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칼럼] ‘전간시대’에서 배운다
전간시대(戰間時代). 1차 대전과 2차 대전 사이의 기간(Interwar Period). 우리는 이 시대가 어떻게 끝나는지 잘 안다. 서글픔이란 감정으로 이 시대를 회고한다. 새드 엔딩으로 끝나는 영화를 두 번째 보는 기분이다. 아무리 노력하고 선의를 갖고 이상을 추구해도 결국 대량참극으로 끝나는 스토리. 아, 인간은 역시 안 되는구나. 인간 속 원천적 유전적 악마성이 결국 알량한 이성을 이기고야 만다는 결말에 한탄하게 된다.
전간시대는 그래도 아직 이성이 뭔가 할 수 있다고 기대하던 시절이다. 반면에 2차 대전 이후 세계질서는 악마성 그 자체를 당연시한 가운데 형성된다. 전간시대 국제연맹과 전후시대 국제연합 형성 철학의 근원적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현실정치(realpolitik), 그것이 전후 국제질서다.
일본도 전간 어름 한 때 멋진 시대를 구가했다. 다이쇼(大正) 민주주의 시대다. 일본이 아시아의 젊은 지성인·혁명가들의 이상향이었던 시절이다. 국력이 크게 신장해 가히 범태평양지역의 최강국이었다. 중국의 쑨원(孫文), 장제스(蔣介石), 인도·인도네시아·필리핀 혁명가들이 일본으로 유학·망명했고, 일본 재벌들은 비교적 순수한 심정에서 그 젊은이들의 후원자 노릇을 했다. 그런데 몇 년 뒤 일본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우리는 잘 안다. 731부대, 난징대학살, 종군위안부….
전간시대 아시아인들의 일본에 대한 기대와 동경에 비춰보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다. 하긴 베토벤과 칸트를 배출한 나라 독일이 그 잔혹한 홀로코스트 야만행위를 조직적 체계적으로 벌일 수 있었다는 사실도 몇 년 전 전간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었다. 오직 몇몇 유대인들만 ‘아무도 듣지 않는’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두번 매맞은 독일과 한번 매맞은 일본
독일은 빌리 브란트 같은 재상이 나와 과거사에 대해 깨끗이 사과하고 그를 바탕으로 통합유럽의 맹주가 되었다. 그런데 일본은 왜 과거사를 부정하고 여전히 ‘아시아의 혐오시설’로 남아있는가. 독일민족이 일본민족보다 우수해서 그럴까? 전간시대를 공부해보면 답이 명확히 나온다. 독일은 두 번 두들겨 맞았고, 일본은 한 번 두들겨 맞았다. 독일도 한 번만 두들겨 맞았던 전간시절에는 히틀러가 출현해 별별 소리를 다했다. 두 번 두들겨 맞고 나서 정신을 차렸다.
전간시대 독일은 “정당한 1차 대전에서 너무나 억울하게, 좌파 유대인 놈들 때문에 질래야 질 수 없는 전쟁을 졌다”고 생각했다. 과거사 부정, 당시 독일도 대량으로 했다. 요즘 일본의 과거사 부정, 이상한 일 아니다. 나는 일본이 아직 정상국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생뚱맞은 논리로 어거지표 부정을 자행하고 닭표 오리발 내미는 일, 결코 중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일이 있어선 안되겠지만, 다시 한 번 아주 처참한 일을 당하고 나서야 그들은 정말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독일도 두 번 두들겨 맞고 나서야 겨우 ‘생각’하기 시작했다. 인간이란 원래 그런 동물이다. 슬프게도 나는 일본 안에서 그런 대형참사를 방지할 집단지성의 존재를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엄청난 거짓을 그다지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는 나쁜 습관이 분명 많은 일본인들 사이에 있다. 일본에선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이 소수, 아니 극소수다. 그 진실로 다른 사람을 설득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과 조직력이 극소수 양심세력에게 결여돼 있다.
대부분의 일본인은 착하고 근면하고 예의 바르다. 그러나 큰 거짓을 불편해 하지 않는 성향, 또 그것을 이용하는 지도층의 행태가 참 불편하다. 비교컨대 한국의 우파도 발현형태가 비슷하긴 하나 일본 우파와는 출발점이 다르다. 한국 우파는 사실 왜곡이 다분히 생계형이다. ‘아파트값’이라고 좁혀 말하면 기분 나쁘겠지만, 좌우간 6·25라는 트라우마와 아파트값이라는 두 가지 변수가 있기에 분명한 진실 앞에 눈 감아버리는 그 아련한 속사정에 대해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하다. 그러나 일본의 우파는 뭔가 어두운 거짓을 원천적으로 즐기는 듯하다. 주장과 논조에 원천적 어둠이 있다. 야마모토 시치헤나 마고사키 우케루 같은 ‘밝은’ 사람은 일본 지도층 내 극소 희귀종이다.
전간시대 독일에서 요즘의 아베노믹스같은 통화팽창을 통한 경기부양 정책을 시행한 적이 있다. 그때 잠깐 독일경제가 반짝했다. 그리고 나선 곧바로 하이퍼인플레이션(hyperinflation) 시대로 들어가버렸다.
아베노믹스, 위험한 지경에 이르면 거둘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처럼 입에 거짓을 습관적으로 달고 사는 지도자들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오히려 더 큰 거짓말로 지난번 거짓말을 덮으려 할 가능성이 높다. 침략도 부정하는데, 장부를 속이고 성과를 속이지 않겠는가. 경제정책 실패를 인정하겠는가. 일본 대기업과 공공기관, 정부는 자기들이 뭘 어떻게 속이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단지 엄청난 무역흑자와 괴기스럽기까지 한 저축열에서 나오는 풍부한 자금으로 모순을 계속 덮어온 것일 뿐이다.
거짓을 입에 달고 사는 일본 지도층
극우전범 기시의 외손자 아베 총리. 생각하는 것, 행동하는 것, 말하는 것 참 닮기도 많이 닮았다. 기시는 감옥에서 다른 전범들처럼 낙담하지 않고 “곧 미소 대결이 본격화돼 미국이 일본의 극우파를 부활시켜 활용하게 될 것”을 예측한 것으로 유명하다. 잘났다. 그렇게 예리한 통찰력 있어서 좋겠다. 외손자 아베는 “미중 대결로 미국이 일본을 다시 강성하게 만들어서 중국견제에 사용하게 할 것이다. 고로 좀 까불어도 된다”는 생각이다. 손님이 오셨다. 어머니가 날 손님 앞에서 패진 않을 거다. 고로 좀 떼를 써도 된다는 정도의 성숙도를 가진 인간이다. 밉다. 그를 지지하는 국민들에게 정이 안 간다.
지금 일본이 주변국과 역사논쟁, 영토분쟁을 일으키는 것,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는 일이다. 나는 일본이 잘 살기를 바란다. 깊은 생각과 진정한 고민이 필요하다. 일본이 정상국가로 세계사 진행에 공헌하도록 기회를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