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개발협력, KOICA 잣대에 맞춰라!
진짜로, 의존성 키우지 않고, 잇속만 차리지 않고 지역사회에 이로운가?
지난 21일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인근 시골마을인 타케오(Takeo)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만난 꼬마아이들은 흙투성이가 돼 운동장을 뛰놀고 있었다. 그 아이들 중 절반은 맨발이었다. 프놈펜 시내에서 이 마을에 가려면 한국의 참여정부 시절 대외경제협력기금으로 공사를 지원했던 3번 국도로 1시간여 달려야 한다.
고속도로에서 마을로 진입하는 어귀에 못 미쳐 커다란 신발공장이 세워지고 있다. 아이들이 곧 멋진 축구화를 사서 신을 수 있을까. 그때쯤 아이들의 행복지수는 지금보다 더 높을까. 모두 쉽지 않은 물음이다.
흙먼지를 뒤집어 쓴 새까만 피부, 물이 귀해 세탁을 거의 하지 않은 흰색 교복은 예외 없이 얼룩져 더러웠다. 하지만 외지인에게 낯을 가리지 않고 합장과 웃음을 지어보이는 커다란 눈망울의 아이들은 더 없이 귀엽고 사랑스럽다.
가난한 나라, ‘비정부기구(NGO)의 천국’이라는 썩 내키지 않는 접두사가 붙는 나라의 아이들의 꿈은 으레 정치가나 기업가, 선생님, 법관, 군인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대답은 의외였다. “프놈펜 최고급 호텔인 소피텔(Sofitel)의 직원이 되는 게 꿈”이라는 대답이 돌아오자 머리가 멍해지기 시작했다. 섭씨 40도에 육박한 불볕더위 때문만은 아니었다.
물, 모기, 그리고 사람
지난 2011년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는 큰 홍수가 있었다. 당시 현지에 있었던 한국인 사업가 A씨는 지난 20일 기자와 만나 “차창 밖을 보다가 ‘어, 비가 오네?’라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 걸려온 전화 때문에 3분여 전화통화를 하고 차장 밖을 내다보니 도로가 거의 잠겨버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프놈펜은 인도차이나 나라들의 젖줄 메콩강이 관통하고 인근에 커다랗게 똔레삽(Tonl? Sap) 호수가 형성돼 있는 분지다. 우기가 시작되는 5월부터 내린 비가 호수와 강에 고이고 차면 넘친다. 다른 지역에는 지표면 가까이 스며들어 일부 웅덩이에는 물이 고인다. 땅을 조금만 파면 곧 물웅덩이가 생긴다.
이 웅덩이 물은 다음 우기가 시작될 때까지 지역 내 모든 생물들의 공동 수자원이 된다. 침수 방지와 뱀이 타고 올라오지 못하도록 사각기둥을 높이 세워 만든 캄보디아 사람들의 시골 집 앞에는 대부분 이런 웅덩이가 하나씩 있다. 우기가 끝난 뒤에도 몇 미터만 파면 물이 차오르는 웅덩이로, 이곳에서 사람과 깡마른 하얀 소, 돼지, 개, 고양이들이 목욕과 설거지, 뒷물, 물놀이 등 물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해결한다.
고여 있어 가뜩이나 더러운 물에 분뇨 등 유기물질까지 풍부해진 물은 모기들의 훌륭한 인큐베이터다. 모기는 배은망덕하다. 자신들의 개체를 번성시켜준 동물들의 피를 빠는 것도 모자라 말라리아나 뎅기열까지 선물해 주기 때문이다.
캄보디아 보건성(MOH) 예방의학국 콜 헤로(Kol Hero) 부국장은 “우기가 시작될 무렵인 4월부터 말라리아와 뎅기열이 급증한다”면서 “최근에는 말라리아 증가세가 주춤하는 대신 댕기열이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급성발열질환인 댕기열은 뎅기 출혈열이나 뎅기쇼크증후군으로 이어질 경우 치사율이 최고 50%에 이를 정도로 치명적이다.
