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의 경제토크] 수혜자와 피해자 뒤바뀌는 ‘폰지사기’
지난번에 이어 금융사기 얘기를 조금 더 하자. 500억 달러짜리 초대형 금융사기를 치고 감옥에 간 매도프(Bernard Madoff)라는 영감태기는 나스닥 증권거래소 회장도 하고 이만저만 존경받던 사람이 아니어서 충격의 강도가 유난히 컸다. 특히 당한 사람들 가운데 증권 및 투자 전문가, 브로커들이 많았다. 이 사람들이 보기에 서류가 완벽했고, 매달 보내주는 보고서도 그럴 듯했다.
매도프가 털어놓는 얘기인 즉 있는 놈들이 더 욕심이 많기 때문에 그들에게 사기치기가 더 쉬웠다고 한다. 그리고 증권전문가 이런 양반들은 뭔가 빤한 것만 보고 투자결정을 하기 때문에 그 빤한 것만 갖춰서 코 앞에 갖다 놓으면 반드시 덥석 문다는 것이다.
매도프 사태 때 증권전문가 몇 명이 자살하기도 했다. 이 사람들은 헤지펀드를 운영하며 투자 도사라고 떠벌리고 있었지만, 사실은 매도프에게 돈을 맡기고 있었다. 매도프가 높은 수익을 내주면 자신들이 투자를 잘 해서 그런 결과가 나온 것처럼 폼 잡으면서 수수료 떼고 투자자들에게 돌려주고 했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아뿔싸, 매도프에게 돈을 맡기고 자신들은 운용조차 하지 않았던 것까지 다 들통 나버렸으니 돈도 돈이려니와 얼굴 들고 살아가기 힘들었던 것이다.
매도프는 기부도 엄청 많이 했는데, 기부를 받은 자선단체의 기금을 훔치기 위한 술수였다는 것이 나중에 밝혀졌다. 와, 사기도 고수들이 치는 사기는 역시 급이 다르다. 매도프는 재판과정에서 계속 단독범행이었다고 주장해 역시 통큰 사람은 달라도 뭐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줬다.
나는 예전에 정태수 한보 회장이 잡혀갈 때 ‘마스크’를 쓰고 나와서 돈받은 정치인들에게 “입 안 열 테니 안심하라”는 사인을 주었다가, 나중엔 ‘운동화’를 신고 나와서 “이젠 토껴라!”는 사인을 주었던 것이 생각나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하여간 매도프 펀드에서 사고가 터지는 바람에 갖가지 소송이 줄을 이었고, 모든 헤지펀드들이 의심을 받아 가뜩이나 장사가 안되던 펀드업계에 고객들이 돈을 돌려 달라는 환급요구가 몰려들었다. 헤지펀드는 갖고 있던 포트폴리오를 청산해야 했고, 그래서 금융시장에 ‘팔자’ 세력이 형성되면서 이를 눈치 챈 ‘팔자’형 투기세력이 기승을 부리는 등 혼란이 이어졌다.
까놓고 이야기 해보자. 500억 달러 사기를 혼자서 쳤다? 믿어집니까? 미쉽니까? 저는 안 미쉽니다. 대우그룹 사태가 벌어졌을 때 40조원 사기였다고 했다. 대우직원 방계까지 합치면 거의 백만대군이었다. 그런데 500억 달러 사기를 혼자 친다는 건 영 믿기지 않는다.
재미있는 일은, 내가 보스턴에서 박사학위 공부를 할 때 바로 다단계 금융사기의 원조 챨스 폰지(Charles Ponzi)의 집에서 성경공부를 한 적이 있다. 호화로운 고가였는데, 후손도 없고 주인도 이상하게 얽히고 설켜 누가 주인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선교사들이 렌트도 내지 않고 그 호화주택에 살고 있었던 덕분이다.
좌우간 그 때 느낀 것이 돈은 악인이 실컷 모아놓고, 즐기기는 착한 사람들이 한다는 성경말씀이었다. 주위에 보면 악착같이 험한 일, 흉악한 일, 못할 짓 다 해서 돈을 모아 놓으면 나중에는 엉뚱한 사람들이 즐기는 경우가 참 많다. 반대로 돈 있다고 하면 주위에서 은근 슬쩍 해먹어 보겠다고 온갖 사기꾼들이 꾀는 경우도 다반사다. 나는 성경에서 말하는 바벨탑이라는 것이 거대한 폰지사기를 의미하는 것 아닌가 가끔 상상해본다.
