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베노믹스와 TPP’ 성공할까?
지금 일본인들에게 경제 분야 최대 관심사는 아베노믹스의 성공여부와 아베 총리의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TPP) 교섭 참가선언이다. 불황의 늪에서 빠져나오려 몸부림 쳐온 일본인들은 아베 총리의 과감한 두 가지 승부수에 대해 “나라 경제를 망치려 한다”는 일부 야당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주목과 기대를 모으고 있다. 아베노믹스의 요점은 엔화를 풀어 인위적으로 엔저를 유도해 경기 부양을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즉 대폭적 금융완화와 재정확대, 규제완화를 중심으로 한 산업 활성화 정책이다.
실시한지 몇 달 되지 않았지만 엔저로 인해 환율이 치솟고 있다. 일본 기업이 채산성을 맞출 수 있는 환율을 달러당 83엔이라고 분석하고 있지만 지금 환율은 1달러당 100엔대에 육박하고 있다. 이는 환차익만으로도 일본 기업의 수익성이 10% 이상 개선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 주가가 연일 급상승하면서 불과 몇 달 전만해도 잇단 구조조정으로 침울했던 증권사들은 최근 주가가 연일 급상승하면서 거래량이 늘어 일부 증권사들은 성과급까지 주고 있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엔고의 높은 파고를 견뎌낸 일부 일본 기업들은 순풍을 만난 듯 약진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엔저 혜택을 모든 기업이 누리는 것은 아니다. 지난 5년간 광풍처럼 몰아친 엔고의 높은 파고를 넘기 위해 피나는 자구노력을 기울여온 기업들만이 엔저혜택의 수혜자가 되고 있다. 반면 자구노력을 소홀히 하고 기술력과 내수시장만 믿고 안주해온 기업들은 수혜는커녕 오히려 위기를 맞고 있다. 한때 일본경제의 상징으로 세계시장을 석권했던 소니, 파나소닉, 샤프 등은 연구개발 부진과 해외시장 개척에 소홀해 엔저의 와중에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편 혹독한 엔고의 역풍 속에서도 해외의 낯선 사업 환경에 대응할 수 있도록 생산시스템의 글로벌화에 주력하며 생산기술혁신을 도모해 온 도요타는 작년부터 다시 세계 최대의 자동차 기업으로 부활하는데 성공했고 엔저에 힘입어 중국 등 해외시장 확대에 주력하며 더 큰 도약을 시도하고 있다. 도요타와 함께 엔고 시대 생존을 위해 피나는 경쟁력 강화 노력을 전개해온 덕택에 지금 엔저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회사로는 캐논, 교세라, 닛산 등이 꼽히고 있다.
도쿄 일부 큰 백화점에 사람이 몰리고 돈이 잘 돌고 있다며 “일본의 경기가 살아나는 것 아니냐”고 일부 언론에서 떠들고 있지만 평범한 일본인들은 아직 엔저의 혜택을 전혀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일반 사람들은 “주가가 올라서 경기가 좋아진다고 하지만, 오히려 물가가 올라서 걱정”이라고 말한다. 엔저로 수입 물가가 비싸져 전력요금과 기름값이 치솟고 밀가루 등 생필품 가격도 올라 오히려 가계가 어려워졌다고 불평들이다. 정부의 압력으로 일부 기업들은 임금을 인상했지만 일부에 그치고 있고 대부분의 기업들은 아직 임금 인상은 생각도 못하는 실정이다.
야당의원들은 돈을 풀어 경기 회복을 하겠다는 것은 나라경제를 도박판으로 만들려는 것이라며 당장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일부 경제학자들도 재정 확대로 시중에 풀린 돈이 기업 활성화로 연결되지 않을 경우 일본판 리먼 쇼크로 일본경제는 회생불능 상태에 빠져들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 당국자들은 이번 정책이 그동안 엔고 극복을 위해 체질 개선을 단행한 일본 기업들이 세계시장에서 과거의 위상을 회복하는 발판을 마련해 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규제완화, 법인세인하, 경쟁력강화를 위한 재정 투입 등이 뒤따라 일본기업의 경쟁력을 더욱 튼튼하게 해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최대의 의문점은 엔저 현상이 원하는 만큼 지속될 수 있느냐이다. 금융완화와 재정확대 정책은 사실 그동안 일본정부가 여러 번 시도해왔던 것으로 과거에는 그 효과가 일시적 현상에 그쳤다. 일본은행이 아무리 현금통화를 발행해도 일반은행들의 대출이 늘지 않아 총통화 증가율로 이어지는 데는 실패했던 것이다. 재정확대가 일시적 효과에 그쳐 경기회복을 통한 세수 증대로 이어지지 않으면 지금도 심각한 일본의 재정 적자 문제가 더욱 악화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미국과 일본 간의 금리 격차도 환율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미국 금리가 일본보다 높으면 달러강세-엔화약세를 지속할 수 있다. 얼마 전까지 미국의 제로금리정책으로 달러약세-엔강세가 나타났었지만 최근 미국경기의 회복에 따라 미국 금리가 상승함에 따라 미국과 일본의 금리차가 1%포인트 정도로 확대됐고 이것이 현재의 엔저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아베노믹스가 예상대로 2% 물가상승에 성공할 경우 일본의 금리 상승은 불가피하고 그것은 다시 엔고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일본 정부가 처한 딜레마다.
