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의 세계경제대진단] (2) 기술혁신은 없고 돈은 차고 넘친다
먼저 밝혀둘 것이 있다. 이 글은 전혀 과학적인 글이 아니고 분석적인 글도 아니다. 정확하기보다는 통찰을 목적으로 한 글이다. 분석적인 정확성은 시도하지도 기대하지도 않는다.
요사이 내가 좋아하는 경제학자들 사이에 거의 공통된 의견이 하나 있다. ‘기술혁신, 창의, 발명…’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주로 증권시장에서 ‘먹튀’ 하는데 역할을 다했지 실제적으로 경제 전체를 변화시킨 것은 별로 없다는 얘기다.
즉 18~20세기 초반까지 증기기관, 내연기관, 전기 등의 혁신에 비교하면 2차대전 이후의 플라스틱혁명, 정보통신혁명은 사회전체에 미친 영향이 상대적으로 미미하다는 의견이 내가 좋아하는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거의 공통적이다. 이 얼마나 비과학적이고 비분석적인 이야기인가?
예를 들어, 내가 좋아하는 젊은 경제학자들이 쓴 <괴짜경제학>(Freakonomics)에 보면 세탁기가 인터넷보다 더 큰 공헌을 했다는 주장을 차분하게 전개한다. 참 재미나다. 세탁기는 당시 전기혁명의 와중에 나왔던 수만 가지 발명중 하나일 뿐이다. 전기혁명의 중요성에 비하면 인터넷혁명은 중요성이 수만분의 1도 안 된다는 주장이다.
내가 즐겨보는 책 중에 ‘인류를 움직인 1000가지 발명’ 같은 책 속에도 요즘의 발견 및 혁신 중에 거기 들어가는 것들은 거의 없다. DNA? 좋은 이야기다. 그러나 아직은 그 발견이 이야기와 이론 속으로부터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나온 듯이 행세하다 투자자들과 본인 자신에게 참담한 결과를 초래하고 역사의 뒤안길(감옥 등을 의미함)로 사라진다. 황우석 사건, 최근의 일본 여과학자 사건 등등….
왜 요즘 기술혁신 등이 과거의 혁신에 비해서 별 볼 일이 없는가? 그 전반적인 이유를 한번 생각해보자.
증기기관, 내연기관, 전기, 전염병 예방기술 이 네 가지를 근대화 기술로 부르자. 이전의 모든 기술을 원시 농경기술로 부르고, 그 뒤를 현대 정보화기술로 부르자.
1)현대 정보화기술이 별 볼 일 없이 보이는 것은 비교대상이 워낙 막강해서 그렇다. 근대화기술은 그 중요성의 비교대상이 원시 농경기술이었고, 현대정보화 기술은 그 비교대상이 근대화 기술이다. 아마 현대 정보화기술도 그 비교대상이 원시 농경기술이면 사실 비교가 애매할지도 모르겠다. 근대화기술이 워낙 엄청난 공헌을 했기에 그 위에 다시 하는 공헌의 한계효용이 당연히 체감할 것이다.
개인적인 예를 들어보자. 우리 조부의 시대는 엄청 못 살았다. 그런데 부모의 시대에 사회적 영향력이나 살림살이가 조부의 시대에 비하면 크게 향상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동의하실지 모르겠지만 나는 우리 부모 시대보다 훨씬 잘 산다. 그러나 우리 부모의 시대에 이루었던(조부의 세대을 출발한) 그 상승폭에 비교하면 내가 우리 부모 시대와 비교한 그 상승폭이 형편 없을 것이다. 시골의 장에서 식혜와 수박을 팔던 그 시대로 출발하여 한국의 중요 지도자가 되신 부모세대와 거기서 출발하여 북미와 한국에서 상당히 편한 상태에서 기업을 하고 있는 나의 현재 상황을 비교하면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다들 아실 것이다.
우리 부모세대의 상승폭을 내가 지금 유지했다면 유엔사무총장과 애플 오너 그리고 교황과 달라이라마를 모두 겸직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부모세대의 상승폭과 우리 세대 및 사회에서의 상승폭이 별 볼 일 없어보이고, 허약해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걸 불초(不肖)라고 한다. 내가 못나서도 그렇지만, 비교대상이 잘못 되어서 그렇다.
2)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당시는 인구가 폭증했던 시대고, 요사이는 예전에 비해 인구가 폭증하질 않는다. 당연히 똑 같은 발명도 그 성장률이 떨어지게 된다. 인구감소시대에선 모든 혁신의 중요도가 허약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만약 근대화기술들도 인구 감소시대에 발생했다면 그 중요도가 그다지 괄목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내 이야기로 돌아가자. 우리 부모시대에는 어느 조직에 들어가서 거기서 상대적인 지위만 유지하면 그 조직이 무척 커지기 때문에 캐리어가 끝날 즈음에는 큰 조직의 장이 되어있다. 내가 늘 주장하는 복리의 힘을 이용하라. 피라미드의 힘을 이용하라는 것이 그런 내용이다. 그런데 인구가 감소하는 시기라면 그런 힘이 반대로 엄청 불리하게 작용한다. 상관과 선배들만 잔뜩 있고, 난 언제나 하급자인 그런 시대 말이다.
