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앞둔 美 한인사회④] 적극적 투표 없이 주류사회 진입 ‘산 너머 산’

[아시아엔=김정일 <시카고기독교방송> 해설위원] 우리가 이민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한인사회에 전반적인 의식변화가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훌륭한 리더와 훌륭한 단체와 훌륭한 언론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먼저 개인이 스마트해져야 한다. 지혜는 ‘의식의 변화’가 있어야 생기고, 의식의 변화는 ‘미국을 알아야’ 가능하다. 고로 미국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현재 시카고 한인사회에 이런 진취적인 변화의 조짐은 유감스럽게도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비교적 많이 모이는 단체에 무분별한 모국 지향적인 태도가 점점 강해져 보인다. 훌륭한 리더도 없고 다른 변화의 움직임도 없다. 우리가 오히려 커뮤니티 발전과 거리가 먼 ‘역행의 길’ 위에 있는 것은 아닌지 매우 근심스럽다.

9. 우리의 삶의 태도가 향상(Upgrade) 되어야 한다.

삶의 태도와 의식을 전반적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방법을 알아야 하고, 전략이 있어야 하고, 경험을 쌓아야 하고, 옆집에서 배워야 한다. 잘 하겠다고 시작한 일이지만, 자칫 실수하면 소아적 사고에 빠지기 쉽고, 어리석게 보이기 쉽다. 좀더 똑똑해져야 한다. 우리는 반세기 이상을 시카고에 살았다. 우리는 새로 온 이민그룹이 아니다. 2세, 3세들이 다 성장했다. 너무 오랫동안 정체된 삶을 살아왔다는 반성이 절실한 시간이다.

물론, 한인사회 봉사에는 작은 일이라도 고생과 희생이 따른다. 봉사자들은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더 성숙한 태도를 가져야 보람과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것을 반드시 유념해야 한다.

쉬운 예 몇가지를 들어보자.

1)우리가 “투표합시다!”라는 구호를 시작한 것이 30년 전 쯤 된다. 긴 세월이 지났는데도 아직 “‘잘 알고’ 투표 합시다”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투표권을 행사하려면 1)선거 이슈들을 당연히 알아야 하고, 보수 진보의 의견은 무엇인지 2)각 후보들의 정견은 무엇인지 3)나의 의견은 무엇인지? 최소한 3박자는 알아야 정당한 투표권 행사가 가능하다. 투표는 비교하고 선택하는 문제다. 30년 전보다 한 발자국도 더 진보된 것이 안 보인다.

금년 선거를 앞두고 커뮤니티 일각에서 나온 캠페인이 ‘한글 번역판 투표용지’ 마련이다. 후보들의 이름과 직책을 꼭 한글로 번역해야 투표가 가능하다면, 그 투표행사를 과연 가치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인가 자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투표는 선택의 문제다. 누가 무슨 생각을 하고, 누가 더 나의 정견과 같은 후보인지를 알아야 투표가 가능하다. 이 수준까지 와야 투표의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교육, 계몽하는 것이 우선이다. 미국의 모든 소수계들이 수십 개, 수백 개의 다른 언어로 투표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2)정치인들이 가끔 한인사회에 나와서 상투적인 립서비스를 하면, 일부에서는 이 말에 감격해서 그에게 ‘친한파’ 정치인이라는 타이틀을 수여한다. 우리가 참 어리석게 보이는 대목이다. 상황을 잘 모르면 쉽게 바보가 될 수 있다. 역설적으로 이야기하면 오히려 람 이매뉴엘 시장이 더 솔직한 사람이다. 그가 아시안계의 면담요청을 번번이 거절한 것은 “그대들 표도, 돈도 없지 않소!”라는 솔직한 반응이다. 정치권의 룰도 당연히 ‘기브 앤 테이크’다. 표도 돈도 주지 않고 자꾸 사진만 찍자고 하면, 이들은 우리를 매우 이상한 눈으로 쳐다볼 것이다. 자칭 리더라는 사람들은 미국적 게임을 할 줄 알아야 한다.

3)일리노이주 선거에서 나오는 표 숫자가, 대선의 경우 약 5백만 표, 주지사 선거의 경우 약 3백50만 표 그리고 지역 하원의원 선거에 나오는 표도 약 15만에서 20만 표다. 우리가 8백명이 모여 투표했다고 천하를 얻은 것처럼 흥분할 일도 아니다. 주류사회는 이것이 조족지혈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소아적 사고방식이다.

