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의 경제토크] 위태로운 ‘아베노믹스’…일본국채 투매 일어날까
어빙 피셔(Irving Fisher, 1867~1947)라는 경제학자가 있었다. 한창 때는 케인즈보다도 더 잘나가는 인기스타였다. 그런데 말 한 마디 잘못해서 몰락했다. 대공황 직전에 “호황이 오래 갈 것 같다”고 한 것, 그걸로 추락했다. 오늘날엔 그저 그런 경제학자로 기억된다.
내가 보기엔 그가 시사문제에 묘한 코멘트를 많이 한 반면 자신만의 확실한 통합이론을 구축하지 못한 것이 경제학자로서 몰락을 자초한 듯 하다. 아무튼 이 분이 만든 방정식(난 사실 다른 사람이 만들었다고 믿는데 하여간)이 꽤 유명하다.
‘MV = PY’라는 교환방정식이다. 돈을 많이 찍어서(M) 그게 마구 돌아다니면(V) 물가가 오르거나(P) 총 생산량이 는다(Y)는 얘기다. 아주 투박한 논리다. 이론적 아름다움, 이런 것 일체 없다. 이 방정식의 결론은 V, 즉 돈의 회전속도(Velocity)가 일정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돈을 많이 찍으면 물가가 올라간다는 얘기다.
이처럼 단순한 이론임에도 ‘MV = PY’ 방정식은 미학적으로 보기 좋다. E = MC2 정도로 보기가 좋다. 그래서 많이 인용된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에 비하면 턱없이 허망한 공식이다. 그래도 이야기 전개에 도움이 되니 사용해보자.
‘교환방정식’의 위기
가끔 V가 크게 변하는 경우가 있다. 바로 2007-08년 미국 서브프라임 위기 때 그랬다. 자산담보증권(asset-backed securities) 산업이 죽고, 헷지펀드(hedge fund)가 반 이상 사라져 버렸다. 돈이 돌지 않는다. V가 확 줄어버린 거다. 그래서 M(돈)을 왕창 급수혈했다. 즉 정부가 돈을 무지하게 찍어 경제체제 속에 집어넣어 겨우 P(물가)와 Y(생산)를 유지했다.
그런데 요즘엔 V가 회복 정도가 아니라 2008년 수준보다 오히려 더 높아졌다. 자산담보증권업이 다시 살아나고, 헷지펀드들이 대거 활개치기 시작한다. 돈이 도는 거다. 도는 정도가 아니라, 미친 듯 ‘핫(hot)’해지기 시작했다. ‘작열’이라고 멋지게 표현하고 싶지만, 요새는 그런 단어 잘 안 쓰니 ‘지글지글 끓기 시작했다’고 해두자. 미국의 주택경기, 내가 보기엔 이미 너무 ‘핫’해졌다. M을 빼주어야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게 됐다. 바로 그래서 미국은 이른바 경기진작 모드에서 출구전략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방향이다. 역시 미국사람들이 경제를 좀 안다.
그런데, 아… 아베! 오… 노! 아베노믹스. M을 2배로 늘린단다. 미국부터 M을 줄여나가는 판국에 혼자서 M을 늘린단다. V가 너무나 안 돌고 있었으면, M을 늘리긴 늘려야겠지.
자, 그럼 어떻게 되냐면, 미국 이자율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엔저가 계속된다. 일본정부의 재정불균형이 정말 어려운 상태로 들어간다. (이미 들어갔지만 더 들어간다. 확실하게…) 경기회복은 끝내주게 진행되는 것도 아니고 미적지근한 정도로 진행된다. 내수경기는 잘 회복되지 않고 인플레만 발생한다.
그러면 일본국채를 사거나 가지고 있는 사람은 미친 짓 하는 거다. 이자가 낮으니 가지고 있으면 엔저로 손해 봐, 나중에 일본 내 실물재화로 바꾸려 해도 그 실물재화의 가격이 올라가 있어, 거기다 일본정부가 딴소리할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김정은이 도쿄와 오사카 폭격하겠다고 협박해, 거기다 지진 몇 방 터지고 원전 사고 한두 번 더 일어나, 중국이 본격적인 일본견제로 들어가, 일본 내각이 스캔들 같은 걸로 무너져(이 친구들 그럴 가능성 아주 높다), 거기다 대형회사 파산 두어 개 더 발생해…
일본국채, 터질 듯 말 듯한 상태다. 엔저가 더 진행될 것으로 예측되면 장기국채가 매력을 잃는다. 그러면 장기와 단기 이자율 사이에 격차가 벌어진다. 어느 선을 넘어가면 대혼란이 발생한다. 금융시장 판 자체가 깨지고, 일본국채 대투매(Run)가 일어난다. 물론 국제간 공조가 이뤄질 것이고, 궁극적으로 어떻게 막기는 막을 것이다. 그러나 엔저정책은 포기해야 한다. 그 결과 경제는 다시 불황으로 갈 것이고, 국채만 신용을 크게 잃게 된다. 내가 보기에 이게 가장 확률 높은 시나리오다. 까딱 잘못하면 2차대전 이후 열심히 벌어둔 외화 이번에 다 날릴 수도 있다.