개혁의 목소리, 작지만 분명히 있다
물과 식량, 에너지와 보건의료 문제는 한 국가공동체의 인프라에 해당되는 것이지만, 캄보디아에서는 이런 인프라를 스스로 갖출 제반 자본이 형성되지 못했다. 크메르루주 체제에서 대다수 지식인들이 살육 당한 결과 인적자본 역시 크게 고갈됐다.
국가부흥과 개혁을 위한 의식이 싹튼 것만은 확실하지만 개혁 인텔리그룹의 힘이 결집되거나 성숙되지는 못한 상태다. 나라 전체적으로 국가의 기본기능과 공공부문의 책무 등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크메르루주의 폭정과 베트남의 침략, 이어진 내전 등을 치른 나라로서는 당연하지만 최악의 결과다.
지역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치안과 법무행정 등은 상상을 초월한다.
캄보디아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캄보디아 교도소에서는 외국인 재소자에게 식사가 기본적으로 제공되지 않는다. 국가가 재소자들의 식사를 제공할 여력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돈 없는 수감자는 돈 있는 수감자에게 취사 등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밥을 얻어먹어야 한다.
NGO 주최 행사 때면 으레 주변 교통정리와 행사장 안전 등을 살피는 경찰이 나타나는데, 주최 측은 이 경찰에게 돈을 줘야 한다. 수도 프놈펜 시내에서는 안전벨트 미착용과 같은 사소한 교통질서를 어겨도 경찰에게 돈을 줘야 한다. 외국인(4~10달러)은 현지인(2달러)의 2~5배를 내야 한다.
태국과 베트남 등지의 석탄 화력발전소에서 전기를 수입해 쓰고 있지만 국민적 에너지절약 의지가 낮고, 관료들도 솔선수범 하지 않는다. 프놈펜에서 만난 한 기업인은 “밖은 불볕더위인데 인허가 문제로 정부 부처에 방문하면 양복을 입고도 추위를 느낄 정도”라고 귀띔했다. 전국토의 전기보급률은 34%, 화장실 보급률은 그보다 낮은 26% 수준이다.
3월에 취임 1주년을 맞은 김한수 캄보디아 대사는 20일 기자와 만나 “화장실은 식수나 각종 보건위생 이슈와 밀접하므로 한국 정부나 NGO, 기타 각종 교류협력에 애쓰시는 분들이 캄보디아 화장실문제 해결에 우선적으로 지혜를 모아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훈센 총리는 NGO를 싫어한다고?
폭정과 섭정, 내정으로 이어져 국가 기능이 거의 마비돼 있던 인구 1500만 명의 캄보디아. 자체 자본 축적은 불가능했고 선뜻 출자할 해외자본도 없었다. 자본이 머뭇거리는 사이, 원조와 국제구호활동, 자선과 기부, 자원봉사활동 등 비정부기구(NGO)가 치고 들어왔다. 그렇게 캄보디아는 NGO 성과가 가장 빨리 나는 까닭에 그럴듯한 사진을 쉽게 많이 찍는 나라가 돼 버렸다.
훈센 총리가 “NGO를 싫어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NGO 활동가들은 UN을 비롯한 여러 국제NGO들과 대사관이 밀집한 이국적 풍경의 프놈펜 51번가 인근에서 주로 머무는데, 아무리 티를 내지 않아도 이들은?캄보디아 고위층의 소비행태를 닮아 있기 때문이다.
마을에서 영어를 할 줄 아는 캄보디아 현지인이 NGO사업의 지역채널 노릇을 한다. NGO 사업에 터무니없이 바가지를 씌우기도 하고 지원 받은 물품을 중고시장에 팔아먹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1회성 물품지원에 불만을 드러내면서 때로 자신의 지역에서 교류협력 사업을 벌이는 NGO를 위협하기도 한단다. 결국 NGO들은 교류협력 예산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을 알고도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사업을 이어간다고 한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 캄보디아 사무소 윤춘근 부소장은 “화장실을 지었는데 정화조에 분뇨가 가득 차면 당연히 퍼낸 뒤 써야 하는데 새로 지어달라고 한다”고 말했다. 또 “컴퓨터 자격시험 제도를 마련해 컴퓨터 활용 시설을 다 갖춰주니 ‘너무 고맙다’고 했는데 얼마 뒤 가보니 컴퓨터와 모든 기자재들이 모두 사라졌다”고 덧붙였다. 윤 부소장은 “NGO는 후원자들이 모아준 돈을 시급히 지원하고 집행해야 하므로 이런 문제들이 있어도 근본적 해결책 마련보다는 지원 사업을 강행하는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익명을 부탁한 캄보디아 현지의 한 국제NGO 활동가는 “캄보디아 정부는 국제원조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활용하는데 매우 탁월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서 “원조나 교류협력 분야의 정책적 우선순위도 높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고 말했다.
