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의 경제토크] 세계경제, 디폴트 도미노 사태 오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0월9일 기자회견을 열어 디폴트 위기로 치닫고 있는 연방재정 난국을 풀기 위해 여야가 협력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신화사>

요즘 ‘디폴트(default)’란 말을 흔히 듣는다. 미국 연방정부가 셧다운 되면서 디폴트 위기에 몰렸다, 그리스가 디폴트 상태에 들어갔다 등등 뭔가 좋지 않은 말임에 틀림없다. 세계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운 이 디폴트란 과연 무엇인가.

돈을 꾸고 꿔줄 때 쌍방 간 합의한 계약내용 중 하나라도 안 지키면 바로 디폴트가 된다. 많은 경우 계약내용이 워낙 번잡해서 의도하지 않은 디폴트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자 꼬박꼬박 내고 원금 제때 갚으면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채무불이행과 관련된 말 중 인솔번시(insolvency)는 자본잠식 상태라는 뜻으로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말한다. 뱅크럽시(bankruptcy)는 채권자들이 달려들어 청산하는 과정을 뜻한다. 한 나라 정부든 큰 회사든 디폴트가 발생할 수 있다. 채권자가 눈감아주는 경미한 디폴트는 부지기수이고, 정말로 망해버리는 디폴트도 쉽게 일어날 수 있다.

미국정부를 예로 들어보자. 미국정부는 매주 국채를 옥션에 부치는데, 이 경매에 몇몇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곧장 디폴트가 된다. 새 국채를 찍어서 옛 국채를 갚아나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새 국채가 판매되지 않으면 만기가 된 옛 국채를 못 갚게 되고 그러면 당장 디폴트가 발생한다. 세계경제가 일대 타격을 받는 대혼란 상태로 들어가게 된다.

테러리스트들이 용기만 있지 머리는 나쁜 것 같다. 내가 테러리스트라면 위험하게 비행기 폭파하고 그런 난폭한 짓 하지 않고, 그날 아침 옥션에 가는 미국 국채딜러 몇 명을 납치하겠다. 그게 비행기 떨어뜨리는 것보다 훨씬 타격이 클 것이다. 대우 망할 때도 삼성생명에서 새로 찍은 대우 회사채를 사주지 않고 만기 돌아오는 회사채를 돌려버리니 며칠 가지 않아서 그 큰 기업이 날아가 버렸다. 물론 그에 앞서 구조적 문제가 있었지만.

기업을 하다 보면 반드시 돈을 꾸게 되고 만기가 되면 새로운 부채로 옛 부채를 막는 구조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날 덜컥하고 약간의 사고가 나면 큰 기업도 흔적 없이 사라지게 된다. 아무리 펀더멘탈이 튼튼하다고 호소해도 소용없다. 많은 한국 기업은 어음이 돌아올 때 새 어음을 발행해 막는다. 새 어음을 사주는 사람이 없으면 간단히 부도가 나는 구조다.

물론 돈을 빌려주고 소득을 올리는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안전하고 이자율 높은 곳에 돈을 놓아야 하기 때문에 리턴과 리스크만 맞으면 빌려주려는 사람이 계속 있을 수 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아주 작은 일로 쉽게 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어느 국가 리스크가 갑자기 올라갔다고 소문 나고 패닉이 진행되면 그런 패닉에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 패닉을 더 크게 만들어 버린다. 이른바 공매(short sale)를 하는 것이다. 펀더멘탈과는 괴리된 현상이 상당히 오래 진행될 수 있다.

세상에 어려움에 처한 기업이나 사람 치고 ‘지극히 단기적이고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일 뿐’이라고 주장하지 않는 경우가 없다. “저희 회사가 사실 펀더멘탈이 약합니다, 도와주십시오” 그런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유동성이 무한하다면 어느 기업이고 다시 살릴 수 있다. 베팅을 계속 더 크게 하면 된다. 언제고 한번만 터지면 되니까. 디폴트라는 것은 ‘자, 이제 베팅 그만 하라’는 경종이다.

미국 재정위기 심화로 세계 금융시장이 출렁이고 있다. 사진은 한 일본여성이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 사태로 급락한 니케이지수 전광판 앞을 지나는 모습 <사진=AP>

새 거품 만들어 금융위기 넘겨

미국정부도 디폴트 할 수 있는데, 하물며 기업이야. 아무리 튼튼한 기업이라도 디폴트 쉽게 발생할 수 있다.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거꾸로 얘기하면 다들 그런 위험을 안고 사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망하지 않겠다는 식의 생각에도 문제가 있다. 망할 때가 되면 망해야 한다. 미국 은행의 경우 디폴트가 전혀 없는 지점은 영업을 잘 한 것으로 평가 받지 못한다고 한다. 어느 정도 디폴트가 나더라도 공격적으로 돈을 굴려야 영업을 제대로 하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얘기다.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에서 비롯된 세계 금융위기는 각국의 대량 유동성 공급과 제로에 가까운 이자율로 최악의 상황을 모면했다. 간단히 말하면 버블이 깨져서 생긴 위기를 새로운 버블을 만들어서 넘긴 것이다. 그런데 고용이 전혀 회복되지 않은 채 여기저기 자산버블 과잉상태로 들어서고 정부 부채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특히 부동산은 확실한 과열이다.

이런 상태가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는 없다. 결국 몇몇 나라가 디폴트를 선언하게 된다. 건강한 기업도 위험하다고 소문이 돌면 바로 그 소문 때문에 넘어간다. 조금만 문제가 생기면 채권자들이 돈을 회수하게 된다. 구제금융의 약발도 소용없이 유럽 일부 나라가 디폴트 상태에 들어가면 그 다음 위험한 나라들로 불똥이 튀게 된다.

이때 국제 공조가 이뤄져서 잘 넘어가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디폴트 도미노 사태가 나타날 수 있다. 이번에는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몇 배 강도 높은 대책을 써야 한다. 그러나 동원 가능한 정책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미국정부는 비실대고 시카고학파 경제학자들이 목청 돋워 정부개입을 견제하고… 그렇게 버블이 다시 깨지면서 세계경제가 휘청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로 가지 않으려면 각 나라가 정책 포인트를 금융에서 재정으로 바꿔야 한다. 특히 미국은 무역역조를 더 심화시키지 않는 분야에서 고용을 창출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지금 미국 전역의 다리 70%가 낡아서 위태위태한데 그걸 대대적으로 수리한다든가, 전기차 위주로 인프라를 다시 깐다든가 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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