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경제통합 둘러싼 미중 ‘샅바싸움’

RCEP vs. TPP 누구에게 유리한가

중국 배제한 TPP,?미일 빠진 RCEP

최근 10~15년간 동아시아 혹은 아-태 지역을 배경으로 한 광의의 지역협력, 혹은 보다 좁은 범위의 경제협력이 급증했다. 이에 따라서 다양한 영문 약자들이 이 지역에 떠돌고 있다. 지역협력을 관찰하는 학자들조차도 따라 잡기 어려울 정도의 많은 기구, 협력체, 이니셔티브들이 이 지역에 명멸하고 있다. 물론 이 모든 협력들이 다 내실 있고, 성과를 내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반면,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기에는 또 나름대로의 중요성이 있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경제)협력의 시작은 탈냉전이 시작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냉전의 종식을 즈음으로 아태경제협력(APEC)이 시작되고, 동아시아경제그룹(East Asia Economic Group: EAEG)도 제안됐다. 그러나 무엇보다 1997-98 아시아 경제위기를 빼놓고 동아시아 지역의 경제협력을 설명하기 힘들다. 경제위기를 기점으로 시작된 아세안+3(ASEAN+3, 아세안 10개국과 한, 중, 일 3국 사이의 협력), 그리고 2005년부터 이 위에 추가된 동아시아 정상회의(East Asia Summit, EAS, 아세안+3에 인도, 호주, 뉴질랜드를 포함한 형태) 등이 등장했다. 아세안+3는 지역 경제통합의 비전으로 동아시아자유무역지대(East Asia Free Trade Area: EAFTA)를 상정했고, 동아시아 정상회의는 그 대안으로 동아시아포괄적경제협정(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in East Asia: CEPEA)을 제안했다.

2009년 등장한 미국의 오바마 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을 마무리하면서 동아시아 귀환(re-engagement)을 선언했다. 이후 이 정책방향의 이름은 동아시아 재균형(re-balancing), 아시아 피봇(pivot) 등으로 바뀌어왔다. 그러나 그 기본 내용은 탈냉전 이후 소홀했던 아시아 지역, 특히 동남아 지역에 대해서 미국이 다시 관심을 기울이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급속히 부상하는 중국의 대 아시아, 특히 대 동남아 영향력에 대해서 미국이 균형을 맞추겠다는 것이다. 남중국해에서 동남아 국가와 중국의 충돌을 빌미로 미국은 동남아 국가와 군사적 협력을 강화해왔다. 다른 한편으로 동아시아 지역협력에 제도적으로 관여하기 위해 2011년 동아시아 정상회의 정식 회원국이 됐다.

미국이 주장하고 있는 환태평양경제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은 다른 측면도 있지만, 미국의 아시아 피봇정책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경제적으로 아시아 국가와 관계 강화를 추진하는 도구로 해석될 수 있다. 이미 베트남,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브루나이 등이 TPP 협상에 참여하고 있으며, 일본도 참여를 공식화 했다. 한편, 기존 미국을 제외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추구하던 EAFTA와 CEPEA는 동력을 얻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상태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지역국가들간 경제통합, 무역자유화가 지지부진한 사이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대안이 지역을 파고들고 있는 상황이다.

이 와중에 동남아 국가들은 새로운 틀, 즉 지역포괄적경제협정(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RCEP)을 새로 제안했다. 기존 CEPEA가 추진하던 아세안+3+3(인도, 호주, 뉴질랜드)를 중심으로 한 지역자유무역협정을 아세안을 중심으로 재추진하겠다는 것이 이 제안의 핵심이다. 한발 더 나아가 2015년 말까지 아세안이 경제통합을 이루겠다고 공언한 바가 실현된다면, RCEP은 실제로 16개 국가간 무역협정이 아니라 아세안을 하나의 단위로 하는 7개 주체간의 자유무역협정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강대국 주도권 다툼 속 뚜렷한 목표 실종

이런 제도의 분출과 지역 강대국, 중견 세력들의 경쟁적인 이니셔티브 속에 지역에서 헤게모니 혹은 더 큰 목소리를 추구하는 중국, 일본, 미국의 전략이 진하게 배어 나온다. 2000년대 들어 동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하게 부상한 중국은 불편한 상대인 인도, 호주 등을 배제한 EAFTA를 오랫동안 선호해왔다. 반면 일본은 중국 견제를 위해 그 대안인 CEPEA를 지지해왔다. 미국이 2009년 이후 경제적 동아시아 귀환을 위해 들고 나온 TPP는 중국입장에서 매우 불편한 제안이다. 중국은 TPP라는 큰 그림 안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중국은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이미 동력이 떨어진 EAFTA를 버리고 아세안이 주장하는 RCEP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TPP가 아세안 국가들 간의 단합을 저해할 수 있다고 판단한 아세안은 TPP의 대항마로 RCEP를 주창했다. 미국의 동아시아 피봇에 경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는 중국도 RCEP이 가진 실현 가능성 보다는 그 전략적 함의에 주목하며 아세안의 주장에 힘을 보태고 있다.

지난 20여 년간 지역에는 수많은 경제통합 주장들이 피고 사라졌다. 그러나 모든 제안들이 착실하게 성장해 공고화되는 단계를 거쳐 안착하는데 실패했다. 이런 실패가 거듭되면서 지역 경제통합에 관한 회의도 역시 증가하고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지역 경제통합이 진정으로 무엇을 위한 경제통합 인가는 진지한 고민을 해볼 시간적 여유도 없이 수많은 제안들이 나와 경쟁하다 사라졌다. 사실 지역 경제통합을 통해서 지역국가들과 그 국민들이 실질적 혜택과 이익을 누려야 한다는 아주 기본적인 필요성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없었다.

그보다는 이 모든 제안들이 동아시아 혹은 아태 지역에서 강대국들 간의 주도권 경쟁, 영향력 경쟁에 의해서 움직여왔다. 또 이런 강대국들의 전략에 대한 지역 중소국 혹은 그 연합들의 대응 전략이 다른 측면에서 경제통합 관련 논의를 추동해왔다. 지금까지 동아시아 지역의 경제통합 실패의 역사는 뚜렷한 목적을 가진 통합 논의가 아닌 다른 전략을 위한 도구로서 통합이었다는 점에 의해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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