3)요즘은 솔직히 돈이 너무 많다. 그래서 돈이 돈을 번다. 자기가 알아서 움직인다. 머니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실물에서 뛰는 사람들보다 돈을 더 번다. 내가 보기엔 많은 재능들이 머니게임 쪽으로 흘러갔다. 미국에서도 머리 좋은 사람들이 이공계로 가는 것이 아니라 월스트리트로 가는 추세가 오래 지속되어서, 많은 식자들을 우려케 했다. 이런 경향이 오래 계속되면 그 사회에서 정말로 끝내주는 진정한 혁신이 나오기가 점점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또 기술혁신이라고 학계에서 튀어나오는 것들을 보면, 진정한 혁신이라기 보다는 주가조작하려는 일들이 더 많다. 예전의 근대화 기술혁신 시대에도 물론 그런 일들이 있었지만 요새처럼 그렇게 황당하지는 않았다.
교류를 써야 한다는 테슬러와 직류를 써야 한다는 에디슨간의 혈투, 과연 누가 이겼을까? J.P.모건이 이겼다. 바로 그때, 제2차 산업혁명은 끝나고, 금융의 시대가 열린 거다.
4)조금 더 철학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근대화 기술은 사람에게 더 많은 가용시간을 늘려 주는 기술들이 대부분이다. 3시간 걸리던 출퇴근을 30분에 하니 그만큼 쓸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세탁기도 하루 걸리던 세탁을 1시간에 할 수 있으니 쓸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전염병 예방기술도 30년 밖에 허락되지 않는 수명을 70년으로 늘려주니 가용할 시간이 무척 늘었다.
그런데, 정보화기술은 많은 경우 그렇지 않다. 시시콜콜한 정보를 인터넷 검색하느라, 게임하느라 시간을 낭비한다. 도대체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의 여배우가 차에서 내리는데 치마속이 보였다는 그 정보가 왜 많은 사람에게 중요한지 도저히 모르겠다. 우리 회사처럼 전자상거래에 전사의 운명이 걸린 경우도 있지만, 많은 사람의 대부분의 경우 인터넷으로 인해 아주 많은 시간이 낭비된다. 나만 해도 저녁에 잠들 적에 ‘에이 괜히 쓸데없이 불필요한 내용 많이 봤네’라면서 후회를 한다. 정보화기술은 시간낭비적인 면이 많다. 아주 비생산적인 면이 있다. 의자에 이렇게 사람을 오래 앉혀놓으니 온갖 질병이 다 발생한다. 폭력물은 텔레비전에 나오지 않도록 하는 그런 소프트웨어처럼 별 필요 없는 내용은 검색이 안 되도록 하는 그런 앱이 있으면 나는 당장 사겠다.
5)조금 더 철학적으로 한발 더 가자.
(이 항목은 이해되는 분들만 이해하시고 전체 이야기 줄거리와는 별로 관계가 없으므로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너무 신경쓰지 말기 바란다) 근대화기술은 물리화학적이고 정보화기술은 수학적이고 관념적이다. 내가 보기엔 물리화학적인 면에 돈이 발생하고 수학적 관념적인 면에서는 영향력이 발생하는 것 같다. 어떤 행동에 마찰(Friction)이 많이 발생하는 시대에서는 돈이 없으면 모든 일이 힘들지만, 일단 마찰이 없어지고 나면 돈도 돈이려니와 영향력이라는 새로운 상품이 가끔은 더 힘을 쓴다. 파워블로거 예를 들자. 예전 같으면 그 사람이 자기 의견을 하루에 두사람 정도에게 알릴 수 있었을 것이다. 신문사에 잘 보여야 수십만명에게 알릴 수 있다. 그래서 신문사 사주가 ‘밤의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정보전달 과정에 마찰이 많아서 그렇다. 그러나 요사이는 자기가 확실한 아이디어만 있으면 하루에 돈도 들이지 않고, 수백만 아니 수천만명에게 자기의 의견과 콘텐츠를 알릴 수 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배급사 등을 통하지 않고, 수십억명에게 보여진 것을 생각해보면 안다. 문제는 뭐냐? 배급사 등이 돈 벌 기회가 없어진 거다. 따라서 정보화기술은 영향력 확산이라는 면에서는 아주 큰 공헌을 했지만 돈이라는 것이 얼마만큼 벌리는가로 따져보면 그다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거다. 싸이보다도 훨씬 팬의 숫자가 적었을 웬만한 가수가 싸이보다 돈을 더 벌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싸이 때문에 레코드회사가 떼부자가 되었다는 소리도 없다. 돈은 아날로그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아날로그적 존재이다. 디지털은 영향력의 영역이다. 돈으로만 따지면 정보화현상이 허약하게 보일 수 있다.
6)요즘 발명이란 것도 보면 뭐 하나 큐트한 아이디어로 살짝 히트쳐서 떼부자 되었다는 소문 나고 금방 사라진다. 스마트폰에 있는 어떤 기능은 1년 뒤에는 아무도 기억 못한다. 예전의 혁신은 그렇지 않았다. 쉽게 뜨지도 않았고, 떴다 하면 오래갔다.
7)우주의 대부분 현상에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 한계생산성체감의 법칙이 적용된다. 아무리 의술이 발전하더라도, 평균수명 30세를 80세로 만든 그 정도의 화끈한 혁신을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평균수명을 200세로 만드는 기술일진대, 요사이 의료혁신이라고 해봤자 늘 5년 뒤에 실용화된다고 하면서 증권가격이나 올려놓고, 5년 뒤에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내용이 대부분이 아닌가. 평균수명 200세는커녕 평균기억력 5년부터 먼저 갖춰야하는 그런 내용들이다.
나는 늘 Big thing, Next Big Thing등의 표현을 사용하면서 뭔가 비전이 있는 듯한 인상을 주려는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