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담배소송인가?
편의상 흡연이나 음주, 설탕음료 섭취, 카지노 출입 등을 ‘못된 행위’라고 부르자.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는 이런 ‘못된 행위’가 낳는 경제적·사회적 비용을 곧이곧대로 ‘비용-편익 분석’할 필요성조차 못 느낀다. 그럴 처지도 아니지만, 특히 한국에서는 깊이 있게 문제 삼는 경제학자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국가가 ‘못된 행위’에 세금을 물리는 이유는 억제를 위한 규제차원이 아니다. ‘못된 행위’는 도리어 어느 정도 유지돼야 할 주요 국가재정수입원이다. 선진국 대부분도 전쟁 등 긴급 상황이나 재정 부족 때 담배나 술, 휘발유 등에 붙는 ‘죄악세(Sin Tax)’에 의존했다. 영국에서 가장 싼 담배는 소비자가격 기준 88%가 세금이다. 한국도 담배 값의 64%가 세금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이 담배회사를 상대로 537억원의 흡연피해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보건복지부 산하 건보공단은 국민의 건강 증진에 대한 보험서비스를 위해 설립된 특수 공공법인(준정부기관)이다. 건강보험서비스가 워낙 복잡하고 방대한 업무이므로 국가가 별도로 특수법인으로 만들어 경영을 맡긴 국가업무조직이다.
법령과 정관에 따라 건보의 이사로 참여하는 기획재정부와 안전행정부, 보건복지부는 각각 모든 기업세금과 담배소비세, 국민건강증진부담금 등 담배 관련 재정수입의 이해관계가 민감한 정부 부처들이다. 그래서인지 기획재정부와 안전행정부는 세수에 악영향을 미칠지 모르는 이번 담배소송 안건에 애당초 찬성하지 않았다.
특정 행정부처가 영리기업을 상대로 제기하고, 이해가 상충되는 다른 부처들은 먼 산 바라보는 시늉하고, 사법부가 판결하는 이번 소송이 과연 불가피했는지 의문이다. 물론 다양한 가치가 존중받는 시대임을 감안해 ‘못된 행위’를 많이 해야 세금이 더 걷히는 부처와 ‘못된 행위’를 막자는 부처 사이의 이해관계 상충은 빈번하고 불가피하다.
문제는 정부 부처끼리 정책협의를 통해 풀 문제를 굳이 국민이 부담하는 돈으로 소송을 통해 풀만큼 재정 여건이 한가하지 않다는 점이다. 국가가 이런 난제에 직면했을 때 공무원들이 부처 장벽을 초월해 끝장토론이라도 해서 합의를 이끌어 내고, 대안을 마련하라고 국민들이 세금내 그들의 봉급을 주는 게 아닌가. 흡연자든 비흡연자든, 납세자들의 소중한 건강보험료로 거액 송사를 벌이는 국가기관의 행위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게다가 “패소해도 교훈이 남고, 담배에 대한 숨겨진 사실이 국민대중에게 알려질 기회”라면서 원고(건보)를 부추기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 금연홍보예산 치고는 비겁하고 고약하다.
2013년 예산기준 건보공단 임직원들의 평균연봉은 6014만원이다. 경영평가 상여금을 받으면 더 늘어난다고 한다. 납세자들이 낸 건강보험료로 두둑한 봉급을 받고, 한편으로 고객 돈으로 승패에 초연한 송사도 벌인다. 이기면 상여금 잔치가, 져도 홍보효과가 크단다. 그 사이 국민들은 오르기만 하는 건강보험료 고지서를 보며 한숨만 짓는다.
흡연의 사회적 비용을 담배회사에 부담지우는 일을 납세자들이 진정성 있게 봐주길 원한다면, 먼저 건보공단 스스로 알뜰해져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