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세인상 반대] 흡연자 ‘왕따’시키는 불편한 진실
“전 세계 정치인들이 고령화가 불러올 재정적 도전에 맞서야겠지만, 극단적인 고령에 도달할 가능성이 가장 낮은 사람들에게 복지비용을 청구하는 것은 부당하고 불합리하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크리스토퍼 스노우든(Christopher Snowdon)은 2012년 발표 논문에서 “흡연자의 평균수명이 짧기 때문에 비흡연자보다 연금, 처방, 요양 등의 공공서비스를 덜 이용하고, 생애를 통틀어 지출하는 의료비용은 건강한 사람들보다 낮다”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미국 경제학자 루이스 러셀(Louise Russell)의 2011년 워싱턴포스트 기고를 인용, “미국인 5명 중 4명은 예산이 수반되는 정부의 보건의료정책이 건강보험 재정지출을 절감한다고 믿고 있지만, 실은 보건의료지출을 늘리는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물론 국가가 흡연자나 알코올중독자에게 금연과 금주를 계도하는 일은 권장할 일이다. 그러나 이들을 ‘국민이 고루 누려야 할 보건의료예산을 독식하는 거머리’로 몰아붙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릇된 정보에 기초한 독선이다.
서구 선진국에서 수십년간 진행된 수백 건의 조사연구 결과를 통해서 입증된 것이다. 애연가나 애주가들이 생애를 통틀어 지출하는 의료비용은 대개 건강한 사람들보다 확실히 낮다. 금연과 절주로 몸 관리를 하는 사람들이 그들보다 오래 살고, 고령이 돼서도 공공재원으로 각종 만성질환 치료와 요양, 연금 등 보건복지혜택을 더 많이 향유하는 게 사실이다.
네덜란드 출신 보건경제학자 바렌드렉트(Barendregt)는 “흡연율 감소로 의료비는 단기적으로 줄었지만 현재 흡연자가 나이가 들어 15년이 지나면 다시 상승할 것”이라고 결론냈다. 또 “그들 모두 금연한다면 국가의 의료비 지출은 7% 상승할 것”으로 추정했다. 물론 애주가와 애연가는 금욕적인 사람들에 견줘 공동체의 재원을 좀 더 많이 쓸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양 그룹의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고, 생애전체를 통틀어 볼 때 금욕적인 사람들이 평생 더 많은 공동체의 재원을 쓴다는 점은 놀랍지만 당연하다.
무엇보다 ‘애주가와 애연가’ 그룹이 ‘좀 더 금욕적인 사람들’ 그룹의 후생을 침해한다는 식으로 호도하는 것은 검증된 실증연구결과와 부합하지 않는다. 애주가와 애연가가 암에 걸리거나 만취한 주정뱅이의 술주정을 처리해야 하는 공동체의 비용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보다 분명한 것은 ‘애주가와 애연가’ 그룹의 줄어든 수명이 ‘좀 더 금욕적인 사람들’의 늘어난 수명(또는 사회전체의 후생)과 함수관계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애주가와 애연가’ 그룹은 질병이나 해고, 실업 등 공동체에서 나쁜 처우를 감내할 수밖에 없다. 자신들이 초래한 비용을 스스로 짊어지는 셈이다. 흡연자들은 어쩌면 ‘좀 더 금욕적인 사람들’이 더 많은 일자리에서 더 빨리 승진하고, 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기여하는 측면도 있다.
그런데 한국정부는 ‘애주가와 애연가’들 때문에 마치 공동체 전체가 많은 손해를 보고 있는 것처럼 주장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최근 담배회사를 상대로 537억원의 흡연피해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흡연자들이 담배회사들이 만든 담배를 20년 이상 하루 한 갑씩 피워 암에 걸렸고, 그 결과 그들에게 지급된 진료비로 건강보험공단이 2003~2012년 10년간 537억원을 부담했으니, 그 돈을 반환하라는 것이다. 이게 말이 되는 논리인가.
폐암에 걸린 흡연자는 비흡연자보다 일찍 죽을 확률이 매우 높다. 그들은 담배를 피우면서 담배 값의 64%를 세금(건강부담금 포함)으로 냈다. 그리고 비흡연자들보다 먼저 죽어 건강보험에서 지급될 만성질환 치료비나 요양비용 자체를 아예 받지 못한다.
그런데 건보공단은 전 국민이 납부한 건강보험료가 흡연자들 보조에 사용된 것처럼 말한다. 흡연자들이 일찍 죽어 좀 더 오래 사는 비흡연자들의 보건의료 재원에 보탬이 되는데도 말이다. 건보공단은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빅데이터’를 말로만 자랑하지 말고, 그걸 이용해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생애전체 의료비 지출통계를 산출해달라. 그리고 필자의 주장을 웃음거리로 만들어 달라. 소송은 그 다음에 하는 게 맞다. 그래야 국민들도 자신들이 낸 건강보험료로 지급할 소송비용이 조금은 덜 아까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