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의 세계경제진단 5] ‘시대정신’이 돼버린 ‘조(兆)’ 단위

Zeitgeist라는 말이 있다. 헤겔이 만들어낸 말이라곤 하지만, 헤겔 본인은 그런 말 한 적이 없다고 펄쩍 뛰었다고 한다. 하여간 한국어로는 ‘시대정신’이라고 번역한다. 영어로는 ‘Spirit of Time’이라고 번역하기도 하고, ‘Spirit of This Age’라고도 번역된다. 성경에도 그런 표현이 여기저기 출현한다.

그 시대에 유행하는 사상을 의미한다. 당대의 문화의 공통적인 특징을 의미하기도 한다. 누가 내게 “2014년 현재의 시대정신은 뭐냐?” 고 묻는다면 ‘Billion Dollar(1조원)’라고 서슴치 않고 말하겠다. 필자가 이 주장을 한 것은 이미 오래 되었다. 1988년 어느 신문에 쓴 칼럼에서 “몇 년 안에 사람의 경제적 사고방식 중에 ‘조’ 단위의 돈이 가장 중요한 단위로 자리잡는 시대가 오고 있다”고 쓴 적이 있다. 당시 약간 미친 사람으로 취급 받았다. 그런데 그 시대가 와버렸다. 요새는 ‘조’가 경제의 기본단위, 아니 시대정신, ‘동네강아지 짓는 소리’가 되어버렸다.

필자 친구 중에, 조 단위의 부자가 된 사람들이 몇 있다. 그 친구들도 ‘조’ 단위로 들어가는 바로 그 순간, 사람이 확 변하는 걸 확실히 알 수 있다. 성층권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다. 가끔 가다 “형님 형님” 하면서 연락오던 친구들도 일절 연락이 없어지고, 전화해도 비서가 받고, 한번 만나자고 연락해도 이메일을 씹는다. 많이 컸다는 얘기다.

필자만 하더라도, ‘조’ 단위로 들어간 부자 친구들에게는 알아서 연락을 잘 안하게 된다. 뭐 연락하지 말라고 면박받은 것도 아닌데, 그냥 괜히 위축이 되는 것이 느껴진다. ‘조’라는 숫자가 갖는 영적 위력, 사회적 영향력이 분명이 뭔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디가도 왠만해선 움추려들지 않는 필자가 이렇게 쉽게 무너질리 없다. 분명히 뭐가 있다.

그리고 금융기관에 가서 뭔가 이런저런 딜을 할 적에도, ‘조’ 단위 사이즈의 딜을 할 적과 그에 못미치는 딜을 할 적에 분명히 다른 것을 느낀다. 다른 물이고, 다른 리그고, 우반 열반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 대학교와 고등학교의 차이 같은 느낌이다. 요사이는 금융기관에 가서 몇 천억원 짜리 딜을 할려면, “작은 딜인데요, 바쁘시겠지만 이런 딜도 신경을 좀 써주셔요…”라고 시작을 미약하고 비굴하게 해야 하는 거나 아닐는지? 좌우간 그런 느낌을 받는다. 몇 천억짜리 프로젝트는 “시작은 미약하나…”라는 성경구절을 걸어놓고 시작해야 되는 그런 시대가 온 것이다.

얼마 전 토론토에 가서 내 딴에는 상당한 사이즈의 딜이라고 몇백억 짜리 딜을 의논해 보려고 했다. 그런데 상대방 반응이 “그건 마이크로(Micro)딜도 아니고, 나노(Nano)딜도 아니고, 마이크로-나노 딜”이라고 해서 정말 부끄러웠다. 세상은 이렇게도 빨리 성장했버렸는데, 조그만 우물 속에서 노닥거리면서 히히덕거리며 살아온 필자의 지난 몇년이 참 한탄스러웠다. 그러면서도 잘난 줄 알고 살아왔으니, 게다가 우리 부모님은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셨을 것을 생각해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보기엔 분명히 ‘조’ 단위의 ‘그런 세계’와 ‘그렇지 못한 세계’가 확연히 분리되기 시작했다. 그렇지 못한 세계에서는 그런 세계를 동경하고 감탄해하고 흠모하고 존경하고 복종하고 순종한다. 그런 세계는 그렇지 못한 세계와는 될 수 있으면 상관하지 않으려 하고, 될 수 있으면 거리를 두려하고 혹 접촉이라도 되면 뭔가 귀찮아질까 두려워하여 경비용역회사를 불러야 되나, 세상이 이렇게 돼버렸지 않나 싶다.

