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상대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언어가 ‘최고 소통’
사도행전 21장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매우 조용히 한 후에 히브리 말로 말하니라”(행 21:40)
바울이 히브리 말로 말하자 사람들이 듣기 시작했습니다. 손짓으로 조용해졌던 군중이 히브리어 한마디에 더욱 조용해졌습니다. “그들이 그가 히브리 말로 말함을 듣고 더욱 조용한지라”(행 22:2).
바울은 헬라인에게는 헬라인처럼,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말하는 사람입니다.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할 줄 아는 능력은 하나님이 바울에게 주신 은사입니다.
듣는 사람을 중심으로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화법이기도 합니다. 구약 성경이 왜 히브리어로 기록되었을까요? 신약 성경은 왜 헬라어로 기록되었을까요? 아브라함이 히브리인이었기 때문입니다. AD 1세기경, 복음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헬라어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당시 장터에서 쓰는 아람어를 사용하셨습니다. 신이 인간의 언어로 말씀하셨다는 사실, 창조주의 언어가 피조물의 문자로 기록되었다는 사실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전율이 돋습니다.
성경의 가치는 고대 히브리어와 헬라어가 잘 보존되어 있는 역사적 유물이라는 데 있지 않습니다. 성경이 거룩한 책인 이유는 신비하고 영험한 느낌을 풍기기 때문도 아닙니다. 성경이야말로 온 우주에서 가장 겸손한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이보다 더 겸손한 언어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인간에게 당신의 뜻을 들려주시기 위해 스스로를 낮추시고 제한하셨습니다. 인간의 언어로 말씀하시다 못해 말씀이 육신이 되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사랑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랑하는 만큼 상대의 언어로 말하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성경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의 화법, 겸손의 화법이야말로 성경의 거룩성입니다.
그렇게 기록된 성경을 진리라고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복음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어떤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 성경적일까요?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전 14:19)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너무 교회 중심적이고, 신앙인 중심적으로 고립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읽고 세상은 그리스도인을 읽는다고 합니다. 나는 얼마나 잘 번역된 그리스도인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