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웅산 수치는 미얀마의 박근혜가 될 수 있을까?

현지인들의 ‘수치 거품론’ 추적…“헌법 고치고 군부 끌어안아야 대통령”

지구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미얀마의 미래를 밝혀줄 유일한 대안. 1988년 버마 민주화 봉기의 주역들인 ‘88세대’의 민주화 열망을 제대로 품어 독재정권을 제치고 합리적이고 투명한 민주주의 사회를 일궈나갈 유일한 지도자. 탐욕적 외세와 다국적 자본에 맞서 미얀마를 지키고, 소수민족들의 반군활동을 잘 어르고 달래 과거 싱가포르가 벤치마크 한 영욕의 미얀마를 다시 재현할 영도자.

한국인들을 포함한 대다수 나라 사람들이 아웅산 수치에 대해 막연하게 갖고 있는 생각이다. 아니 ‘환상’이다. 그렇다. 2013년 2월 오랜 기간 현장에서 미얀마를 지켜봐 온 각국 지식인들은 단호히 “환상을 깨라”고 얘기한다.

NLD의 미약한 존재감

아웅산 수치를 흠집 내서 이득을 볼 일이 없는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아웅산 수치에 대한 각국 언론의 보도에는 거품이 많이 끼어 있는데, 이는 최근 미얀마 소수민족 반군에 대한 냉랭함만 봐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아웅산 수치는 이 문제뿐만 아니라 매사에 할 말이 거의 없는 이미지 정치인”이라는 혹평도 더러 나온다.

한 언론인은 “아웅산 수치 여사가 해외에서 테인세인 대통령과 동급으로 여겨지지만, 버마 현지에서 수치 여사의 영향력은 크지 않다”면서 “현지인들 중 현명한 사람들은 수치를 경계한다”고 말했다. 또 “미국이 미얀마를 방문하고 수치가 해외 순방을 하는 것이 주요 외신뉴스지만 정치는 수치 혼자서 하는 게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수치여사가 영국인과 결혼한 점도 미얀마 국민들에게 마뜩치 않다. 미얀마 헌법에 따르면, 외국인과 친인척 관계에 있는 사람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

유럽 출신의 한 사업가는 “수치가 미얀마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기업인으로부터 불법정치 후원금을 받았다는 얘기가 블로그에 떠돌았다”면서 “종교적 영향으로 후원금이나 뇌물 등에 대해 관대한 미얀마 사람들도 이 사건을 계기로 수치의 도덕성에 의구심을 품고 있다”고 밝혔다.

수치의 화려한 외국방문에 견줘 미얀마 국내에서 수치와 그가 이끄는 야당 민족민주동맹당(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NLD)의 존재감은 미약하다. 한 아시아 언론인은 “불교 국가인 미얀마에서는 양곤 시내 등 주요 도심에서 하루에도 수차례 종교집회가 성황리에 진행되지만, NLD의 정치집회와 캠페인은 수치가 국회의원에 당선된 양곤 외곽지역에서나 간혹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지갑 연 뒤 치솟는 물가의 정체는?

미얀마에 사는 다수의 외국인들은 아웅산 수치 대신 테인세인 대통령의 노련한 통치술이 오히려 미얀마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고 했다. ‘5호 담당제’식의 감시체계가 엄존하지만, 테인세인 대통령은 철저한 실용주의 노선으로 차곡차곡 미얀마의 곳간을 채우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 출신의 한 사업가는 “자동차용 기름이 최근 몇 달 사이에 3배나 오르는 등 인건비 빼고 죄다 올랐고, 화교들의 ‘땅 사랑’으로 땅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면서 “한편으로 외국인들이 마스터나 비자 신용카드로 현금인출기를 이용해 돈을 인출할 수 있을 정도로 규제가 확 풀렸다”고 말했다.

정상급 정보요원들의 탁월한 주민감시체계를 갖춘 미얀마에서는 외국인들이 민가에서 묵을 수가 없다. 동사무소에 신고를 해야 한다. 이런 나라에서 외국인들이 지갑을 여는 규제를 황급히 풀었다. 테인세인 정부는 뭘 노렸을까. 수십년간 얼어붙어 헐값이 된 통제국가의 재산을 비싼 값에 팔아 국고를 채우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 주도로 경제제제가 차츰 풀려서인지 양곤 시내에서 백인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미얀마는 최근 중국 접경인 카친주(州)나 샨주(州)에서 반군들과 다시 교전을 벌였다. 미얀마에서 추방된 언론인이 태국에서 발간하는 매체 <더 이라와디(THE IRRAWADDY)>는 비즈니스 위험관리 컨설팅회사인 영국 메이플크로프트(Maplecroft)의 최근 자료를 인용, “국제사회가 미얀마에 대한 경제제제를 풀고 있지만 여전히 투자위험은 극대치로 나타났다”고 지난 1월16일 보도했다.

군부 껴안고 소수민족 외면?

미얀마의 소수민족 반군은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외국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미얀마 현지에서는 소수민족 반군들이 아웅산 수치를 대안 권력으로 열망하지 않는다고 한다.

거대 산맥이 있는 카친주와 샨주에는 광물을 비롯한 엄청난 자원들이 있고, 반군들의 투쟁은 이런 자원을 정부군에 빼앗기기 싫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따라서 헌법까지 고쳐 아웅산 수치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그간 아웅산 수치를 강하게 지지해왔던 반군들이 외려 독립을 강하게 요구하고 나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 2011년 6월 17년만에 반군과의 무력전투를 재개한 미얀마 정부군은 지난해 12월말에도 카친반군 지역에 공격용 헬기로 공습을 했고(관련 기사,?카친반군, “버마군이 전투기로 반군지역 무차별 공격”), 아웅산 수치는 이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대신 대통령의 꿈을 피력하면서 군부를 향해 “독립영웅인 아버지의 아들과 같다”면서 돈독한 애정을 보였다.

미얀마를 잘 아는 사람들은 “이승의 영욕보다 우아한 내세(來世)를 중시하는 소승불교의 영향으로, 이 나라에선 ‘주는 사람’이 ‘받는 사람’에게 감사를 표해야 한다”고 말한다. 소문대로, 어쩌면 미국이 자신들의 무기를 받아 준 소수민족 반군들에게 감사를 표했을 지도 모른다. 미얀마 국민들이 아웅산 수치에게 표를 주면서 감사할 일이 생길 지, 누가 짐작하겠는가. <글=이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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