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돈·핵억지력·힘’에 의한 평화보다 본질적인 것들
로마서 4장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롬 4:13)
바울은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세상의 상속자’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의 말씀,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2-3)는 언약을 바울은 ‘세상의 상속’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세상을 상속한다’는 개념은 고대로부터 여러 왕들과 제국들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집트, 앗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 등의 통치자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신으로부터 세상을 상속받아 다스리는 존재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받은 신적 명령을 수행하는 일환으로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며, 그들이 세운 질서와 정의라는 ‘복’을 피지배인들에게 수여하려 했던 것입니다.
바울이 살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로마의 황제들은 신의 아들로서 로마라는 복음(euangelion)을 온 세상에 전하는 임무를 맡은 자들입니다. 실제로 ‘유앙겔리온’(복음)이라는 헬라어는 로마가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나 황제가 즉위했을 때, 그 소식을 알리는 단어였습니다. 로마, 그것은 황제가 신으로부터 상속받은 세상이었습니다. 로마가 곧 복음이며, 로마의 통치가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로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고, 로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으며, 온 세상이 로마로 인해 복을 얻으리라” 이것이 바로 팍스 로마나(Pax Romana)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로마를 향해 진정한 복음을 선포합니다. “로마는 복음이 아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전혀 다른 주(Kyrios)에 의한 새로운 질서였습니다. 세상의 상속자는 로마의 황제가 아니라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상속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구원, 예수님의 평화, 예수님의 통치와 정의야말로 진정한 복음이요 좋은 소식이라는 것이 바울이 헬라 세계에 외친 메시지였습니다.
바울이 쓴 편지는 로마를 거쳐 지금 여기 우리에게까지 이르렀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세상은 상속권 투쟁 중입니다. 돈에 의한 평화(Pax Capitalis), 핵 억지력의 평화(Pax Nuclearis), 힘에 의한 정의(Justitia Potentia)가 세상에 대한 상속권을 요구합니다. 우리가 전해야 할 복음은 무엇일까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상속권 양도가 종결되었으며 진정한 세상의 상속자가 곧 오신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