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의 경제토크] 이건희, J.P. 모건, 맹락천, 같은 점과 다른 점

이건희, J.P. 모건, 맹락천(孟洛川). 당대에 전설적으로 돈 많이 번 분들이다. 그런데 모건, 맹락천 두 사람과 이건희 회장이 다른 점이 있다. 모건은 미국에 금융공황이 닥쳤을 때 자기 돈을 풀어서 위기를 막았다. 맹락천도 상하이 섬유사업이 급작스런 면사 공급과잉으로 붕괴하게 되자, 자기 소유 면사를 태우면서 시장을 구했다. 그래서 맹락천은 맹자의 후예다운 대상인이란 평가를 지금까지 받고 있다. 맹락천과 동시대인인 호설암(胡雪岩)은 정부관리들과 짜고 돈을 엄청 벌었지만 결국 망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맹락천 회사는 여러 형태로 남아서 지금도 건재하다.

무슨 얘기냐. 모건과 맹락천은 자기가 속해 있는 환경이 무너지면 자기도 무너지는 것을 알았다는 거다. 그리고 그에 따라 지혜롭게 행동했다는 거다. 이건희 회장은 아직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지 않다. 큰 바다 속 한 마리 작은 물고기로 행동할 때와 수영장 속 고래일 때는 다르다. 큰 바다 속 작은 물고기는 환경에 책임이 없다. 그래서 그 ‘주어진(exogenous)’ 환경 속에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면 된다. 그러나 수영장 속 고래는 환경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상당부분 자기가 ‘만들어 낸(endogenous)’다.

지금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한국 재벌들은 분명 정부보다 센 힘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정권이 바뀌면 우르르 몰려가서 경영환경이 어렵다, 규제가 많다는 둥 불평을 한다. 그러면 또 정부는 경제민주화니 뭐니 그런 정책 다 포기해 버린다. 참 웃기는 얘기다. 내 주위에 부모로부터 재산을 엄청 물려받고 나서 늙고 힘없는 부모에게 용돈 적게 준다고 투정하는 사람이 실제로 몇 있다. 기형적이지 않나. 지금 한국 재벌들이 정부에 뭔가 불평하는 일들이 딱 그런 형국이다. 물론 그런 일을 부추기는 경제학자들도 있다.

‘수영장 속 고래’가 살아남으려면

오늘날 현실적으로 재벌세력을 빼고 정부와 국민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재벌은 기부나 좀 하고, 요즘 유행하는 사회적 기업이나 몇 개 만들고, 여기저기 삥 좀 뜯기고 그러면 사회적 책무를 다한다고 생각하는데, 글쎄 그건 면피일 뿐이다. 재벌들은 고용, 가계부채, 사회복지 등 매크로한 문제까지 자기 책임 아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국민들이 깨닫고 재벌 자신들도 깨달아야 한다.

가계부채가 1200조 원이라고 한다. 거기다 전세금, 통계에 잡히지 않는 회색 금융까지 합치면 2000조 원 훌쩍 넘는다. 이것을 재벌 빼고 국민과 정부 사이에서 법으로 푼다? 경제학자, 관료들이 머리를 싸맨다? 2000조 원 정도 자산을 가진 재벌들이 나서지 않고 돈 없고 힘 없는 국민과 정부가 해결한다? 어림없는 소리다. 내가 보기에 한국이 당면하고 있는 거의 모든 경제문제는 재벌이 시스템적 사고를 갖추고 적극 개입하기 전에는 풀리지 않는다. 정부와 국민들에게만 맡기면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재벌들도 망할 수밖에 없다.

가계부채, 하우스푸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많은 사람이 거지가 된다. 그러면 재벌들이 갖고 있는 재산을 사줄 사람이 없으므로 재산가치가 떨어진다. 중국사람들이, 헤지펀드가 사주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도 말이 안 된다. 재벌 외 국민들이 건강한 재산과 열심히 일할 의욕을 갖고, 교육을 열심히 해 양질의 노동력을 만들어 내야 재벌왕국도 유지가 된다. 내가 몽땅 다 먹어버리면, 재벌 물건을 사줄 사람도 모자라고, 재벌회사에 와서 일할 양질의 노동자가 없어진다. 그러면 재벌왕국이 유지될 수가 없다. 재산도 사줄 사람이 있어야 큰 재산이다. 김정은 재산이 얼마 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해외에 숨겨놓은 푼돈밖에 없다. 북한 내 부동산이야 사줄 사람이 있어야 값을 치지 않겠는가.

수영장 속 고래 덩치가 너무 커지면 먹는 것을 줄이거나 운동을 해서 살을 빼야 한다. 아니면 어디 가서 더 큰 물을 가져 오거나 해야 한다. 재벌그룹이 해외시장 개척해 그런 일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제 그것만으로는 어렵다는 것이 드러났다. 국내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어렵다면 재벌들이 해외에서 한국민이 일할 자리를 많이 만들어 내는 것도 방법이 되긴 한다. 내가 보기엔 그게 한국경제의 한 탈출구가 될 수 있다. 예컨대 삼성전자가 매년 해외에 대학생 5만 명을 연수시키고 그 고용을 책임지는 식으로 한다는 얘기다. 재벌이 그렇게 나서지 않으면 지금 방법이 없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거다.

주택건설업을 자제해 중소 건설업자들이 먹고 살고, 급격한 집값 하락을 못하도록 해야 한다. 요즘 같은 부동산 하락기에 재벌 건설사들이 주택을 대량 공급하면 안 된다. 하우스푸어 문제도 마찬가지다. 하우스푸어 사태가 터지면 결국 1200조 원 정도의 자산을 무슨 방법을 쓰든 건전화해야 하는데, 대한민국 대차대조표를 아무리 훑어봐도 그만한 재원은 재벌 재산밖에 없다.

무슨 소리냐 하면, 재벌들이 직접 부채를 떠 안든, 간접적으로 세금을 더 내든 어쨌든 거기서 재원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IMF사태가 터졌을 때 재벌들은 시장에서 돈을 싸그리 거둬들였다. 그때 재벌회사들이 앞장서 돈을 거둬들이지 않고, 모건 스탠리처럼 오히려 풀었더라면 IMF 사태가 훨씬 덜 고통스러웠을 거다.

재벌이 경제문제 타개 나설 때

통일문제도 한국 경제규모가 지금보다 훨씬 작았을 때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남북관계 돌파구를 뚫었다. 지금 삼성의 힘은 당시 현대보다 수십 배 강하다. 그래서 삼성만 나서면 통일문제에 화끈한 전기를 만들 수 있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물론 이건희 회장 공이 크다. 6자 회담이니 뭐니 다 중요하지만, 이건희 회장께서 “올해는 북이다” 한마디만 하면 남북문제 돌파구 단박 뚫린다. 삼성이 개성공단 같은 걸 10개 만든다. 계열회사, 하청회사, 협력회사, 다른 대기업도 따라오라. 이러면 통일이 실질적으로 이뤄져 버릴 수 있다.

상인은 돈을 벌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상인도 한 사회 속의 구성원이다. 내가 커져버리면 시스템 속에서 나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일과 함께 그 시스템이 건전하게 진화하도록 하는 책임까지 지게 되는 것이다. 지금 한국 재벌들은 그 단계를 훨씬 넘어갔다. 자신들이 갖고 있는 힘의 크기를 빨리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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