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의 세계경제대진단(4)] 모두가 ‘디폴트’상태에 빠졌다

과잉채무가 세계경제 발목…한국 채무자 일방적인 ‘징벌’ 상태

현대자본주의체제라는 버스가 자기파괴라는 필연을 향해서 발악적인 속도로 뛰어갈 적에 승객의 한 사람으로 어째 걱정이 되지 않겠는가? 남미의 썰렁한 조크다. 안데스산맥의 위험한 절벽 길에 달리는 버스 운전사에게 승객이 좀 천천히 가자는 뜻에서, “무섭지 않으셔요?”라고 물었더니, 운전기사가 “승객님, 무서우시면 저처럼 눈을 감으셔요…”라고 말했다.
맞다! 차라리 눈 감는 게 날지도 모르겠다. 못 피할 재앙이라면 차라리 오늘을 편하게 사는 것이 지혜일 것이다.

지금 전 세계에는 채무가 너무 많다.
정부건 가계건 개인이건 ‘빚, 빚, 빚’이다. 경제가 세계전반으로 골병들고 있어서 잔치라고는 빚잔치밖에 없다. 빚을 꿔주는 채권자도 알고 보면 다른 곳에서 빚 내서 다른 사람을 꿔주고 있다. 빚이 빚으로, 그리고 그 빚도 다른 빚으로 엮여있다. 1600년 이후 인류가 발명한 소유권과 주식이라는 기가 막힌 제도가 힘을 못 쓰고 빚에 삼켜져 버렸다. 즉 자기자본(Equity)이 채무(Debt)에 먹혀버렸다. 그런데 전 세계가, 그 중에서도 특히 한국이 채무자에게 일방적으로 너무 징벌적이다. 거기다 신분적으로도 영원한 징벌을 가해온다.

채무자는 빚더미의 징벌적, 신분적, 영구적 압박과 탄압 속에 비탄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과잉채무 원인은 신자유주의의 횡행에 비롯됐다. 그 둘은 늘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예를 들자. 모기지론을 얻어서 집을 샀다. 못 갚았다.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면 집이 제값에 팔리고, 은행은 모기지 원금과 받았어야 할 이자를 가져간다. 채무자는 남은 돈으로 새 생활을 시작하고, 이렇게 되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집이 제값에 팔리지 않고, 경매를 통해서 헐값에 팔린다. 그럴 경우, 미국은 집주인(채무자)이 빈털털이로 길에 나앉고, 한국은 대부분 그렇게 되면 집도 날라가고 추가로 수억원 개인 부채가 남는다. 연체이자, 사무비, 경매비용….

그리고 남은 부채는 은행들이 만든 채권추심회사로 일단 넘겨졌다 대부업체로 넘겨진다. 이러면 사회의 기본구조(Fabric)가 전반적으로 헝클어진다. 사지 멀쩡한 정상인인데,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반쪽 인간이 되어버린다. 채권추심업체의 등살에 못 이겨 주소고 뭐고 다 없어진다. 채권추심업이라는 것이 그 사람에게 돈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어디선가 돈을 또 꿔오라는 거다.

그런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과 기업, 그리고 정부가 너무 많다는 것, 바로 그게 세계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그렇다. 일본이 제일 심하다. 일본을 지배하고 있는 시대정신은 바로 ‘빚’이 아닌가 싶다. 전 세계에 채무가 너무 많고, 그 중 많은 채무자가 이미 빚을 갚을 수가 없고,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처지에 있다.

엄격한 의미에선 거의가 다 디폴트 상태인 듯하다. 수년전 미국에서 리먼 형제 사건이 터지고, “월스트리트를 점령하자”는 운동과 채무자만 닥달할 것이 아니라 채권자들이 처음부터 책임있게 대부를 해주도록 하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흐지부지 됐다. 빚의 힘은 막강해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다.

필자는 세계적으로 Debt-Equity 스와프가 대규모로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질적으로 디폴트 상태에 있는 수많은 경제인구를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하도록 해줘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세계경제가 절대로 살아날 수 없다.

