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의 경제토크] 전두환 재산 추징, 정권 의지에 달렸다

전두환씨, 그 분 가족들과 이곳 저곳에서 조우하는 일이 몇 번 있었다. 옆에서 늘 가까이 보는 사람은 못 느끼지만, 어쩌다 한 번씩 스치는 사람은 큰 변화를 볼 수 있다. 나무를 계속 보고 있으면 크는 걸 모르지만 몇 년마다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듯이.

성격이 서글서글하고 매사에 시원시원한 결단력이 있다. 박 대통령께서 돌아가시지 않았더라면, 유정회 국회의원… 이런 식으로 인생 경로가 잡혔을 거다. 10·26 이후 온 가족의 행로가 곧장 소설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많은 사람을 죽이고, 엄청난 돈을 챙겼다. 노태우 시절부터 어려움이 시작됐다.

그런데 백담사에 가서도 인기가 좋았다. 그 서슬 퍼런 군사정권 시절에도 하루에 수 백 명씩 자발적으로 찾아온 사람들에게 강연을 했으니까. 전두환씨에게 피해보신 분들은 펄쩍 뛸 이야기겠지만, 싸늘하게 정치공학적으로만 말하면 김영삼 정권 때 사형선고, 추징금… 이런 일 없었더라면 전두환씨는 지금도 한국정치의 만만치 않은 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돈 풀어 기자들 구워 삶고, 자기 부하들 챙기는 데 전두환씨만큼 능수능란한 사람이 없다고 하지 않는가.

그 노태우 때부터 전두환 가족은 돈을 감추기 시작했다. 가끔 여기저기서 튀어나오긴 했지만 벌써 30년 동안 감추는 작업을 했다. 자, 이제 얼마나 잘 감췄고, 검찰이 얼마나 잘 찾나 두고보자. 이번에 통과된 속칭 ‘전두환 재산 추징법’은 이른바 ‘Reverse Onus’ 개념이 들어갔다고 한다. 가족·친지 재산 중 수사당국이 불법성을 증명해야 몰수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재산이 합법적으로 취득한 것임을 증명하지 못하면 몰수하는 그런 방식이다.

내 생각에 그 분 가족들은 이런 일이 닥칠 줄 생각도 못했던 것 같다. 그들의 언행에서 느낄 수 있었다. 아이를 국제중에 보낸다든가, 한국사회의 소위 상위 1%의 사람과 사귀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한다든가, 그러면서 거기 속하지 못한 사람들을 ‘평민’이고 부른다든가, ‘무식한 것들’이란 말을 달고 사는 모습이 그랬다.

이번에 검찰이 의지만 있으면 탈탈 털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자료도 자료지만, 한 사람씩 불러서 다른 사람 것을 불도록, 즉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를 형성시켜 놓으면 반드시 서로 경쟁적으로 불게 돼 있다.

우리는 법적으로 받을 돈만 받으면 돼, 그런데 너 빼놓고 다들 법적으로 교묘하게 다 빠져 나갔어. 너처럼 비교적 순진한 넘만 손해 보는 게 우리나라 법이야… 네가 다 게워놓게 생겼다. 친형제들 것 말고, 사촌 것으로 딱 한 사람 것만 그것도 많이 불지 말고, 많이 불면 우리도 부담스러워. 딱 100억원 어치만 불어. 그럼 넌 50억원 정도만 내놓게 돼….

이렇게 해 놓고, 그 사촌에게 너 돈도 돈이려니와 인생 헛살았더구나. 그 넘이 다 불었어. 일단 분 이상 우리도 어쩔 수 없어. 니 것 300억원어치 불었는데, 100억원 어치로 내려줄께, 다른 사람 것 50억원 어치만 불어라.?우리도 미치겠다. 설렁탕 먹을래? 그치 그치… 어허, 이 사람. 50억원 어치만 불래도 왜 100억원 어치를 불어? 우리도 부담되게. 너 절대 더 불지마. 너처럼 인간성 좋은 넘이 더 다치는 건 우리도 싫어, 아무리 법이라곤 하지만 너처럼 좋은 넘은 어떻게든 살아야제. 우리 이 건 끝나고 술 한 잔 하자, 니 시원시원한 인간성에 내가 끌린다. 정말 이 건만 아니면, 남자 대 남자로 형님동생하고 싶다. 얌마, 사람 안 볼 땐 형이라 불러…. 이런 식으로 조지면 다 넘어가게 돼 있다.

내가 전재국이면,

1. 가족회의 소집한다.
2. 기자회견한다. 불법적이고 초헌법적인 인권탄압에 강력 항의한다. 무한 법정투쟁으로 갈 것을 선언한다. 그리고 온 가족이 갹출해 공탁금 건다.
3. 똘똘 뭉쳐 결사 항전한다.

그런데 그럴 깡다구도 아니고, 그렇게 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대만의 천수이볜 가족들이 그런 식으로 했다. 천수이볜이 잡혀가자, 딸이 기자회견을 열어 실명을 대면서 자기네가 돈 준 사람들을 공개해버렸다. 그리곤 딸도 감옥에 갔다. 사람이 죽을 때 죽더라도 결기가 있어야지.

그나저나 전두환씨 마음이 참 그렇고 그렇겠다. 자식사랑이 유난하다던데. 전두환씨에게 피해 본 많은 사람들의 심정은 어떤가 모르겠다. 통쾌할까? 솔직히 정의가 실현되었다고 보기엔 세월이 너무 흘렀다는 느낌이 있다. 전두환 밑에서 아부하시던 분들은 또 심정이 어떠신지.

전두환 일족 박살내기는 박근혜 대통령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다. 재벌 혼내기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대통령이었다면 재벌-언론장악-말꼬리잡기-반박하기로 날 새고 밤 샜을 거다. 무슨 소리냐, 말로 해서 해결 못할 일, 주먹으로 밖에 해결 못할 일들을 하는 거란 얘기다. 말? 난 그런 거 잘 못해, 이러면서 해나가면 된다.

나는 한 대통령이 역사에 너무 많은 공헌을 하려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두어 개 뭔가 만드는 형태의 공헌을 하고, 두어 개 정도 나쁜 것을 없애는 공헌을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김영삼 대통령의 경우 실명제를 했고, 하나회를 없앴고, 그 정도면 됐다. 그리곤 나머지는 최소 합격점만 맞으면 된다. 즉 IMF 사태 같은 낙제과목이 없으면 된다는 것이다. 모두 ‘수’를 맞으려다 낙제한다. 한 두어 과목 ‘수’를 받고, 나머지는 ‘미’ 정도로 하는 것, 그게 합리적인 통치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 재벌을 해체해 수 백 개의 튼튼한, 각자 진정으로 독립된 큰 기업들로 만드는 일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고용문제도 해결되고, 부동산과 복지 문제도 상당히 해결된다. 그러면 역사에 제 몫을 한 대통령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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