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2년 전, 나는 어땠나? 같은 질문을 2년 뒤에 던진다면…”
사도행전 25장
“이태가 지난 후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이어받으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행 24:27)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할 새 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더라”(행 25:2-3)
사도행전 24장과 25장 사이에는 2년이라는 간극이 있습니다. 그러나 2년이 무색하리만큼 종교 지도자들의 태도는 한결같았습니다. 심경의 변화도, 태도의 변화도 없었습니다. 바울을 죽이겠다는 일념에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2년 동안 매일 번제를 드리고 절기마다 제사를 드렸습니다.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고, 가끔은 금식도 했습니다. 2년이면 유월절도 두 번이나 지켰을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구원의 은혜에 대하여,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대하여 가르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2년 전과 똑같은 방법으로, 2년 전과 똑같은 분노로, 2년 전과 똑같은 증오로, 똑같은 미움으로 바울을 죽이려 했습니다. 변한 것이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매일같이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찬양했을 텐데, 때로는 금식하며 자신의 죄를 뉘우쳤을 텐데, 어떻게 조금도 변하지 않았을까요?
단 한 번도 예배를 드려본 적이 없는 것입니다. 단 한 번도 하나님 앞에 서지 않았던 것입니다. 기도가 기도가 아니었고, 예배가 예배가 아니었고, 그들이 묵상했던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본인들에게 물어보면 그 누구보다 하나님 가까이에 있었다고 말할 것입니다.
2년 전, 나는 어떠했습니까? 그리고 지금의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미움과 시기, 판단과 정죄에 얼마나 변화가 생겼습니까? 나의 인격과 성품은 얼만큼 성숙해졌습니까? 내 삶이 2년 전과 똑같다면, 어쩌면 2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한 것은 신앙생활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과연 하나님을 믿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동일한 질문을 2년 뒤에 던지게 된다면, 그 질문에 나는 어떤 대답을 하게 될까요?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