4)어떤 한인신문 기사 내용이다. 한인단체들이 싸우다가 쿡 카운티 법원으로 가서 소송을 제기했는데, 기사 내용 중에 “우리가 왜 ‘외국인 판사’ 앞에서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하는가?” 이런 개탄조 기사가 있었다. 이 사회를 리드해야 할 이 신문은 기본적인 자신의 정체성조차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가 서울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5)시카고의 신문, 방송들이 미국선거 소식을 한국의 언론들이 쓰는 기사를 역수입해 보도한다. 여기 언론사 종사자들의 역량 부족 탓이다. 나의 삶과 직접 관련된 사항들을 구경꾼적인 입장에 있는 남의 시각을 통해 전달받고 있는 기막힌 실정이다. 어떤 방송은 “아무개 방송의 아무개 기자 나오세요!” 하면서 공개적인 사기 방송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일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시카고의 독자들이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무도 잘못을 지적하지 않는다. 모든 사회 현상은 소속원들의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 ‘그 방송에 그 청취자’라는 비난을 면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오래 누적되어 온 문화결핍증이 심각한 수준이다.

6)한인사회와 연방 상원의원과의 선거 직전 간담회에서 극소수의 이슈인 이산가족 문제만 거론된 것은 이슈 설정이 잘못된 예다. 이 간담회에서 △우리의 먹고 사는 문제 △아프면 병원 가는 문제 △자녀들 대학 보내는 문제 △스몰 비지니스 지원 문제는 완전히 사라졌다. 필자의 가족은 남북 이산가족이다. 우리 가족에게 이 이슈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절절한 슬픔의 인간애 이슈가 아니다. 세월이 70년 이상 지난 과거사로 정리가 된 문제이다. 이것은 우리와는 거리가 먼 한국의 이념적, 정치적 이슈다. 누군가가 이를 모국과의 연결고리 수단으로 들고 나왔다면, 그는 상원의원을 오도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상원의원은 우리를 미국 평균치 보통시민으로 간주하지 않고, 뭔가 좀 특별한 ‘변두리 시민’(Marginal Group) 취급을 했을 것이다.

커뮤니티에 좀더 성숙한 리더가 필요하고, 한인사회 내에 민권전문가, 인권전문가 그리고 커뮤니티 액티비스트 육성이 필요하다. 주먹구구식 또는 소아적 사고방식으로 주류사회에 접근했다가는 예상치도 않은 낭패를 당할 수 있다.

1980년대 중반 빅 스타 방화사건이 좋은 예다. 한인 업자가 보험금을 노리고 창고에 방화를 했는데, 소방관 여러 명이 방화작업 중에 지붕에서 떨어져 숨졌다. 당시 한인회가 취한 조치는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다. 한인회가 시카고 유력 주류사회 신문 방송을 다 불러놓고 한인사회 전체가 주류사회에 대해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를 한 것이다. 순직 소방관 자녀들 장학금 마련까지 약속했다. “우리 모두가 죄인입니다”라는 참회를 한 것이다.

예를 든다면 마치 모슬렘 테러리스트가 테러를 했는데, 모슬렘 사회전체가 사과를 한 격이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가 미숙하기 짝이 없는 반응을 한 것인데, 당시 이 사과를 주도했던 한인회 간부는 시 정부의 꽤 고위관리였다.

아무리 주류사회 경력자라고 해도 민권운동 등에 대한 식견이나 경험이 없으면 이런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지금 한인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나마 극히 일부의 주류사회 참여운동에 좀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다.

10. 모국관

우리가 모국을 이야기할 때 자주 친정집과 시집의 비유를 들기도 한다. 양자는 모두 소중하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제가 일직선상에 연결되어 있듯이, 친정과 시집도, 한국과 미국도 일직선상에 연결되어 있다. 양자는 상충되는 개념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개념이다. 코리안-아메리칸이라는 단어는 ‘한민족의 문화적 배경’을 가진 ‘미국 국민’이라는 의미다.

구별되어야 할 것이 있다면, 미국의 한인은 국적이 다른 법률적, 정치적, 사회적 존재가 되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선순위를 따지자면, 당연히 미국국민으로서의 의무와 권리가 우선한다. 과거보다는 현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인 순리다.

대선 후보 버니 샌더즈가 유태계이지만 미국의 국익을 위해 팔레스타인 권익존중의 쓴 소리를 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모국사랑이라는 것이 무조건 한국식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훌륭한 미국국민으로 살아가는 것, 주류사회에서 존경을 받는 것이 모국사랑이다. 우리가 1등 시민이 되지 못하면 한민족 문화는 세계문화가 아니라 일개 종족문화, 케토문화로 전락하게 된다.

먼저 내 쌀독을 채워 놓고 옆집 쌀독을 걱정하는 것이 순서다. 내 쌀독에는 경제력, 정치력, 인종문제, 인권문제 아무 것도 채워놓지 못해 텅빈 채, 옆집 쌀독을 걱정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모국소식에는 박식하고 미국소식에는 무식한 것도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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