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남아시아 경제통합 가시화

ASEAN과 SAARC, 지구촌 식량기지 단일경제권화
아시아 경제패권 둘러싸고 미-중 기싸움 팽팽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과 남아시아지역협력연합(South Asian Association for Regional Cooperation, SAARC)을 중심으로 아시아지역 경제통합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들 경제 블록은 역내 국가의 고르고 빠른 경제적 발전을 보장하는 동시에 정치적 긴장 완화에도 도움이 될?것으로 보인다. 아시아 지역협력은 특히 기후변화와 마약거래, 테러리즘, 극단주의 등 지구촌 곳곳에서 부각되는 인류적 도전과제들이 개별 국가 차원에서 극복될 수 없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단일시장, 생산 기지로 향하는 ASEAN

ASEAN은 2015년 ASEAN 경제공동체(AEC) 결성을 목표로 회원국간?교류관계를 심화해 나가고 있다. ASEAN은 지역여건의 동질성을 바탕으로 회원국간 강력한 경제, 무역 관계를?강화해왔다.

ASEAN 10개 회원국은?투자 보호, 유치, 촉진 등 자유롭고 개방된 투자제도를 포함한 포괄적 투자협정 체결에 접근해가고 있다.

AEC는 그 자체로 보편적 시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AEC는 ASEAN 지역을 단일 시장이자 생산기지로 발전시킨다는 목표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균형을 갖춘 경제개발로 최고 수준의 경제적 경쟁력을 갖춰 세계경제에 완전 통합된 지역공동체 조성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월 공식 취임한?르 루옹 민(Le Luong Minh)?ASEAN 사무총장은 “ASEAN 역내 관세 폐지는?자유로운 상품유통을 촉진하기위한 주요 수단 중 하나로, 단일 시장 및 생산기지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서비스 측면에서도 ‘서비스에 관한 ASEAN 프레임워크 협약’에 규정된 10개 서비스 자유화 패키지를 통해 서비스의 자유로운 흐름을 촉진하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ASEAN 소속 국가는 브루나이와 미얀마,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등 10개(ABC 순) 나라다. SAARC 소속 8개 나라는 아프카니스탄과 방글라데시, 부탄, 인도, 몰디브, 네팔, 파키스탄, 스리랑카(ABC 순) 등이다.

네팔 출신의 아메드 살림(Ahmed Saleem) SAARC 사무총장은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무역과 통상측면에서 지역국가간 협력은 국제무역에 반대하는 보호주의의 폐해를 없애는 것이므로, 세계무역기구(WTO)는 지역무역그룹의 형성 자체를 인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SAARC의 중심인 인도는 세계 최대 쌀 수출국이다. ASEAN 회원국인 태국과 베트남은 세계 쌀 교역의 50% 가량을 통제하고 있다. 진작부터 지구촌 전체를 먹여 살려왔지만, 양대 지역경제블록이 강고해지면서 앞으로는 쌀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둘이 하면 안 되던 일, 여럿이 하니까 된다

살림 사무총장은 “지역그룹이 역내 국가들간 협력하도록 돕지 않았다면 개별적인 협력은 많은 시간이 소요되거나 매우 복잡해졌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예컨대 남아시아자유무역협정(South Asian Free Trade Agreement, SAFTA)은 회원국들이 쌍무적으로는 거래가 쉽지 않은 상품들의 무역을 허용했다.?역내 교역 가능한 상품들부터 지역표준을 개발하려는 노력이 시작됐고, 표준화된 상품들은 역내 모든 지역에 두루, 빠른 속도로 퍼졌다.

국제사회에서 지역 블록의 경제적 효과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아시아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ESCAP)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노일린 헤이저(Noeleen Heyzer) UN 사무차장은 “지역경제통합은 새로운 성장동력과 인력 공유, 지속된 번영 등을 추구하는 데?더욱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적 또는 쌍무적 접근만으로는 이런 도전들에 대응하는 데 충분치 않다”며 “지역협력을 통한 지역문제 해결책은 국가간 발전격차를 줄여 여전히 수천만 명에 이르는 빈곤층을 도와 보다 더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으로?나아가는 길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르 루옹 민 ASEAN 사무총장은 “지역국가간 협력은 천연자원 관리를 개선시키고 무역을 늘리며 교통을 개선시킨다”고 말했다. 그는 “1993년 ASEAN 자유무역지역과 1995년 ‘서비스에 관한 ASEAN 프레임워크 협약’이 의무화되자 1995년부터 2011년까지 ASEAN 역내무역이 연평균 10.2% 성장했다”며 “같은 기간 국제무역 성장률이 연평균 8% 수준이었다는 점에 견줘보면 10%대 성장률은 대단한 성과”라고 강조했다.