서민 무담보 대출에 관해서는 채무자가 빚을 못 갚으면 채권자가 직장을 주선해주는 것이 옳다고 본다. 직장을 주선해주어서 거기서 나오는 임금의 일부로 채무를 갚도록 하는 것이다. 직장도 주선해 줄 수도 없는 사람에게, 그래서 빚을 갚을 수 없는 것이 뻔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고는 신분적으로 괴롭히는 구조가 너무 안타깝다. 그것은 처음부터 장기매매를 목표로 하는 ‘악랄한 약탈적 고리대’일 수밖에 없다. “돈 못 갚겠소. 대신 나를 취직시켜 주고, 거기서 월급의 20%를 떼어가시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권한을 채무자에게 주자는 거다. 그래야 게임이 공정해진다.

그런데, 전 세계에 위와 같이 지극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제도가 실행되고 있는 나라가 몇이나 되나? 없다. 그러니 세계경제가 골골 대고 있다는 게 필자 생각이다.

특히 상환 예측이 어려운 채무자를 많이 만들어 놓으면 그 사회는 정치성향상 보수화된다. 필자는 최근 한국정치의 보수세력의 득세가 여러 이유가 있지만, 사실은 ‘대학생의 생활인화’가 굉장히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라고 본다. 예전 같으면 대학생들이 전국에서 들고 일어났을 일도 조용하다.

한국 보수세력이 야당을 두려워한 적은 없다. 전국 동시다발 시위 즉 학생이 시작하고 회사원이 참가하는 그것을 두려워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원인은 바로 대학생의 생활인화, 정확히 표현하자면 ‘빚이 많다’는 거다. 등록금이 비싸 빚이 많다는 바로 그것이 대학생들을 ‘을의 상태’로 길들이는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본다.

예전에는 대학생들이 빚이 없었다. 잘 살아서가 아니라 아무도 안 꿔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졸업하면 취직이 되었다. 그러나 요즘은 빚도 많고 졸업을 해도 취직이 어렵다.

한국 보수, 나아가 거의 대부분 나라의 정치적인 가장 큰 기둥은 ‘빚’이다. 아파트 가격이 올라야 된다, 그것도 사실 한국 보수의 가장 큰 기둥 중의 하나다. 그러나 아파트를 빚으로 산 까닭에 가격이 내리고 직장이라도 잃으면 길거리로 나앉을 사람들이 많을수록 보수정권에 유리한 거다. “돈이 최고야” “돈 있는 사람이 부러워”, 지긋지긋한 돈 걱정하는 사람들이 보수화하는 거다.

보수정권이 “빚내서 아파트 사라”는 경기진작 정책을 자꾸 펼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많은 사람이 빚쟁이인 사회는 지극히 보수적 정치성향을 띄게 된다.

고대 유대 사회에서는 7년 또는 50년마다 사회 전체에서 빚을 탕감해주었다. 거기에 사회적 번영의 비밀이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노예가 아니라 시민이 생산의 주체가 되는 사회는 활기를 띠며 생산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필자는 요사이야말로 ‘엄청난 고리대시대’라고 본다. 정상 이자율이 20%일 때 21%로 부채를 얻으면, 본인 부담은 1%다. 그런데, 정상이자율이 -1%일 경우 5%를 쓰고 있으면 내 부담은 6%다. 언뜻 보기에 지금의 5%가 예전의 21%보다 낮아 보이지만 그 시절에 21%로 빌려서 돈을 지금보다 쉽게 벌어서 갚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이었다. 정상이자율이 마이너스인 요즘 여전히 천문학적인 이자를 내야하는 사람들이 바로 현대판 노예계급이나 다름없다.

빚 없는 사회는 물론 현실에선 있을 수 없다. 다만 채무자도 당당하게 인권을 누리고 생산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사회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요컨대 채무자의 권리를 보호해주면 경제가 부흥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처음부터 함부로 돈을 꿔주지 않고, 불량채권도 발생하지 않게 된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