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마 언론자유 선봉 아웅 조 “태양은 랑군 하늘에 꼭 떠오를 것”
反정부인사로 추방, 태국서 독립언론 꾸려···“자유 버마로 되돌아 가겠다”
“버마 정부의 미디어 통제가 완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비판언론을 적(敵)으로 간주했던 과거 군부와 더 가까운 현 정부의 의도는 언론자유화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치적으로 삼아 정치적 지지를 확보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버마 민주화 학생운동 주도자로서 24년 전 버마 정부로부터 추방당한 아웅 조(AUNG ZAW)가 22일 서울 연세대에서 열린 미국 이스트웨스트센터(www.eastwestcenter.org) 주최 국제 미디어 컨퍼런스에서 한 주장의 뼈대다.
버마 정부는 지난해 국외 반정부 미디어로서 아웅 조가?1993년 창간한 <이라와디(The IRRAWADDY, www2.irrawaddy.org>에 대한 내국인들의 접근을 허용했다. 대표적 반정부 언론인으로 추방당해 타국 땅에서 살던 아웅 조가 지난 2월?무려 24년만에 고국 땅을 밟는다는 소식이 버마 현지 라디오 뉴스에도 보도된 것을 보면 버마의 언론정책 변화는 분명하게 감지되고 있다. 조는 지난 2월23일 랑군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당시 공항에 기다리고 있던 알자지라 TV와 인터뷰도 가졌다.
언론통제 완화의 음과 양
조는 ‘버마에서의 5일’이라는 자신의 칼럼에서 “24년만에 고향 땅에 돌아온 나를 따뜻하게 맞아준 국가정보부의 심의관과 다짜고짜 버마의 미디어 환경변화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고 밝혔다.?당시 심의관은 “자네 매체를 검열하는 우리는 체면을 구기지만, 자네 매체 역시 청렴성을 잃게 되는 것이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고 한다.
그는 “국가정보부 고위 관료와 솔직하게 미디어에 대한 의견을 나눈 것은 생각지도 못한 체험이었지만, 역시 미디어 검열 고위 관료의 사무실에서 하는 대화의 한계를 넘지는 못했다”고 회고했다.
24년 만에 조국 땅에서 만난 선후배 언론인의 견해를 종합해 봤을 때, ‘버마 언론의 완전한 자유’까지는 지난한 여정이 남아있음을 직감했다고 한다. 미디어 검열이 여전히 살아있고, 이에 따른 미디어들의 자기검열 사례들 역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버마 민주화운동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 여사의 연설에서 군대 관련 비판 대목이 검열위원회에 의해 삭제된 경우가 대표적이라고 했다. 외신과 몇몇 버마 언론인들이 과거 군부실세가 추진했다가 2011년 현 새 정부가 중단한 미숀(Myitsone) 수력 댐 현장인 카친(Kachin) 주(州)에 가기 위해 중국을 거쳐야 했고, 아직도 현지에서는 제대로 보도되지 않은 점이 버마 미디어 검열의 심각함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아웅 조는 “버마 언론이 자국 검열위원회를 통과해야만 한다면 언론의 청렴성은 의심할 여지없이 손상된다”면서 “이런 미디어 환경은 버마에서 인터넷 리더십이 차츰 증가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미디어 검열 없애는 게 궁극 목표
아웅 조는 “덴마크나 노르웨이를 비롯한 많은 유럽 국가들은 버마 추방그룹을 후원하는 비정부기구(NGO)들에 대한 후원 기준을 강화했다”면서 “버마 정부의 미디어 규제완화에 따라, 정부 의존적 사고를 보이는 미디어그룹에 강한 비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가 버마 당국에 보내는 메시지는 크고 뚜렷하다”면서 “위협적 검열의 그늘에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이고, 버마 내에서 우리를 따르는 언론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입법 활동을 지켜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글로벌 기업들의 버마 진출과 저항 매체 후원그룹들의 강한 요구에 따라, 원조시스템의 위험성과 책임성, 투명성, 부패 등 미디어 안팎 이해관계자가 협력해 규명돼야 할 많은 이슈들을 버마 국민들에게 적절하게 전달해주는 비판적 역할은 더 중요해졌다”고 분석했다.
버마의 미디어 정책 변화 움직임과 관련, 그는 “의심할 여지가 많지만 미디어 검열 공무원들이 국외비판언론인들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는 것은 분명한 변화의 조짐”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자유 없이 실체에 접근할 수 없고, 우리가 애견(愛犬)이 될 준비를 하는 것은 아니잖은가”라면서 “궁극적으로는 자유 버마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고 강조했다.
그는 결론적으로 “두 번째 버마 총선이 치러지는 2015년까지 한 발은 버마 내부에, 다른 한발은 국외에 두는 전략이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라와디江의 예쁜 돌고래 한마리를 찾아서
아웅 조는 1988년?조국에서 추방당한 뒤 1993년 태국에서 이라와디(The IRRAWADDY)를 창간, 2012년 현재 버마는 물론 아시아, 서구권 독자들로부터 높은 신뢰와 명성을 얻고 있다.
처음 <이라와디> 창간 당시 버마 등지의 언론인들은 당연히 “그 매체가 생존 가능할까”라는 회의적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1988년?버마에서 민주화운동이 분출했던 당시 그는 운동권 학생이었다. 지하조직을 만들어 당시 버마 민중을 짓눌렀던 경제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할 것을 촉구하며 독재정권에 맞섰다. 스무 살 대학생 청년은 ‘명목상’ 사회주의 정권 수반인 네윈 장군(Gen. Ne Win)에 맞서 시위를 벌였고, 곧 경찰에 잡혀 일주일간 악명 높은 인세인(Insein) 감옥에 갇혔다. 심문 과정에서 혹독한 고문도 받았다. 곧 풀려났지만 다시 같은 해 6월 개강 때 시위에 가담했다.
군 보안부대 장교가 그를 잡으러 온다는 이웃의 귀띔에 수도를 떠나 그해 6월부터 9월까지 4개월 동안 시골 마을에 잠적, 신분을 감춘 채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확산돼 가던 시위에는 위험을 무릅쓰고 참가했다. 같은 해 9월 그가 조국 버마를 떠난 것은 군사 쿠데타 때문이었다.
그는 2년 뒤 태국 방콕에서 버마정보그룹(Burma Information Group, BIG)을 설립했다. 버마 군사독재정권의 전횡을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와 ‘휴먼라이트 워치 아시아(Human Rights Watch Asia)’ 등 인권단체에 보내면서 태국 신문 <더 네이션>과 <방콕 포스트> 등에 정치칼럼을 기고했다.
그렇게 25살이 된 1993년. 그는 독립 언론을 표방한 격월간 영문판 잡지 <이라와디 뉴스매거진>을 방콕에서 창간했다. 버마에서 추방된 정치범들이 합류, 곧 월간지로 발행할 수 있게 됐다.
<이라와디 뉴스매거진>은 언론의 자유와 독립 미디어, 균형 있고 심층적인 밀착보도로 명성을 얻게 됐고, 최초 버마에 집중됐던 취재영역을 동남아시아 전체로 넓혀갔다. UN을 비롯해 버마와 동남아국가 현지 민주화 인사들, NGO, 외교관, 학자 등 버마에 관심 있는 지식인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1999년 방콕에서 태국 북부 치앙마이로 신문사 본사를 옮겼고, 이듬해 일간 온라인판을 발행하기 시작하면서 독자층이 급격히 넓어졌다. 버마 정부는 이 매체를 불법으로 규정, 자국 국민들로부터 차단했지만 지난 2011년 규제를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