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앞둔 美한인사회③] “미국에 가면 미국법을 따르라”

[아시아엔=김정일 <시카고기독교방송> 해설위원] 미국 내 다른 소수계들의 Inter-Group 시도는 매우 절실하게 진행되고 있다. 우리가 마치 골목대장 놀이와 같은 재미에 몰두하는 동안 다른 커뮤니티는 서로 간의 교류와 소통을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각 커뮤니티마다 각자 사정이 다르겠지만, 위에 열거한 이슈들은 대부분의 소수계 주요단체들이 빠지지 않고 제시하는 목표들이다. 일부 이슈들은 투쟁과 배격을 내세운 공격적인 것이지만, 또 다른 일부는 참여와 조화와 이해를 높이기 위한 긍정적인 것들이다.

문제는 이런 이슈들이 다른 커뮤니티에서는 매우 일반적인 이슈들인데 우리에게는 매우 생소한 것이라는데 있다. 우리의 삶의 태도가 미국의 일반기준에 비해 낙후되어 있지나 않은지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우리 단체에서는 구체적인 Mission Statement(사명 및 목적에 대한 선언)가 안 보인다.

6.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가 반세기 이상을 이곳에 살아왔고,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모든 정치, 경제, 사회, 법률적 일, 즉 우리의 모든 권리와 의무가 미국에 달려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미국에 대한 공부를 너무 게을리해왔다. 아직도 오래 전에 떠나 온 모국의 논리에 익숙한 사람들이 많다. 시집온 지 수십년이 되면 더 이상 ‘새댁’이라고 불리지 않는다. 곳간 열쇠를 차지한 고참 며느리가 아직도 친정집 생각만 한다면 시집의 눈치가 곱지 않을 것이다.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좀더 진취적이어야 한다.

1)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AD 340년경, 성 어거스틴의 편지에 나오는 대목이다. 밀란의 주교에게 로마로 전근 가면 로마식대로 하라는 충고다. 현실에 적응하면서 조화롭게 살라는 지혜다. 이 지혜는 1700년 된 지혜이지만, 지금도 유효하다. 우리가 미국국민이 되었고, 우리 자손들이 여기에서 대를 이어 살게 된다. 우리는 여기에 뼈를 묻는다고 작정을 했다.

코리안-아메리칸으로서의 분명한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

30여년 전 LA의 유의영 교수(사회학)는 언론 기고문에서 “‘우리나라’가 어디냐?”고 질문을 던지고 “우리나라는 미국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었다. 그후 그는 거의 매국노 수준의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옛 이야기지만, 지금 반세기를 미국시민으로 살고도 아직도 정체성에 혼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한민족의 문화적인 배경을 가진 미국국민이다. 이것이 Korean-American의 정의다.

따라서 우리가 미국국민이 되었으니 미국식으로 사는 것이 맞다. 1700년이나 된 지혜가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2) 나의 탯줄은 고국에 묻혔지만, 나의 육신은 시카고에 묻힌다.(My umbilical code was buried in Korea, but my whole flesh will be buried in Chicago)

현실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필요하다. 나는 미국의 법 아래 있고, 미국의 정치제도와 경제권(금리, 세금, 임금)의 영향권 안에 있다. 나는 오헤어공항에서는 내국인이고, 인천공항에서는 외국인이다. 미국의 안보, 총기정책, 이민정책, 인종문제, 소득불균형, 건강보험이 나의 문제다. 미국의 국산 차는 GM과 Ford이다. 이들이 파산하면 4백만 명의 실업자가 나오게 되고, 그러면 내 세탁소 영업에 당장 문제가 생긴다. 그러므로 GM과 Ford가 나의 국산품이다. 나를 대표하는 사람은 우리 지역의 하원의원, 상원의원, 주지사, 미국 대통령이다. 나의 대표가 박근혜나 안철수나 영사관이 아니다.

우리가 모국에 대해 가지고 있는 것은 정서적인 유대감일 뿐 현실이 아니다. 착각을 하면 우리의 삶의 태도가 엉뚱해질 수 있다.

3) 타고 온 배를 불태워라!

(Burn down the ship brought you to the shore.) 고대 그리스 병사들이 외국을 침략할 때, 타고 온 배를 해변에서 불태웠다는 고사다. 살아서 돌아가는 방법은 승리뿐이라는 결심과 각오의 표현이다. 지금 세상은 크게 다르다. 통신과 교통의 발달로 우리가 떠나온 고국이 바로 지척이다. 그러나 우리가 개척민의 각오와 결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타고 온 배를 불사르고, 내가 선택한 이 땅에서 기필코 성공하고 말겠다는 결심을 말하는 것이다. 자칫하면 우리가 평생을 2등 시민, 뜨내기, 손님으로 이 세상을 살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을 알고, 미국에 적응하고, 미국에 도전해야 이민의 꿈이 성취되는 것이다.

