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뒤늦게 생각나는 기쁨

사도행전 11장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행 11:16)

베드로는 그제야 생각이 났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기억하지도 못하고 지냈을 것입니다. ‘무슨 뜻일까?’ 궁금하게 생각했던 순간이 잠시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크게 관심을 두고 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난 것입니다.

살다 보면 나중에야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냥 지나쳤는데, 예기치 못한 상황 속에서 과거의 일들이 마치 퍼즐 조각이 맞춰지듯 한 폭의 그림으로 완성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얼마나 이해하고 사십니까? 순간에 다 파악이 가능한 지식이라는 것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요? 신앙 생활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 땅의 계산법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100년을 채 살지 못하는 인생의 너비와 깊이에 다 담을 수 없는 영원함이 있습니다. 내 경험에서 도출된 공식으로는 풀리지 않는 복잡성이 있습니다.

성경만 읽어봐도 그렇지 않습니까? 검은 것은 글자이고, 흰 것은 종이라는 것 말고 아무것도 깨닫는 바가 없을 때도 있습니다. ’굳이 이런 내용까지 읽어야 할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내용들을 마주할 때면 괴롭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깨닫지 않아도 됩니다. 다 깨달을 수도 없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다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은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은 것을 이해되지 않은 채로 남겨놓을 줄 아는 여유입니다. 중요한 퍼즐 조각이 하나님의 손에 들려 있다는 것을 신뢰하는데서 비롯된 여유입니다. 하나님이 퍼즐을 맞추어 주실 때까지 빈자리를 남겨놓을 줄 아는 지혜가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조급해서 퍼즐의 공백을 견디지 못합니다. 내가 찾은 비슷한 모양의 조각을 억지로 끼워 맞추곤 합니다. 그렇게 끼워 맞추다 보면 그림이 이상해지는 것입니다. 그래놓고 그림이 이상한데도 자기 해석과 이해가 맞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사는 게 우리입니다.

억지로 끼워 맞출 바에야 잊어버리고 사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베드로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삶의 어느 순간에 성령께서 생각나게 해주실 것입니다. 발견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때로는 뒤늦게 아는 기쁨으로 인해 우리 삶이 더 풍성해집니다.

성경만 읽어봐도 그렇지 않습니까? 검은 것은 글자이고, 흰 것은 종이라는 것 말고 아무것도 깨닫는 바가 없을 때도 있습니다. ’굳이 이런 내용까지 읽어야 할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내용들을 마주할 때면 괴롭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깨닫지 않아도 됩니다. 다 깨달을 수도 없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다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은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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