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값 억지인상보다 줄줄 새는 세금부터 챙겨라
[아시아엔=이상현] 각종 복지재원과 연금부채, 국채이자 등 쓸 곳은 많은데 나라 곳간은 점점 비어가고, 경제활성화를 위해 대기업과 부자들 세금은 못 올리니, 담배세금이라도 왕창 올려야 할 판이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현행 2500원 수준인 담뱃값을 4500원 수준으로 큰 폭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납세자들은 “담뱃값이 오르면 소득 대비 담배지출액이 늘어난 저소득층의 빈곤이 가중돼 스트레스가 늘고 이 때문에 흡연을 더 하게 돼 결국 저소득층일수록 더 가난해지고 건강도 악화되는 악순환에 빠진다”고 반발한다.
선진국들 대부분은 전쟁 등 긴급 상황이나 재정이 부족할 때 담배나 술, 휘발유 등에 붙는 ‘죄악세(Sin Tax)’에 크게 의존했다. 맥주세는 1차 세계대전 동안 10배 올랐고, 2차 세계대전 중 다시 급등했다. 미국은 주세를 재원으로 1차, 2차 세계대전, 남북전쟁 등을 치렀다. 독일에서 담배세는 2차 세계대전 중 극적으로 상승했는데, 특히 전쟁 막바지에는 1갑 가격의 최고 80~95%를 차지했다. 최근 영국에서 가장 싼 담배는 소비자가격 기준 88%가 세금이다. 한국도 담배 값의 64%가 세금이다.
상당수 국가들이 ‘죄악세’를 통해 성공적으로 재정수입을 늘리고 있다. 문제는 국가의 과세논리와 명분이 약하다는 점이다. 게다가 다수의 비음주자, 비흡연자들이 이런 국가의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이스라엘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60%가 “흡연자와 과식자의 부(富)를 건강한 습관을 유지하는 사람들에게 재분배하는 게 옳다”고 응답했다. 뉴욕 시민 대상 2008년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 52%가 소다세에 찬성했다. “소다세 세수는 ‘비만 예방’에 사용될 것”이라는 얘기를 듣자 찬성비율은 72%로 상승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죄악세의 전리품(세수)이 당초 약속대로 사용되는 경우는 드물다. 죄악세로 걷은 세금은 정부의 일상적인 프로젝트에 집행되거나 빚을 갚는데 쓰이게 마련이다. 2011년 미국 정부가 주 담배세로 징수한 253억 달러 중 금연정책 예산에 쓰인 것은 2%에도 못 미쳤다.
하지만 국민들은 정부의 트릭에 잘도 넘어간다. 사람들은 “정부는 개인들보다 더 효율적으로 개개인의 복지를 증대시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흡연자가 담배를 많이 피워 폐암으로 일찍 죽었다고 치자. 정부 입장에서 이 흡연자의 조기사망은 귀중한 납세자 1명이 사라진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건강보험급여지출 대상자 1명이 동시에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학자 루(Leu)와 숍(Schaub)은 1983년 논문에서 “흡연자의 근로연령 동안 의료비 지출이 상대적으로 많은 반면 비흡연자에게 지출되는 연금과 간호, 복지수당이 더 많다”고 밝혔다. 기대수명이 짧은 흡연자에 대한 의료비용이 비흡연자의 그것보다 크지 않다는 점은 흡연율 감소가 반드시 의료비 지출 감소로 연결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경제학자들 연구에 따르면, 담배세율(대체로 담배가격에 고스란히 반영)이 인상될 경우 2~3%만 담배를 끊는다. 이들 때문에 담배세수가 조금 줄면 정부는 다시 ‘금연전사’들을 동원해 담배세율을 올린다. 그때 오른 담배세율을 적용받는 흡연자는 나머지 97~98%다. 점점 더 높아지는 담배세금을 감당하기 어려워지면, 흡연자들의 발걸음은 자주 암시장을 향한다.
담배세가 소매가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영국에서 담배판매량 절반이 밀매되고 있다고 한다. 이집트에서는 2010~2011년 담배세를 80% 올렸더니 암시장에서 판매되는 담배 비율이 70배 증가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8년 “연간소득 25만 달러 미만인 가계는 세금 인상이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2009년 예산적자에 직면하자 연방정부 담배세를 156% 인상했다. 요즘 여러모로 불안한 미국에서 장차 담배 암시장의 규모가 얼마나 커질 지 아무도 모른다.
간접세인 담뱃세는 당연히 역진적이다. 상위 10% 소득계층의 소득 대비 담배지출액은 세후소득의 5% 미만이지만, 최하위 10% 소득계층은 그 비중이 무려 20%를 넘는다. 하루 13개피가 아니라 한 갑을 피운다면 소득의 30% 이상을 담배 사는 데 쓰는 셈이다. 하위계층의 흡연율 자체가 높으니 그 역진성은 가히 기하급수적이다. 소득 5분위 최하위 계층 남성의 흡연율은 45%다. 전문직 종사자들(15%)은 그 3분의 1 수준이고, 노숙자(90%)는 그 2배다.
담배세율을 자꾸 올리면 세수는 외려 줄어든다. 래퍼곡선을 따라 움직이는 것인데, 암시장을 누비는 밀수담배는 담배세수가 하락하기 시작할 때까지 꾸준히 증가한다. 1990년대 캐나다 정부, 2011년 아일랜드 국세청은 각각 경제학자 래퍼의 이론을 현실에서 검증했다.
정치인들에게 이상적인 ‘죄악세’는 “세액이 너무 적어 구매감소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잘 홍보된 건강 캠페인의 외피 하에 수조 원이 조달될 만큼 큰 금액”이다. 영국은 조만간 담배세금에 관한 한 명분도 실리도 모두 잃게 될 것이다.
룸살롱 등의 유흥주점은 고객들이 술 마시고 춤추며 노래하며 함께 놀아 줄 여종업원을 고용할 수 있는 조건(허가)으로 10%의 개별소비세를 별도로 낸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유흥접객영업이 허가되지 않은 단란주점, 일반음식점은 물론 아예 술 판매 자체가 금지된 노래연습장에서도 양주와 도우미가 등장하는 ‘질펀한’ 유흥접객행위가 만연돼 있다.
명분도 실익도 없는 담배세금을 올릴 생각하지 말고, 이렇게 방치돼 있는 세원사각지대에 제대로 된 ‘실질과세원칙’을 적용해 과세하면 재정에 적잖은 보탬이 될 것이다. 청와대는 이런 진실을 대통령한테 제대로 보고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