SAARC의 반면교사…지역블록이 분쟁을 줄인다

UN은 무역과 상거래를 넘어 개발도상국간 경제기술협력을 의미하는 이른바 ‘남남협력’ 지역블록이 갖는 정치·외교적 파급효과와 분쟁억제 기능에 주목하고 있다.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지난해 12월 “기후변화와 마약거래, 테러리즘, 극단주의 등의 도전은 어느 특정 국가 혼자서 극복할 수 없다”면서 “지역협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여러 종류의 분쟁 소지가 여전히 많아 진전이 더디지만, 2013년 현재 SAARC의 현주소를 보면, 지역경제 블록 내 협력수준이 높아진다면 인접나라와의 영토분쟁 역시?크게 줄어들 수 있다는 예측이 어렵지 않다.

살림?사무총장은 “지역 내 경제협력은 역내 정치적 긴장을 상당 수준 완화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말했다. 이 말은 거꾸로 역내 국가들끼리 각종 분쟁이 여전한 SAARC가 ASEAN에 견줘 경제통합이 상대적으로 더디고 불투명한 이유를 설명해 준다.

인도 방송사인 <뉴델리 TV(New Delhi Television)> 보도에 따르면 2월21일부터 이틀 간 예정됐던 SAARC 회의는 카슈미르 지역을 두고 오해 대립해왔던 인도와 파키스탄간의 분쟁으로 전격 연기됐다. 인도 언론 <비즈니스 스탠다드(Business Standard)>는 이를 두고 “2월 21~22일에 예약된 SAARC 비즈니스 컨퍼런스는 인도와 파키스탄 간 긴장의 또 다른 희생자가 됐다”고 표현했다.?

런던 소재 국제곡물위원회에 따르면, 현재 인도가 단독 국가로서는 가장 많은 쌀을 수출하고 있으며, 태국과 베트남은 세계 쌀 교역의 50% 가량을 통제하고 있다. 지난해 8월 동남아시아의 쌀 수출국들인 미얀마와 캄보디아, 라오스, 태국, 베트남은 가격인상과 수출증대를 위해 새로운 공식 제휴를 선언했다. 식량안보문제가 심화돼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슷한 쌀수출국기구(OREC)가 매일 전 세계 언론 플랫폼을 도배할 날이 임박한 셈이다.

미국 주도의 TPP냐, 중국에 힘 실어주는 RCEP냐

아시아 지역블록이 다른 지역에 대해 배타적인 보호무역 성향을 드러낼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인접 국가나 권역과 협력하지 않으면 스스로 유럽연합(EU)처럼 높은 수준의 경제적, 정치적 통합에 이를 수 없기 때문이다.

ASEAN의 경우 중국과의 돈독한 파트너십(ASEAN+1)을 강조하면서 ‘ASEAN+3’이라는 동아시아 경제협력체, 여기에 호주까지 포괄하는 ‘ASEAN+6’이라는 경제협력체 등을 통해 끊임없이 연대와 협력을 넓혀 나가고 있다.

태국 언론 <더 네이션(The Nation)> 보도에 따르면, ASEAN 10개국은 26일부터 사흘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한국과 중국,?일본, 인도, 호주, 뉴질랜드 등 6개국과 ‘역내포괄적경제파트너십(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RCEP)’ 체결을 위한 공식협상에 돌입했다. 이 파트너십이 체결되면 세계에서 가장 큰 자유무역지대가 출현할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RCEP는 미-일이 주도해 아시아 내에서 중국의 영향력에 제동을 걸 것으로 예측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대안으로 여겨지고 있다. 각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화교 자본이 국부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인도네시아는 TPP 대신 RCEP를 선호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새로 취임한 박근혜 정부는 취임 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통해 RCEP에 적극 참여하되 TPP에는 유보적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ASEAN 국가들 중에서 인도네시아가, RCEP 대상국가 중에서는 한국이 미국이 주도하는 TPP에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사진=안타라뉴스 제공>

미국은 TPP 이외에도 아시아 내에서 중국의 대체세력임을 부각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미국은 최근 중앙아시아 지역의 경제협력과 통합을 강화하기 위해 중앙아시아 경제를 위한 특별프로그램(Special Programme for the Economies of Central Asia)을 경제 전면에 내세웠다. ASEAN이나 SAARC, 메콩강유역개발사업(Greater Mekong Subregion)과 같은 블록내 지역경제 통합 사례를 공유하려는 목적이다. <글=이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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