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칼럼] 안 배웠기에 정확히 보는 사람들
학교에 많이 다니지 않았지만 유식한 사람을 나는 무척 좋아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도 이상하게 나를 무척 좋아하는 걸 경험했다. 학교에 많이 다니면 훈련을 받아서 좋은 점도 있지만, 사고방식이 묘하게 굳어지는 면이 있다. 뭐든지 시험에 나올까 말까로 생각하고 맞는지 틀리는 지로 생각하고 권위주의적 체계 속에서 생각한다. 선생님에게 야단을 맞을까? 선생님처럼 파워 있고 전지전능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이렇게 된다. 넓은 세상을 훨훨 날아다니지 못한다. 성적? 그건 학교 속의 이야기지 나는 넓은 세상에서 보고 싶은 책 읽고 먹고 싶은 거 먹고… 군대 갔다 와서 성인이 돼서 만난 이런 친구들 말이다.
이런 친구들이 배운 사람들만 노는 물에 들어와서 전혀 꿀리지 않고 당당하게 훨훨 날아다니는 걸 보면 정말 보는 내가 다 후련해진다.
사실 나는 10대 후반에 학교 제도를 떠나 약간의 야인생활을 하였는데 그때 이런 친구들을 두세 명 사귀었다. 대단한 천재들이었다. 대학에 갈 생각도 하지 않는 친구들이었다.
유학 가서 겨우 학위하느라 박박 기는 동안에 한국에서 엄청난 일들을 저질렀다. 그리곤 둘 다 감옥에 갔다. 무학의 천재들이 흔히들 이런 함정에 자주 빠진다. 난 그래도 그 친구들을 참 좋아한다. 요사이는 뭐하는지 한번 찾아보려 한다.
태권도 도장에 몇년 다녔다느니, 합기도가 몇단이라느니 하고 너스레 떠는 놈들 조용히 두들겨 패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그냥 타고난 전설의 싸움꾼같다. 타고 난 사람과 배워서 억지로 꾸겨 넣은 사람은 다르다.
빌게이츠, 학교를 우습게 알았다. 창업했고 성공할 듯하니 전혀 두 번 생각하지도 않고 하버드를 때려치웠다. 내가 보기에 그런 친구는 많다. 내가 IT쪽에 한참 뛸 적에 한국에서 용산전자상가 출신 젊은 도사들도 여럿 만났다. 난 아직도 그 젊은 도사들과의 만남을 그리워한다. 몇몇은 크게 됐고, 몇몇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당시 국제적인 IT전문가들과 그 젊은 도사들을 연결시켜주기도 했는데, 국제적인 도사들도 혀를 내두르곤 했다. 참으로 즐거운 경험이었다.
김동렬이라는 사람이 있다. 자기 말로는 무학이다. 내가 그 사람의 글을 읽기 시작한 건 그 사람도 DRKIM이라는 ID를 쓰고, 학교 많이 다닌 나는 Dr Kim이란 ID를 써서 두 사람이 혼동된 사건이 몇번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분의 우리 사회에 대한 분석력은 엄청나게 예리하다. 솔직히 고백컨대 내가 마치 내 자신이 만든 의견인 것처럼 떠들어댄 많은 내용 중에 이분 것을 슬쩍 훔쳐온 것이 몇개 있다. 난 이분의 광팬이다. 이분은 너무 예리해서 예측이 자주 틀리는 것도 유쾌하다. 세상살이가 그렇게 예리하다고 예측이 다 되는 것이 아니다. 황당하게 바보같은 일이 많이 벌어지는데, 너무 예리한 눈을 번뜩이면 오차가 많이 발생한다. 이분은 그렇다고 본다. 그래서 난 이분의 분석을 반만 믿는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김어준이다. 이 친구도 자기말로는 무학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여기 저기 정보원이 많은 것 같다. 2011~2012년의 한국정치에서 가장 큰 사건은 ‘나꼼수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나꼼수가 없었더라면 2012년 대선은 박근혜 63대 문재인 37정도로 끝났을 것이다. 그만큼 대단하다. 무척 예리하다. 그런데 본능으로 뭘 아는 것 같다. 사실 이번 국정원 댓글 꼼수도 이 친구가 진작 공론화 해두었었다. 그런 정보를 어디서 구하는지 좌우간 이 친구의 정보력은 국정원보다 낫다. 주위사람들의 말로는 정보원이 아니라 감이라고 한다. 대단하다.
증권 분석가들 중에도 이런 친구들이 많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무학에서 나오는 타고난 예리함, 난 거기에 확 반해버린다.
미국에서는 펫분 피킨스, 칼 아이컨, 데이비드 딜러같은 사람들이 있다. 짐 크레이머도 무학의 천재인 줄 생각했는데 웬걸 하버드 법대 출신이다. 그는 꼭 무학의 천재인 것처럼 이야기를 한다. 그걸 자기 상품화하는데 성공했다. 구구절절 이유 붙이지 않고 이렇게 그냥 감을 잡는 사람들에게 나는 반해 버린다.
캐나다에도 신문에 국제관계로 글을 쓰는 분인데, 무학의 천재가 몇분 있다. 국제정세 분석, 족집게다. 조나단 맨토프같은 사람이 그렇다. 그냥 칼이다. 잔뜩 연대만 늘어놓고 결론은 더욱 열심히 하자로 끝맺는 대부분의 국제관계 전문가들보다 백배 낫다. 무학으로부터 뿜어나오는 예지다. 안타깝게 글쓰기를 중지하였다. 이것도 무학의 천재들이 자주한다. 뭔가 더 재미난 게 있으면 그리로 가버린다. 미련도 없다. 나같은 사람만 입맛을 다시면서 안타까와할 뿐이다.
그런데, 이런 친구들이 배운 사람 흉내를 내기 시작하면 망해버린다. 하나도 재미없어지고 전혀 맞지 않는다. 제약업계도 작년 돌아가신 광동제약 최수부 회장을 나는 무척 좋아한다. 그분이 감으로 만든 쌍화탕, 내가보기엔 불멸의 명품이다. 비타500으로 박카스를 이긴 건 이야기할 것도 없고 정말 대단한 분이다. 무학의 감으로부터 뿜어나오는 예지!
많이 배우지도 못했는데, 많이 배웠다고 생각하고, 거기다 전혀 예리하지 않은데도 예리하다고 생각하면 고생길이 열린다. 솔직히 말하건대 한국의 신문에 경제학, 금융 등등 이러면서 글 쓰는 분들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배운 것도 없고 예리하지도 않고 도무지 취할 게 없다. 가치라곤 언제나 틀리는 분들이 ‘그 반대로 하면 되겠네’ 정도의 반면교사로서나 적합하다 할까?
반대로 많이 배운 사람들도 좋아하는 사람이 몇 있는데, 진중권은 내가 무척 좋아한다. 유식해서 그렇다. 나는 그 친구가 해방 후 우리나라 인문학계에서 제일 뛰어난 학자라고 생각한다. 정치판에 끌려들어 와서 학문적으로 손해를 보는 게 영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