렌뷰(Glenview)의 한 호텔 로비에서의 일이다. 백인 부부와 필자간 대화였다. “Where are you come from?” “From Chicago?” “I mean… what is your nationality?” “I am American.” 그들 역시 매우 겸연쩍은 얼굴을 했다. 이런 질문을 한번쯤 받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2. 무엇을 먼저 파악해야 하나
그러나 이들의 마음 속에 있는 실체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편견(prejudice), 고정관념(stereotype), 편협성(bigotry), 선입견(bias), 무지(ignorance) 등이다. 만일 누군가에게 이 단어들이 익숙하지 않게 들린다면, 그는 인권과 인종문제에 관한 한 상식부족의 사람이라고 간주해도 무방하다. 이 단어들은 길고 긴 미국의 인종문제 투쟁에서 초기부터 나온 단어들이다. 자신이 우월하다고 착각하는 쪽이 열등하다고 취급하는 쪽에게 갖는 심리적 표현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런 편견과 고정관념의 태도는 단지 우리의 기분을 상하게 만드는 수준에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나아가 우리의 사회적 신분과 삶에 위해를 가한다. 유치천장(Glass Ceiling)이 그 예다. 내 머리 위에 훨씬 더 높은 곳이 빤히 보이지만, 유리창- 보이지 않는 차별-이 신분상승을 가로막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