또 한 가지 일본 국민의 관심을 끄는 것은 아베 총리의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TPP)교섭 참가 선언이다. 이는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인 FTA보다 좀 더 범위가 넓으면서도 강력한 다자간 자유무역 협상으로 2015년까지 상품의 관세 철폐뿐 아니라 지식재산권, 노동규제, 금융, 의료 분야의 비관세 장벽 제거까지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싱가포르, 베트남,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등 동남아 국가를 중심으로 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 11개국이 참가중이나 일본이 협상에 참여하기로 결정하면서 12개국으로 늘어났다. 일본의 가장 큰 참가 목적은 미국중심의 무역협정인 TPP를 통해 수출을 증대시키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다. 전임 노다 총리도 2011년 11월 TPP 관계국들과 협의를 시작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일부 민주당 의원들의 끈질긴 반대로 불발에 그쳤었다.
협상 참여국 중 세계 1위 경제대국인 미국과 3위인 일본이 차지하는 국내총생산(GDP) 비중이 90% 정도여서 TPP는 사실상 미일 자유무역협정(FTA)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만약 실현된다면 세계최대 자유무역 권이 출현하게 된다. TPP를 통해 일본이 얻으려하는 또 하나의 목적은 미국과 군사동맹을 강화시키고자하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공을 들여온 TPP에 참여함으로써 미·일 군사동맹도 더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베는 “미, 일 동맹을 축으로 아시아 태평양지역 경제권의 룰을 만드는데 일본이 주도적 역할을 하고 싶다”고 누차 말해왔다.
그러나 농업 등 여러 분야에서 미일 양국의 첨예한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일본은 일본대로 미국은 미국대로 이해득실 계산에 분주하다. 아베 총리가 TPP 협상 참여를 강행한 데 대한 부담도 커지고 있다. 일본은 당초 여당인 자민당을 중심으로 쌀과 소고기ㆍ돼지고기, 유제품, 설탕, 밀 등 5개 주요품목 관세만큼은 절대 낮춰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협상을 앞두고 일본산 자동차 관세에 따라 이 품목들도 관세를 낮춰줄 의향이 있다고 자세를 바꿨다. 그럼에도 미국은 자동차세 여부와 상관없이 미국산 농산물 관세는 철폐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캔자스와 아이오와 등 미국 중서부 곡창 지대를 대표하는 의원들은 TPP가 발효돼도 농산물 수출에 큰 변화가 없을까봐 정부를 계속 압박하고 있다. 미 무역대표부는 이미 자동차 산업이 발달한 지역 위원들로부터도 집중 포화를 맞고 있다. TPP 발효로 일본 자동차를 미국으로 수입할 때 부과되는 2.5%의 관세가 철폐될 경우 미국 자동차 업계가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며 일본의 TPP 참가에 반대하고 있다. 아베 총리의 가장 큰 당면 문제는 농민 등 일부 국내의 반대 여론을 어떻게 무마하느냐는 것이다. 마치 우리나라가 미국과 FTA협상을 시작했을 때 지방 농민들을 중심으로 격렬한 반대 데모가 지금 일본에서 똑같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또 일본의 일부 정치인과 학자들도 TPP 참가는 일본경제를 파멸의 길로 이끌게 될 것이라면서 적극 반대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확실한 변화를 바라는 일본 국민들 대다수는 협상 참가에 긍정적 평가를 하고 있고 일본 재계에서도 즉각 환영의사를 밝혔다. 최근 여론 조사에 의하면 일본 국민 10명 중 7명이 협상 참가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의 한 유력 신문은 지난 3월 전국 1553명을 대상으로 전화 여론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71%가 TPP 교섭 참가 선언을 찬성한다고 답했다고 보도했다. 반대는 18%에 그쳤다. 또 TPP 교섭 참가가 일본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매우 좋다’가 7%, ‘약간 좋다’가 58%로 긍정적인 답변이 과반(65%)을 넘었다. 반면 ‘약간 나쁘다’가 20%, ‘매우 나쁘다’가 7%로 부정적인 답변은 27%를 차지했다.
일본 정부는 TPP가 발효되면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연간 3조2000억엔, 연율 기준 0.66%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일본 농가의 손해는 최대 3조엔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를 의식한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자민당 간사장은 “협상의 중점을 쌀, 밀, 소고기, 돼지고기 등 관련 산업을 보호하는 데 둘 것”이라며 “관세 인하폭도 1% 안쪽이 될 것”이라 말했다고 일본 한 유력 경제지는 전했다.
잃어버린 10년의 고통 속에서 허덕이는 일본인들은 확실한 성공 보장도 없는 양날의 칼과 같은 아베 총리의 야심찬 두 가지 정책에 희망을 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