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바다를 가르시는 분도, 바다를 헤엄쳐 건널 힘을 주시는 분도…

사도행전 27장

“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을 만나 배를 걸매 이물은 부딪쳐 움직일 수 없이 붙고 고물은 큰 물결에 깨어져 가니”(행 27:41)

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이란 견내량처럼 급한 조류가 형성되는 바다의 독특한 지형을 말합니다. 급한 조류에 의해 바울 일행이 탄 배의 이물이 암초나 모래톱에 걸린 것입니다. 물살이 얼마나 거셌던지 배의 고물은 물살을 버티지 못하고 파손되기 시작했습니다.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바다에 뛰어내립니다. 그리고는 파손된 배의 파편을 붙들고 헤엄쳐서 육지에 도착하게 됩니다.

성경은 이 장면을 구원의 장면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7장에는 ‘구원’이라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배에 탄 사람들의 목숨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심지어 머리카락 하나 다치지 않게 하실 것이니 안심하라고 확언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꼴입니까? 하나님이 배를 인도하시다가 마지막에 집중력을 잃어버리신 것일까요? 급류 속에서 배가 암초와 모래톱을 요리조리 피해가게 하신 후에, 섬의 해안가에 부드럽게 도달시키는 일이 하나님께 어려웠던 것일까요? 아니면 홍해를 갈라보신 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바다를 가르는 방법이 기억나지 않으셨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것도 구원의 그림입니다. 어떤 사람은 인생을 가로막은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통해 구원을 경험합니다. 그런데 부서진 뱃조각을 의지하여 저 육지까지 열심히 발버둥 치는 시간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인생에는 물 위를 걷는 기적의 간증이 넘쳐나지만, 또 어떤 인생에는 배가 부서진 파편이 구원의 증거로 남아 있기도 합니다.

홍해를 건넌 누군가의 경험을 부러워할 것도 없고, 뱃조각을 부여잡고 헤엄치는 모습을 보고 그건 구원이 아니라고 경멸할 이유도 없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탄 배가 부서질 수도 있고, 순조롭게 항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광풍을 잠재우실 수도 있고, 도리어 그 광풍으로 내 인생을 의도적으로 박살내실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구원이고 저것은 구원이 아닐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내가 만들어 놓은 구원의 프레임으로부터도 구원받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바다를 가르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바다를 헤엄쳐 건널 힘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 혹은 배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니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조되니라”(행 27:44)

우리가 탄 배가 부서질 수도 있고, 순조롭게 항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광풍을 잠재우실 수도 있고, 도리어 그 광풍으로 내 인생을 의도적으로 박살내실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구원이고 저것은 구원이 아닐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내가 만들어 놓은 구원의 프레임으로부터도 구원받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바다를 가르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바다를 헤엄쳐 건널 힘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사진은 남해 ‘견내량’ 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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