나는 일본이 잘 됐으면 좋겠다. 진심이다. 주위에 잘 되는 사람들이 많아야, 나도 잘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내가 생산하는 물건을 일본사람들이 많이 사줘야 내가 돈을 더 번다. 그러나 요즘 꼴을 보니 이 친구들 영 사람 걱정되게 만든다.
세계경제의 시한폭탄, 공공부채
경제 예측과 분석, 특히 거시지수는 이상하게도 거의 다 국민총생산(GDP) 대비로 이뤄진다. 그게 꼭 옳은지는 모르겠는데, 거시경제라는 관념계의 기본 사고단위가 GDP다. 뭐든지 GDP 대비 몇 %식으로 따진다. 다른 수치가 측량기준으로 GDP보다 관념적으로 불안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사실 외환보유고, 금 보유량, 인구, 실업률… 모두 나름 의미 있는 숫자지만, 거시경제의 기본 측량단위로 삼기엔 왠지 불안하다.
아무튼 앞으로 세계경제의 시한폭탄은 각 나라의 GDP 대비 공공부채라는 숫자다. 그게 크게 늘어나면 말세가 가까워진 걸로 보면 된다. 국제금융기금(IMF)에서 매년 2회 집계해준다. 지난 4월 집계에 따르면 상당히 안정돼 간다고 한다. 좋은 소식인데, 문제는 일본이다.
아베노믹스로 돈을 왕창 푸는데, 명목상 GDP가 연 4%(물가 2%+실질 2%) 성장하고 공공부채 증가도 그 선에서 그쳐야지, 이 시나리오에서 하나라도 어긋나면 일본국채 투매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면 파멸이고 파국이고 공황이다. 지금 월 스트리트 분위기는 “위안부 부정도 좋고 침략 부정도 좋은데, 2년내로 GDP 4% 성장, 단 부채도 그만큼만 증가, 아니면 못 봐준다” 로 모아졌다. 내가 기억하는 한 한 국가에 대한 평가와 분위기가 이런 식으로 확연하게 몇 개 지수로 모아진 적이 없다. 참 예외적이다. 하여간 거기서 하나라도 비끗하면 다음 세계경제 공황은 일본국채 투매에서 시작한다.
경제는 무한히 복잡한 생태계다. 중요한 재화의 가격변화는 무한히 복잡한 반응을 연쇄적으로 일으킨다. 엔화가치도 마찬가지다. 1985년 플라자 협정 이후 30년간 일본기업들은 엔고에 적응해왔다. 많은 기업이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겼다. 이들 중 많은 기업이 일본으로 재수출하고 있다. 이런 기업들은 모두 날벼락 맞은 거다. 지금 일본의 대기업 중 해외 생산기지 없는 기업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안 그래도 경쟁력 허약한 업종들은 영원히 퇴출된다. 일본서 엔저로 이익 보는 집단과 손해 보는 집단이 있을 것인 바 그들간의 파워게임도 구경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일본 소비자들은 사실 죽지 못해 산다고 보면 된다. 생활비 상승이라는 핵공격을 맞은 거다. 물가가 계속 오르니 저축하지 말고 돈을 쓰라는 얘긴데, 엄청 고령화 사회에 도대체 몇 살 더 살지 모르는 판에 소비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소비 늘어나려면 정부가 발동을 걸어줘야 한다.
아베 이전의 엔화가격. 그것도 무한히 많은 요소들이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검토돼 결정된 숫자다. 아베가 함부로 바꿀 그런 간단한 숫자가 아니다. 일본 총리의 권력의 세기가 1 이라면, 일본 돈의 국제가격이란 존재의 힘은 1만, 아니 1억 정도 될 거다. 시장의 힘. 이거 무서운 거다. 엔저, 내가 보기엔 반드시 시장의 역풍을 맞게 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