필자가 <시카고기독교방송>에서 16년 동안 진행하고 있는 ‘시사해설’ 프로그램의 표어가 있다. “2등 시민이 아닌 1등 시민으로 살겠다”는 선언이다. 뜨내기가 아닌 주인으로 살겠다는 결심이다. 역사서가 아닌 예언서에 대한 믿음이다. 우리 꿈의 성취를 위해서 좀더 강한 결심이 필요하다.

7. 더 잘 할 수 있다!

한인사회의 에너지가 가장 많이 집중되는 곳이 한인단체, 언론, 교회라고 할 수 있다. 이 그룹들이 한인사회 발전에 개한 새로운 비전을 갖고 연합해 노력하면 더욱 큰 성과가 있을 것이다. 한인사회는 여러 다양한 성향의 친목 단체로 잘 조직이 되어 있다. 한인회장 선거를 하는데 5000~6000명이 나오는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미국 안에서 사회봉사 단체장 직접선거에 5000~6000명이 나오는 커뮤니티는 아무데도 없을 것이다. 기이한 현상이지만, 이게 바로 우리이고, 어떤 의미에서 이것이 참여와 단합의 가능성이 될 수도 있다. 한 가지 중요한 숙제가 있다면, 이 조직들이 기능화되고 이슈를 잘 정리하는 것이다. 아니면, 그냥 단순히 친목을 위한 그룹으로 남게 될 것이고, 우리 이민의 꿈을 성취하는데 필요한 견인차 역할에는 역부족이라는 성적표가 나올 것이다.

훌륭한 리더가 참으로 아쉽다. 이민사회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비전을 가진 존경받는 리더가 진정으로 필요하다. 우리가 한국이나 기웃거리고 골목대장 놀이에 안주하는 자칭 리더들에게 식상한 지가 너무 오래되었다.

한인 언론의 역할은 막중하다. 한인사회 태동기의 언론은 우리가 미국의 꿈나무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 지금은 사정이 크게 다르다.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엄청난 발달과 한인 1세사회의 고령화, 쇠락기가 겹치면서 언론사들의 환경은 점차 더 척박해져 가고 있다. 그래도 희망을 가져본다.

스패니시 Univision 방송의 유명앵커, 요르게 라모스(Jorge Ramos)가 희망의 표본이다. 대선후보 트럼프와 설전을 벌여 유명해진 그의 소수계 언론관은 우리가 모두 숙고해 보아야 할 지론이다. 그는 “나는 기자일 뿐 아니라, 커뮤니티를 위한 교육자이며, 계몽자이고, 사회활동가의 역할을 다 하고 싶다” “나는 목소리 없는 소수계 그룹의 목소리이고 싶다”고 자신의 열정적인 소수계 언론관을 정리했다. <LA Times>는 그를 ‘라티노 그룹의 교황’이라고 불렀다. 그의 소수계 언론관의 핵심은 주류사회에 대한 ‘도전과 화합’ 노력이다.

우리 언론들은 사소하고 잡다한 현실의 반영 단계를 넘어서서, 미래를 향한 선구자 단계로 역할상승을 해야 한다. 이런 열정과 지혜가 있는 한인언론이 나온다면 우리 이민 사회의 변화가 훨씬 순조로울 것이다.

8. 변화가 어려운 이유

조그만 친목단체의 변화와 개혁도 쉽지 않다. 변화는 그 사회에 소속된 구성원들의 의견의 일치와 협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다. 민권운동의 실현을 위한 전기가 되었던 알라바마, 셀마 행진이 좋은 본보기다. 흑인들의 선거권을 위한 투쟁의 역사이다. 1964년 민권법이 통과되었지만, 1965년에도 흑인들의 투표인 등록은 허용되지 않았다. 그들의 항의행진을 백인경찰이 곤봉으로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하지만 소수의 흑인들이 결국 투표권리를 쟁취해냈다. 투쟁과정에서 소홀이 넘길 수 있는 요소들이 있다. 바로 사회전체가 함께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변화가 가능하다는 교훈이다.

이 흑인들의 투쟁에는 마틴 루터 킹이라는 뛰어난 지도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앤드루 영, 제시 잭슨 등 뛰어난 동역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2차 행진에 참여한 다수의 백인시위대가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2차 행진의 노래는 시원치 않았다고 농담했다. 시위대의 3분의 1에 이를 정도로 대거 동참한 백인들의 노래솜씨가 흑인 시위대의 노래보다 못했기 때문이다. 언론이 있었다. 당시에 <워싱턴포스트>가 사설로 당국을 크게 질책했고, <CBS> 뉴스는 곤봉과 경찰견으로 폭력화된 경찰 만행을 중계방송했다. 그리고 행진을 허가한 지역 판사가 있었고, 궁극적으로 린든 죤슨이라는 대통령이 있었다. 이 여러 부분이 협력해서 비로소 투표권 쟁취라는 큰 변화가 실현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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