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앞둔 美한인사회⑤] 영사관, 교민사회에 무분별한 영향력 행사 자제해야
[아시아엔=김정일 <시카고기독교방송> 해설위원] 모국은 우리에게는 DNA와 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미국의 한인들에게는 귀소본능이라는 말이 잘 적용되지 않는다. 늙어지면 고향으로 가겠다는 사람이나, 뼈를 고향에 묻겠다는 사람도 우리 주변에는 매우 희귀하다.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정설보다 “물이 피보다 진하다”는 역설이 더 강한 곳이 바로 미국이다. 따라서 우리의 고향은 이제 시카고이고, 우리나라는 미국이다.
한인들이 과거에 모일 때마다 불렀던 “나의 살던 고향은~” 동요도 들어본 지 아주 오래다.
11. 영사관
영사관은 고향에서 온 한국정부 기관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정답고 귀한 존재가 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피차간의 이해부족으로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영사관은 한인사회의 주류가 미국시민들의 커뮤니티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인사회는 영사관의 공권력 밖에 있는 그룹이다. 영사관이 미국한인들의 대변자가 아니고, 총독부도 아니고, 우리가 식민지 백성도 아니다. 양자는 피차 상호존중의 관계에 있는 것이 정상적이다. 영사관이 평통이나 여러 단체를 통해 한인사회에 지나친 영향력을 행사해 오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군사독재 시절에는 한인시회의 감시자 역할을 했고, 일부 정부의 비위에 맞지 않는 한인들의 모국방문을 금지한 일도 있었다. 영사관은 한인사회에 대한 무분별한 영향력 행사를 자제해야 한다. 영사관의 간섭 때문에 우리의 미국시민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 자유가 침해되는 것은 간과할 수 없다. 피차 법적, 정치적인 신분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출가외인이다.
몇 가지 실례를 들어본다.
1)조지 부시 대통령 선거전이 한창일 때였다. 느닷없이 총영사 관저에서 호출이 왔다. 영사관이 몇몇 한인사회 리더들에게 선거 참여 독려를 하는 것이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부시의 당선이 한국에게 불이익이 될 것이라는 의식이 있었다. 얼마나 별난 장면인가. 한국 영사관이 미국 선거를 진두지휘한다? 다음 날 필자가 영사관에 항의를 했다. “우리가 선거에 참여하지 않아 괄시를 받고 살든 말든 이건 귀하의 일이 아니올시다. 썩 물러가시오”라고.
2)FTA 협상이 한창일 때다. 영사관이 한인 몇백명을 호텔 디너에 불러놓고, 저녁 한 끼를 먹인 후에 지역 연방 하원의원에게 보낼 FTA 찬성을 요구하는 청원서 서명을 받았다. 한인들을 통해 하원의원들에게 압력을 넣어보자는 작전이었다. 이것도 웃기는 일이다. 주류사회가 이런 책략을 모를 리 없다. 자칫 모든 한인들이 영사관의 하수인이 되든지, 주류사회의 미운오리새끼가 되든지 할 판이었다. 중서부에는 자유무역 협정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2016년 대선에서 클린턴이 미시간주 예선에서 참패한 원인이 바로 이것 때문이다. 모국사랑이 이런 것이 아니다.
3)시카고의 한 프리마켓 화재로 한인 상인들이 피해를 입은 사건이 있었다. 영사관이 지역 시의원에게 한인 상인 피해보상의 선처를 부탁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건 정말 웃기는 일이다. 우선 영사관이 우리 상인들을 대표하지 않는다. 그들이 나서면 우리가 자동적으로 이 사회에서 외국인 취급을 받게 된다. 우리에 대한 편견이 제일 무서운 존재다. 아마 영사관의 착각이 심각한 상태인지도 모르겠다. 사건이 생겼을 때 억지부리고, 목소리 큰 사람이 무언가 이익을 얻어낸다는 한국식 질서에 대한 착각인가? 이것은 건물주와 세입자간의 일이고, 보험의 문제이고, 계약의 문제이다. 시의원이나 영사관이 단 한푼의 보상금도 더도 덜도 타낼 수 없는 일이다.
12. 해야 할 일들
1)정체성 확립.
“내가 누구인가”를 확실하게 깨닫는 것이 출발점이다. 내가 한민족의 문화적 배경을 가진 미국국민이라는 것에 대한 정체성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신약 성경 13권의 서두에서 항상 밝히는 것이 그의 정체성이다. “나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도가 된 사람이다”라는 고백이다. 이것은 자기존재에 대한 인식일 뿐만이 아니라, 그의 신앙고백이며, 그의 삶의 방향이며, 그의 위대한 설교의 출발점이다.
2)공부 좀 합시다!
