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현의 착한부자] 월급쟁이를 위한 주식회사는 없다

<사진= 이상현>

수억 원의 연봉, 회사에 고용된 기사가 운전하는 고급 승용차를 타고 출퇴근하며, 해외출장 갈 때는 반드시 안락한 비즈니스석을 이용하는 사장님. 한국인들의 눈에 비친, 이른 바 ‘가장 성공한’ 회사원의 표상이다. 그러나 매년 찾아오는 12월 결산과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머리카락이 한 움큼 빠지고 신경안정제를 수십 알 먹는 사장님의 고뇌를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는 이런 분을 ‘월급사장’이라고 부른다. 연봉이 수억 원이지만, 대주주의 이익을 극대화 하기 위해 고용된 월급쟁이일 뿐이다. 다음 해 정기주주총회까지 임기가 보장되지도 않는, 사실상 파리 목숨인 사장님인 것이다.

그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많지만, 정작 그 자신의 목줄(임기나 연봉)은 대주주들이 쥐고 있다. 국가권력도 이런 대주주들의 절대 권력을 옹호하고 있다. 가령 회사의 당기순이익 중 이익잉여금을 이 월급쟁이 사장에게 나눠준다면 그 돈은 ‘특별상여금’으로서 회사 비용으로 인정을 해주지 않는다. 월급 사장에게 제공되는 통상적인 상여금만 비용으로 인정해주는 것이다.

엄청난 성과급에도 불구하고 이 가련한 ‘월급사장’은 본질상 비정규직 노동자와 하등 다를 바 없다. 아니, 대부분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그래도 1년 이상의 계약기간이 명시되지만 월급사장에게는 그나마도 무의미하다.

회사의 인건비를 최대한 줄이고 배당 몫을 늘리기 위해 법인 소유 알짜자산 매각도 불사해야 하는 그의 역할을 좋아할 기업 이해관계자가 있을 리 없다. 그래서 이 월급사장님은 죽으나 사나 오로지 주주이익 극대화만을 위해 몸 바쳐야 하는 운명이다.

그는 대주주의 이익을 축소하자는 취지의 법령을 추진하는 진보정당이나 민주당을 지지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월급쟁이 신화’속 주인공을 동경해 장차 그들처럼 성공할 많은 젊은 이들의 정치성향은 따라서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여기 월급쟁이 사장님의 보너스(상여금)를 가까스로 회사 비용으로 인정받은 이야기를 보자. 국가는 회사가 그에게 지급한 보너스를 비용(인건비)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방식으로 회사 세금을 더 걷으려고 했다. 회사가 세금을 더 내도록 내버려두면 주주들에게 분배될 배당 몫이 줄어들게 돼 ‘월급사장’은 곤경에 처한다. 그가 필사적으로 세금을 줄이기 위해 나서야 하는 이유다.

회사가 지출한 인건비로 상여금을 받은 월급쟁이 사장님은 ‘샐러리맨 신화의 주역’이다. 그러나 그들은 주주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때로 국가와 혈투를 벌여야 한다. 구경꾼이 별로 없다면, 국가는 대체로 대주주들의 이익을 사수해야 할 ‘월급 사장’의 손을 들어준다. 기업의 다른 이해관계자들이 문제 삼지 않으면, 국가는 대체로 주주이익을 더 높여주는 쪽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착한부자 워크숍] 주주 몫 떼어 월급사장에 지급하면, 비용 인정 안돼

대주주인 다국적 모(母)회사의 지시로 자(子)회사가 자사 대표이사에게 지급한 상여금(Incentive bonus)의 법인세법상 비용 인정여부를 놓고 납세자(법인)와 국세청이 다퉜다. 해당 상여금이 주주 소유인 이익잉여금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지급된 상여금인지, 연봉제상 연봉에 포함된 통상적 상여금인지가 쟁점이었다. 다툼 결과는 납세자측 판정승.

법인세법(43조)에서는 법인이 임원 또는 사용인(월급사장)에게 이익처분에 따라 지급하는 상여금을 비용으로 인정(손금에 산입)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특히 해당 상여금이 정관이나 주주총회, 이사회 결의로 결정된 급여기준을 초과했을 경우, 초과분을 비용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국세청은 모회사인 B사가 A법인 지분 100%를 가졌지만, A사의 영업성과에 따른 소득처분에 관여할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A사 영업이익에 따른 상여금도 지급근거가 없다는 것.

또 이사보수 한도 등을 승인하는 A사 주주총회나 이사회가 정상 개최된 바 없다는 점, 연봉제인 A사가 K대표이사에게 이미 스톡옵션까지 지급하고 있는 점 등도 문제 삼았다. 결국 문제의 상여금이 정관(또는 주총) 등에 따른 통상적 보너스가 아닌 법인의 이익처분에 따라 지급한 특별상여금이며, 따라서 (비용으로 인정 안해주는) 손금불산입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국세청으로부터 2억원 가까운 세금을 부과받은 A사는 곧바로 국세심판원(지금의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했다. 심판원은 우선 A사가 K대표이사와 작성한 고용계약서에 명시된 “상여금을 지급할 수 있고 지급액과 조건, 목표 및 지급수준은 별도 통지서에 따른다”는 문구를 주목, 국세청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주총(이사회) 의사록이 부적절했다는 국세청 지적도 심판원을 설득시키지 못했다. A사 주식 100%를 소유한 다국적 모기업 주도로 주총의사록이 작성됐다면, 실제 주총 절차가 없었더라도 상법에 어긋난 의사결정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가장 핵심적인 대목은 스톡옵션 부분. 국세청은 “주총(이사회)의 절차상 적법성 등을 모두 인정하더라도, 의사록상의 임원보수 한도액은 연봉과 스톡옵션을 의미하는 것이지, 문제의 상여금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심판원은 그러나 “해마다 스톡옵션 금액을 추정해 비용처리 해왔고, 미확정 비용이라서 스스로 손금불산입 했으므로 주총의사록 등에 나타난 임원보수한도에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A사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심판원은 결국 ▲K대표이사가 고용계약서에 따라 약정된 보수와 상여금을 지급받은 점 ▲K대표이사가 자신의 보수와 상여금 수준을 결정할 권한이 없었다는 점 ▲최대주주의 권한을 위임받은 자의 지시로 상여금이 지급된 점 ▲법인 소득의 부당한 이익분여로 보기 어려운 점 등을 근거로 납세자 손을 들어줬다.

심판원에 따르면, 세법에서 이익처분에 따른 상여금을 비용으로 인정(손금산입)하지 않는 것은 법인 경영진이 주주 소유인 잉여금을 주총(또는 이사회) 등을 통해 임원 등에게 상여금으로 지급, 법인소득을 부당히 감소시키지 못하도록 하는 데 취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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