분명히 그런 것을 느낀다. 조 단위 부자는 그냥 부자가 아니라 힘이 있는 부자다.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사람이 된 거다. 반대의 경우는 구시대의 퇴물이 된 거구. 사람이 아무리 먹고 마시고 해도 아마 평생 백억 쓰기도 힘들다. 그래서 조 단위 부자라는 것은 자기의 필요, 쾌락을 위한 부의 축적이란 단계를 훨씬 넘는다. 조 단위 이상을 벌어들이는 사람은 일단 다른 사람에게 무한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다는 의지를 천명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거의 무한한 돈을 소유한 몇몇 개인 대다수의 다른 인간에게 무한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것이 바로 요사이의 시대정신인 듯하다. ‘조’, 이건 벌써 영향력이지 부가 아니다. 그래서 ‘조’라는 단위의 돈은 뭔가 영적인 수준의 교만과 자신감이 들어가는 숫자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필자가 바로 “지금은 ‘조’가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다”고 감히 말하는 것이다.

백만장장라는 말은 존 로(John Law)가 200년 전에 프랑스에서 한판 벌였을 적에 생긴 단어다. 부자의 단위가 백만 달러라는 이야기다. 그 단어가 한참 사용되었다.?요사이는 억만장자(Billionaire)가 묘한 뉘앙스를 장착하면서 시대정신의 가운데로 들어섰다.

내가 초등학교때는 한국에서(한국사회에서는) 십억원이 요사이 조 같은 ‘그런’? 힘이 있었다. 당시 경제각료 중의 한 분이 내게 ’10억원 손에 있으면 다른 것 아무 것도 할 필요없어…’ 라는 말씀을 한 적이 있다. 기억이 생생하다. 대학교가 되니 그게 100억원이 됐다. “100억원 있으면 아무 하고 바람 피워도 되고, 아무에게 반말해도 되고 어느 누구에게나 잘 보일 필요없어. 돈으로 해결하고 내가 내 돈 쓰고 살면 되니까….” 그런 말이 오갔다. 연속극에도 돈 없다고 여자집에서 혼인을 거부당하자, 청년이 50억원을 모으면 찾아오겠다고 비장한 표정을 짓는 그런 장면이 자주 나왔다.

1920년대는 “내가 100만달러가 있다면”이란 노래가 있었고, “처음 100만달러 벌기가 어렵지, 그 다음은 돈이 돈을 벌어와…”라는 말도 유행했다. 그런데 요사이는 ‘그 단위’가 ‘조’원이 됐다. ‘그 돈’ 사이즈가 커지는 속도는 필자 보기에 평상의 인플레이션의 속도보다 약 10배 더 빠르게 성장하는 것 같다.

“몇천억 서너 번 하면 조가 되는데 뭐 그리 다를까?”라고 생각하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몇 십억 몇 번 해서 몇 백억 만들고 그거 몇 번 해서 몇 천억 만들 수 있다는 사람은 그렇게 생각을 할 지 모르나 사실 전혀 그렇지 않다. 사이즈가 커지면 당연히 도달할 수 있는 연속선상의 그 다음 점이 아니라, 조 단위 즈음해서 확연히 다른 차원으로 ‘콴텀점프’를 하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정신을 대변하게 되는 것이다. 요사이 몇백억 부자가 몇천억 부자되는 것은 사업능력과 운이 좋으면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연속선상의 성장인데, 몇천 억 부자가 조 단위로 들어가는 것은 뭔가 고차원으로 올라가는 시대적 콴텀점프라는 얘기다. 전혀 과학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시대정신이라는 토픽자체가 그렇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거의 모든 분석을 ‘베이비부머’라는 컨셉을 중심으로 경제현상을 분석하면 대략 맞아 떨어졌다. 그전 세대, 베이비부머, 이후 세대 이렇게 3개로 나누어 하는 분석들이 잘 맞아 떨어졌다. ‘Overlapping Generation Model’이라고 해서, 경제학 모델도 산뜻한 모델들이 많았다. 아마 제일 잘 만든 경제학 모델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요사이는 1)조 단위의 사람들 2)잔챙이들 중에서 말 잘 듣는 잔챙이 3)말 잘 안 듣는 잔챙이 이렇게 세그룹으로 나누고 그들 그룹 사이의 다이나믹스를 분석하면 잘 맞을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조 단위의 많은 수의 부자들이 큰 회사를 굴리거나 해서 실물로 그 사이즈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부를 거의 전부 현금(또는 현금성 자산)으로 재어놓고 있다는 거다. 그게 요사이의 시대정신이라는 것이다. 그게 이글을 관통하는 필자의 생각이고 이글을 쓴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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