내가 누구인가를 확실히 함과 동시에 거기에 걸맞는 지식과 지혜가 수반되어야 한다. 미국의 수많은 중요 이슈들의 실체가 무엇이며, 이것들이 나의 삶과 얼마나 깊은 관계가 있으며, 보수와 진보의 의견의 차이는 무엇이며, 나의 의견은 무엇인가? 더도 말고, 미국 보통사람들이 알고 있는 정도의 상식을 말한다. 이걸 알아야 이 사회에서 변두리 인생을 면할 수 있다. 이 지식을 가져야 이 다민족, 다문화사회 속에서 번영할 수 있는 지혜를 갖게 될 것이다.
투표장에 가면서 영어로 된 투표용지를 읽을 수 없으면 곤란하다. 커뮤니티에서는 한글 투표용지를 만들 것이 아니라, 영어로 이해할 수 있게 교육, 계몽을 해야 할 것이다. 단세포적인 사고방식 자체가 뒤떨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지식은 자신이 알려는 노력을 해야 얻을 수 있다. 자신뿐만이 아니라 커뮤니티 전체의 노력과 분위기가 조성되면 더욱 좋다. 한인사회 언론들, 단체들, 그룹들이 함께 이 노력을 펴면 이상적이다. 한국의 정치판 잡담이나 하고 정작 내 문제가 무엇인지 까마득하게 모르는 사람은 곤란하다. 미국생활 몇십년이 지나도 한국소식에는 박식, 미국소식에는 무식한 기형적인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이런 사람은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자신에게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
3)균형의 중요성.
어차피 이민 1세들에게는 모국에 대한 정서적 유대 (Emotional attachment)가 있게 마련이다. 이는 자연스런 일이다. 문제는 균형유지다. 모국에 대한 사랑과 관심과 미국에 대한 사랑과 관심에 균형을 갖는 것이다. 이것은 내 삶 속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현재의 삶에 충실하고 번영하면서 1등 국민으로 살아간다면 우리의 과거, 한민족 문화의 뿌리가 빛을 발할 것이다. 현재의 삶을 도외시하고 과거에만 매달려 산다면, 과거의 뿌리가 썩고 만다.
4)이민자들은 타고 난 낙천가다.
‘Community Empowerment’라는 단어는 주류사회에서 매우 흔히 쓰인다. 자신이 소속된 그룹의 능력을 강하게 육성한다는 의미다. 정치력과 경제력을 향상시키고, 인권, 민권을 보호한다는 의미다. 우리가 비록 소수이지만 이 노력을 지속적으로 펴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 ‘소수 중의 소수’라는 한계다. 우리가 그룹으로 대접을 받기는 쉽지 않다. 한인 중에서 시카고 경찰국장이 나오는 일은 한동안 없을 것이다. 한인 중에서 시카고 메이저 방송의 메인 앵커가 나오는 일도 당분간 없을 것이다. 우리 표가 선거를 좌우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보통 다른 소수계들이 하는 것처럼 아시안커뮤니티들이 연합(Coalitions)을 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다른 아시안계의 사정이 우리보다 더 좋지도 않다.
불행히도 한인 1세 커뮤니티는 쇠락기에 이미 접어들었다. 이민은 끊기고, 2세들은 커뮤니티를 떠나고, 이족결혼 비율이 50%가 넘는다. 코리안이라는 정체성 자체가 멀지 않아 위협을 받게 될 것이다.
그래도 우리에게 할 일이 많다. 한인사회가 합심해서 변화하는 일이다. 우리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번영하고 발전하기 위한 목표설정부터 다시 해야 한다. 이를 위한 출발점은 먼저 개인 자신들이 지혜로워져야 한다. ‘Individual smartness’ 즉 개인이 똑똑해져 1등 시민으로, 주인으로, 예언서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자존심과 자긍심의 문제이며,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귀중한 것이다.
이민자들은 뭐든지 잘 될 것이라는 사고를 갖고 있는 타고난 낙천적가들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감히 우리가 수천년 살아온 땅을 뒤로 하고 바다를 넘어왔겠는가?
지난 약 30년의 우리 역사가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우리의 미국을 사는 지혜에 진화론적인 변화가 없었더라도, 우리가 아직도 예언서를 읽지 못하고 역사서에 매달려 산다고 할지라도 아주 실망만 할 일은 아니다. 어차피 발전적 변화에는 고뇌와 인내와 희생이 따르기 마련이다.
희망의 끈을 힘차게 당기는 것이다. 우리가 이 다양한 사회에서 1등 국민으로, 주인으로, 대접받고 공헌하면서 살게 될 것이라는 희망, 이 위대한 사회의 모든 국민들에게 자유와 평등과 인권과 박애라는 고귀한 가치가 진정으로 실현되는 날이 올 것이라는 소망을 갖고서 말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