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의 경제토크] CJ, 해도 너무들 했다
CJ 총수 남매. 나도 개인적으로 좀 안다. 재벌가 사람들 중에선 그나마 인간적이고 겸손하고 그래도 이야기가 통하고 사회정의도 어느 정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는 느낌을 받은 바 있다. 동년배들 사이에 평도 꽤 좋았다.
그런데 요새 보도에 의하면 탈세, 주가조작, 미술품 위조, 횡령, 폭력, 실명제 위반, 자금세탁, 비자금 조성, 뇌물제공, 연예인 동원 향응 제공….
물론 수사중인 사건이긴 하지만 만약 이게 모두 누명을 씌운 것이 아니라면 말이지, 이건 보통사람들이 보통의 인생에서 저지르는 여느 범죄가 아니다. 가막소 여러 번 들락거린 별단 프로들이 저지르는 엄청난 고수급 범죄들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사람들은 뭐 하는 선수들이며, 이 선수들이 안 한 게 뭘까. (납치, 연쇄살인, 식인, 방화, 장기매매, 위조지폐… 설마 그런 건 안 했겠지. 그나마 다행이다.)
내가 그 남매 비교적 괜찮은 사람들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한 그런 사람들도 이 정도니, 내가 보기에도 참 무지하게 웃기는 사람들이라고 느꼈던 재벌가 사람들은 도대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다는 건가. 생각하기도 섬뜩하다. 그래서 무서운 시어머니가 주위에 있는 것이 사실은 건강에 좋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그런 무서운 사람이 없었던 거다. 광고를 주니 언론사 겁낼 필요가 없고, 검사·경찰·세무서·회계사는 장학생들이 막아주니 무서울 게 없고, 돈이 많으니 은행 겁날 일 없고, 그러고도 사고 터지면 김앤장이 막아주니 걱정 없고…
이런 식으로 무서운 것 없이 오래 살면 언제고 한 번 당할 때 몰아서 크게 당한다. 언론, 검사, 세무서, 은행 무서워하면서 살면 이렇게 한 번에 용코 크게 당하는 일이 없다. 아예 조심하니까 그렇다.
내가 보기에 이 사람들 뭔가 마비되어도 완전히 마비된 사람들 아닌가 싶다. 죄의식 자체가 없는 것 같다. ‘보통 것들이나 하는 걱정’을 초월했다. 어려서부터 뭐든지 대신 알아서 해결해주는 ‘월급받는’ 아랫사람들이 주위에 있었다. 숙제도 대신해주고, 친구들과 싸워도 대신 해결해주고, 여자도 대신 찾아주고, 이혼해도 대신 해결해주고… 뭐든지 누군가 대신 해결해주면서 지내왔다. 심지어는 감옥도 기쁘게 대신 가주는 사람들이 있다. 기자들도 광고를 따야 하니 설설 기었고, 학자들, 대학교수들도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면서 요청도 안 했는데, 자기들이 알아서 나서서 편들어주었다.
원래 자전거를 타고 자동차 전용도로에 다니면 안 되는 거다. 그러나 앞뒤에 자동차로 겹겹이 호위를 하면서 다니면 자전거 타고도 자동차 전용도로에 어느 정도 안전하게 다닐 수 있다. 이 친구들 그렇게 다니다가 기차에 친 거다. 그것도 시커멓고 엄청 큰 기차, 무지하게 빨리 달려오는 기차 말이다.
경제민주화 논쟁이 오갔다. 솔직히 경제민주화, 그거 뭐냐고 물으면 애매한 소리들만 오고 갔다. 주장하는 사람이나 반대하는 사람이나 뭔지도 모르면서 논쟁했다. 경제 논쟁이란 게 대부분 그렇다.
불필요한 규제를 하지 말자느니, 필요한 규제를 하자느니, 무슨 그 따위 소리들. 아니 불필요한 규제를 하자는 쪼다 있으며, 필요한 규제를 하지 말자는 등신 있냐? 나 원 참 논쟁이 논쟁 같아야지. 하여간 다들 말로 탁구치고 즐겁게 가라오케하고 그러면서 저기 시커먼 기차가 달려 오는 걸 모르고 있었다.
탈세, 주가조작… (위 혐의 반복) 이런 거창한 리스트 앞에 불필요한 규제를 하지 말자느니, 기업가 정신과 창의를 억제하면 안 된다느니 하는 소리가 얼마나 초라하고 처참하게 공허한 소리란 걸 이제야 좀 알 거다.
판사가 이들을 풀어주면서 상투적으로 쓰던 “경제성장에 공헌이 많으므로 좀 일찍 석방하여 사업으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사회에 공헌하도록 하자”는 판결문도 숱하게 읽었다.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광복절, 삼일절 특사… 솔직히 우리나라 공휴일은 재벌회장님들 석방날이었다. 수형생활도 감옥 밖 병원에서 주로 했다. 혹 감옥에 있을 때도 하루 200만원 받는 변호사 면담을 하루 종일 하니 감방에서는 잠만 잔다. 사회정의를 위해, 억울한 사람을 돕기 위해 사법고시도 공부해서는 재벌총수면회용 변호사로 시간을 보내는 이들 덕분이다.
요즘 법원 분위기가 그렇게 녹록하지가 않다. 풀어줘 봤자 탈세… (위 혐의 다시 반복) 등을 습관적으로, 전혀 죄책감 없이 단박에 다시 하기 시작할 것이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이미 형성돼 있다.
‘경제민주화’라고 별별 소리가 다 많다. 자본주의 시장이 어쩌고, 기업의 발목을 죄고, 성장이 분배보다 우선이고… 그거 다 일부러 못 알아 듣는 척 하는 거다. 경제민주화라고 하면 못 알아 듣는다. 아니 못 알아듣는 척 한다.
‘출국금지, 징역10년’ 이래야 알아듣는다. 경제민주화, 이게 얼마나 듣기 좋은 말이냐. 좋은 말 듣기 좋게 할 때 서로 충분히 ‘소통’했어야 하는데…
이번 두 남매, 누명 쓴 걸로 밝혀졌으면 좋겠다. 인생 참 알 수 없다. 숨겨놓은 재산은 많고 누군가 관리를 해야겠고, 바로 그 관리하는 놈이 협박을 하고, 그 협박을 한 놈을 더욱 협박해서 해결하면, 두 번째 협박한 놈이 협박을 하고… 이 숙명적 악순환을 어찌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