도마에 오른 NGO들
아시아를 비롯한 몇몇 지구촌 지식인들은 저개발국 스스로 지속가능한 발전모델을 능동적으로 구축하지 못하는 이유로 원조의 역기능을 꼽고 있다.
미국 워싱턴 소재 브루킹스연구소의 렉스 리펠(Lex Rieffel) 박사는 “캄보디아와 네팔은 해외 원조를 너무 자주 많이 받는데, 몇몇 원조 프로그램은 낭비적이고 심지어 해롭다”고 주장했다.
이 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버마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농업기술을 자랑하는 뉴질랜드 정부는 국제개발협력 예산을 버마에 올인(All in)하기로 결정했다. 버마 정부가 직면한 8가지 이슈들은 원조나 NGO 교류협력 사업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아 정부가 풀어야 할 난제들이었다. 8가지는 ▲평화구축 ▲정치시스템 ▲거시경제정책 ▲민간자본의 흐름 ▲자원 확보 ▲토지 확보 ▲농업개발과 교육 등이다. 뉴질랜드 정부는 결국 딜레마에 빠져 버렸다.
캄보디아의 지식인들도 같은 문제를 지적한다. 캄보디아 내무부(Ministry of Interior)에 등록된 NGO 수가 무려 3000개로, 지식인들에게 ‘NGO의 천국’이라는 닉네임은 결코 달갑지 않다.
캄보디아 출신으로 미국 몬테레이 대학 조교수로 재직 중인 정치경제학자 소팔 에아르(Sophal Ear) 교수는 미국 정부 입장과 무관한 사견임을 전제로 “캄보디아에 대한 국제적인 간섭과 해외원조에도 불구하고 높은 모자사망률과 전대미문의 부정부패는 개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의 책 제목은 <캄보디아의 원조 의존 : 해외원조는 어떻게 민주주의를 훼손하는가 (Aid Dependence in Cambodia: How Foreign Assistance Undermined Democracy)>다.
캄보디아 젊은이들의 의식도 차츰 달라지고 있다. 프놈펜왕립대학(RUPP)를 졸업한 뒤 한국의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공공정책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옴완타릇 주한캄보디아유학생회 회장은 “거지 노인에게 각종 음식물과 생활용품을 주는 것은 강도나 도둑으로부터의 위협을 증가 시킨다”면서 “기부의 효과는 단기적이고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대안이 말처럼 쉽지는 않아 보이지만, 이미 혁신의 씨앗이 자라고 있다. 전미호 KOTRA 프놈펜 무역관장은 “최근 캄보디아에서도 시골 아낙들이 봉제공장의 단추를 달아 납품하는 일거리를 받아와 가계경제 자립을 꾀하고 마을 단위로 ‘상호부조’하는 신용협동조합이 생겨났다”고 희망의 조짐을 전했다. 전 관장은 또 “개발협력이든 사회적 기업이든 고용이 가장 중요하며, 지역사회 고유의 의사결정체계를 존중하는 등 현지 사정에 맞는 지배구조(Governance)가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해외NGO와 사회적 기업들, 캄보디아 관료사회가 KOICA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지속가능한 개발의 청사진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KOICA 캄보디아의 윤춘근 부소장은 “원조와 교류협력사업이 ▲현지인들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가 ▲의존성만 키우는 게 아닌가 ▲영리적 의도가 숨어있는 게 아닌가 등 3가지 기준을 KOICA 사업의 잣대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글=프놈펜/이상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