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의 경제토크] 재벌 해체, 이미 시작됐다

고용?복지문제 해결의 최선책

나는 재벌 해체론자다. 재벌은 공헌도 많았지만, 지금 한국경제의 많은 문제가 재벌에서 비롯됐다. 재벌 자체가 이미 지금의 방식으로 경영을 계속해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경제성장기에는 몇 사람에게 자원, 특히 자본을 모아주는 전략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지금처럼 자본 과잉시대에는 그렇게 하면 독이 된다.

재벌 해체라 해서 지금 재벌그룹에 속해 있는 회사들을 모두 없애자는 게 아니다. 흔히 그런 식으로 오해하는 척 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오해하도록 해 겁을 주곤 한다. 회사와 오너를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얘기다. 재벌 해체는 각 회사들을 따로따로 떼어내 각자 도생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오너가 주식을 제대로 갖고 제대로 경영을 하는 좋은 회사는 그대로 두면 된다. 회사가 다른 회사에 투자를 하고 그 회사가 또 순환 서커스 투자를 하는 형태로 묶어두고 기묘한 방식으로 지배권을 갖는 행태는 이제 누가 반대할 것도 없이 존속하기 어려워지지 않았나 싶다.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이 같은 경영진 아래 있을 이유가 없다. 삼성전자도 몇 개 막강한 회사로 나누면 전체가 지금의 삼성전자 하나보다 더 커진다. 즉 고용이 무지하게 늘어나게 돼있다.

최근 재벌 회장님들 몇 명이 구속됐다. 그 분들이 바보가 아니다. 변호사·회계사 다 자문 받아 한 일들의 결과로 감옥에 갔다. 필요도 없는데 탈법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필요해서 한 일이다. 내가 보기엔 그것이 대부분 지배권 유지를 위해 무리수를 둔 것이다. 회사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해 탈세, 횡령, 비자금 조성, 주가조작, 자금세탁 등 온갖 불법행위가 불가피하다면 이미 회사가 망했음을 의미한다. 이래저래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탈법을 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탈법을 해도 지배권 유지가 어려울 뿐 아니라, 지나간 탈법들이 모두 드러나기 시작했다. 마음에 드는 정권이 한둘 더 들어 온다고 대세를 막을 수 있을까. 아니라고 본다.

이럴 때 큰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재벌들이 자발적으로 해체를 시작하는 대신 그룹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해 과거에 무리수 둔 것을 용서해주는 것이다. A회사의 돈을 빼서 B회사에 집어넣은 것은 물론 A회사의 주주에 대한 배임·횡령이다. 그러면 B회사에서 단계적으로 갚도록 하고 법적·실질적으로 분리하는 것이 옳다. A와 B 속에 갖고 있던 오너의 주식을 소각하는 정도가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구태여 감옥에 넣고 개인을 징벌적으로 괴롭힐 필요가 없다. 개인을 징벌하면서 사회가 느끼는 쾌감, 그 결과가 항상 좋지만은 않다. 지금 재벌회장들을 감옥에 넣는다고 사회가 득 볼 게 뭐가 있을까. 차라리 건전한 방향으로 재벌을 해체해나가면서 튼튼한 회사가 수 백 개 나오는 게 좋다.

조조가 80만 대군을 거느리고 쳐들어 내려오다가 배와 배를 연결한 ‘연환계’에 걸려 제갈공명-주유팀의 화공에 당한 것을 생각해보라. 스페인의 아르마다가 영국 함대에게 깨지는 것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조조 휘하의 함대가 각자 쳐내려 갔다면 결과가 다르지 않았을까.

재벌그룹 쪼개면 일자리 크게 늘어

한국경제, 불확실성이 높은 지금 코스를 바로 잡아야 한다. 자칫하면 가계부채 대란, 금융기관 부실, 계급투쟁적 상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문제해결의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재벌의 발전적 해체다. 그렇게 하면 반드시 고용이 늘어난다. 지금 경제구조로는 고용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일감 몰아주기, 상속세 안내기 등등 편법으로 지탱해온 회사 주식은 국가가 국민연금 등을 통해 소유하는 것이 좋겠다. 큰 죄가 발각 나서 감옥에 가게 되신 오너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대신 해당 재벌을 건전하게 해체한다. 재벌그룹을 해체해 여러 기업으로 나누되 대기업과 하청이나 을의 관계를 맺지 못하면 생존하지 못하는 현실을 타파하도록 대기업이나 방계회사는 진출하지 못하는 업종·지역을 지정한다.

둘째, 주택공급 축소와 주택쿠폰 발행이다. 신혼부부들이 아이를 가지면 1억원 정도 주택 쿠폰을 나눠 준다. 쿠폰은 다른 데 못쓰고 집 살 때만 사용할 수 있다. 그것을 받고 집을 판 사람도 어딘가 살아야 하니 그걸 다른 집 사는 데 쓰게 된다. 그렇게 주택시장에서만 돌리자는 것이다. 쿠폰이 돌고 돌면서 다른 물가는 올리지 않고 주택가격만 안정시킨다.

셋째, 아직 한국의 국가신용도가 좋다. 이럴 때 국제시장에 나가 대규모 헤징을 할 필요가 있다. 금융기관과 정부가 실질적으로 보증을 서주고 있는 공사들이 헤지하도록 한다. 올해 안에 하는 것이 좋다.

재벌 개혁은 박근혜 대통령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이었다면 재벌의 언론장악, 말꼬리잡기, 반박하기로 날 새고 밤 샜을 거다. 무슨 소리냐. 말로 해서 해결 못할 일, 주먹으로 밖에 해결 못할 일들은, “말? 나 그런 거 잘 못해” 하면서 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한 대통령이 역사에 너무 많은 공헌을 하려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두어 개 뭔가 만드는 형태의 공헌을 하고, 두어 개 정도 나쁜 것을 없애는 공헌을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김영삼 대통령의 경우 실명제를 했고, 하나회를 없앴고, 그 정도면 됐다. 그리곤 나머지는 최소 합격점만 맞으면 된다. 즉 IMF 사태 같은 낙제과목이 없으면 된다는 것이다. 모두 ‘수’를 맞으려다 낙제한다. 한 두어 과목 ‘수’를 받고, 나머지는 ‘미’ 정도로 하는 것, 그게 합리적인 통치다.

박 대통령이 한국 재벌을 해체해 수 백 개의 튼튼한, 각자 진정으로 독립된 큰 기업들로 만드는 일을 꼭 해줬으면 좋겠다. 그러면 고용문제도 해결되고, 부동산과 복지 문제도 상당히 해결된다. 그리고 역사에 제 몫을 한 대통령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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