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경제토크] 기업가는 도둑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재벌과 재벌총수를 잘 구별하지 못한다. 그건 경제민주화의 관전포인트가 아닌가 싶다.
재벌총수를 욕하면 재벌을 옹호하는 ‘허접한’ 두뇌 소유자들이 많다. 전경련이 발표하는 성명서들도 가만히 보면, 그런 허접성을 강력하게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재벌총수가 구속되었다… 그런데 왜 전경련이 나서는지 참 우습다. 그 단체의 설립목적 자체가 기업의 공동이익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인(人), 즉 자연인들의 모임인 전국 ‘경제인’ 연합이라서 그런가 보다.
사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전경련은 해체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자연인이 아닌 법적 존재인 기업의 이익을 대표하는 것이 정상이 아닐까?
기업과는 구분되는 자연인들의 집합, 그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차라리 범현대가, 범삼성가, 범LG가 이렇게 정씨, 이씨, 구씨, 허씨…까놓고 이렇게 모이는 것이 다 솔직하고 정직하지 않나 싶다. 하긴,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재벌그룹의 기조실장들 모임이 있었다. 요사이 생각하면 웃기는 일이지만.
재벌총수도 재벌기업과 자기 개인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그래서 회사 A에서 돈을 빼어 회사 B에 집어넣는 일이 배임횡령이 되는 걸, 심정적으로 이해하질 못한다. 일감몰아주기가 왜 배임인지 말이다. 그러니, 구속되어도 억울하기만 하다. 큰 오해를 하고 있는 거다. 기업과 개인을 구별하지 못하는 거다.
직원들, 임원들은 말할 나위도 없다. 총수개인에 대한 충성과 기업에 대한 충성이 같다면 문제가 없지만, 어느 케이스에 그 두 가지가 다른 것이라면, 당연히 후자를 택할 임직원이 몇명이나 될까? 오히려 ‘총수님께 충성바쳐서 대신 감옥가는 특권을 목말라하면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기업은 흥하고 망한다. 따라서 그 전반적인 생을 통해서 국가에 이바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무조건 기업가를 도둑으로 보면 곤란하다.
기업은 일단 세금을 무척 많이 낸다. 또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낸다. 가끔은 국가에 크게 기여를 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수년 전 통신사업자 신청하면서 각 재벌기업마다 수천억씩 신청비를 국가에 바쳤는데 살아남은 기업은 몇 안된다. 대부분의 신청자들은 수천억원씩 국가에 헌납한 셈이다. 그 당시 재벌총수들의 개인재산도 많이 헌납한 거다. 어떤 의미에서는 국가경제라는 것이 기업가들에겐, ‘중간에 가끔은 따고 있다는 기분은 들지만 집에 갈 적에 보면 결국은 다 잃는’ 라스베가스 같은 그런 면이 있다. 지난 50년간 명멸해간 기업들을 보면 가끔 그런 기분이 들기도 한다. ‘결국 망할 걸, 뭐 그리 불법도 하고 그리 욕심도 피우고 그리 모질게 살았던고?’
국가 전체로 보면, 밤잠도 안 자고, 부인들 계 시키고, 새벽부터 일에 몰두하며 국가에 그 많은 돈 기부하고(본인은 기부하는지도 모르게 말이다) 사라져 간 사람들이다. 정말로 “오른 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한다”는 거와 다름없는 셈이다.
재계 1000위 기업 중에 향후 10년간 살아남을 기업이 몇개나 될까? 가령 800개라고 하자. 그러면 200개 기업은 국가에 엄청난 기부를 하고 사라지는 거다. 밤잠 안 자고 일하고, 개인재산 모조리 동원해서 국가에 기부하는 거다.
사실, 그런 숨은 애국자가 많은 자본주의가 훨씬 풍요로운 건 당연한 일 아니겠나 싶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개인재산이란 허상을 보여주고 그걸 향해 무지막지하게 뛰게 만드는 거다. 대부분의 기업이 사실은 결국 다 망하는데 말이다.
나 역시 기업하면서 캐나다 정부에 수천만 달러 정도의 세금을 갖다 바쳤다. 캐나다 국민에게 엄청 많은 보수도 지급했다. 우리 회사도 궁극적으론 망할지도 모른다. 그러고 나면 캐나다 정부만 득을 보는 거다. 회사가 더 커지고 오랫동안 생존했다면 수억 달러 아니 수십억 달러 갖다 바치는 걸로 결판날 것이다. 나나 혹은 우리 아이들가운데, 누가 경영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모두 뼈빠지게 공부하고 뼈빠지게 일해서 캐나다 정부에게 갖다 바치는 셈이다.
적당히 놀고, 적당히 즐기고, 그렇게 산 부모와 아이들이, 몇십년 후 우리 가족을 비웃을지도 모른다. 적당히 놀고 싶은 생각이 가끔은 불현듯 든다. ‘사실은 다 내 것이 아냐’ 그런 생각 말이다.
그럴 때 스스로에게 말한다. “기업가는 도둑이 아니야, 절대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