폰지사기의 특징은 그 과정에서 돈을 번 사람도 상당히 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은 한탄하고 절망하기보다 돈을 회수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 부당하게 돈을 번 사람들을 찾아 소송을 하면 상당 부분을 되찾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보통 대형 사기를 저지른 사람들은 어딘가에 돈을 감춰두고 감옥에 가서 몇 년 때우고 나올 것을 계획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카지노에서 돈을 잃었다, 경마에서 잃었다…, 이런 말을 한다.
그러나 대부분 어딘가 숨겨두었고, 끝까지 추적하면 회수가 가능하다. 적당한 대표자를 선택해 장기적인 추적에 들어간다고 선포하고, 감춘 돈을 토해내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감춘 돈은 정말로 누구든지 먼저 본 사람이 임자이므로 빨리 피해자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좋다. 조직폭력배가 가족을 납치해서 돈 내놓으라고 하면 어디다 신고도 못하고 다 빼앗긴다. 몰래 어느 은행계좌에 넣어두었다고 하자. 그러면 그 은행 매니저가 사인을 위조해서 훔쳐가도 신고도 못한다.
폰지사기 과정에서 돈을 번 사람들은 사실 더 큰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번 돈에 대해서는 세금을 이미 냈을텐데, 그 돈을 도로 토해내야 하니 그렇다. 즉 피해자는 장차 나아질 길 밖에 없지만, 돈을 번 분들은 도로 토해내야 하니 다른 피해자와 같은 상황으로 내려가게 되어 있다. 오히려 더 아픈 매를 나중에 맞게 된다. 더구나 세금신고를 하지 않은 경우 정말 크게 곤란을 당하게 된다.
그런데 복잡한 경우는 피해자 중 과거 고수익의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 고수익은 다른 피해자들로부터 나온 돈이기 때문에 입장이 애매해진다. 다른 피해자들로부터 소송도 당하고, 자기도 피해자로서 소송을 해야 하는 입장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참으로 우리 인간사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이 이런 사기사건 아닌가 싶다.
미국에서는 매도프사건, 엔론사건, LTCM사건 등등 대형 금융사건이 터지면 곧 심층기록들이 나온다. 그래서 무슨 일이 왜 일어났는가를 상세히 알 수 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같은 곳에서 케이스 스터디 주제로 선정해 본격적인 연구를 한다. 박사학위도 몇 개 나온다. 그래서 필자는 유명한 금융사건이 터지고 나면 얼마 있다가 그 기록을 반드시 한번 점검한다. 학문적으로도 배울 것이 참 많고,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이 마구 출연하니 흥미진진하기도 하다.
이제 세월이 좀 지난 대우사태에 관한 보고 기록을 찾아봤는데, 별로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한국인이 기록과 현실을 놓고 씨름하는 것을 워낙 싫어하는 편이라 그런지 센세이셔널한 폭로기사 형태로만 몇 가지 정리돼 있고 심층기록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아직도 의문이 풀리지 않는 것이 대우가 당시 세무조사도 몇 번 두들겨 맞았다고 한다. 세무조사를 여러 차례 했으면서 40조 원 사기를 눈치채지 못 했다는 것이 영 이해가 안된다. 국세청의 조사 실력이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닌데… 뭔가 설명이 안된다. 당시 인간중심의 경제정책을 논하시던 경제학자들은 그새 얼마나 인간적이 되셨는지 몰라도, 왜 이런 것 좀 심층적, 실천적으로 임피리컬(empirical)하게 연구해 놓지 않나 모르겠다.
메이도프 케이스 경우, 혼자가 아니라 아들이 연루 되었던걸로 기억하는데…
사태 중간에 뭔가 이상 낌새를 느낀 아들이 물어봐서 숨기다 더이상 신규투자 유치가 어려워 지자 말하고 징역도 같이 살았던걸로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