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당신은 가지셨나요? ‘그냥 좋은 사람’을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 문인협회 명예회장] 작년 11월 펴낸 필자의 수필집 3권 중에 첫번째 책 제목이 <그냥 피는 꽃은 없다>다. 그런데 꽃만 그냥 피는 꽃이 좋은 것이 아니라 사람도 <그냥 좋은 사람>이 있다. 조건이 없는 사람이다. 그냥 만나기만 해도 좋고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으로만 통해도 그냥 좋은 사람이 있다. 도무지 물맛 같은 사람이 이런 사람이 아닐까?

사전에서 ‘그냥’이라는 뜻을 찾아보았다. (1)어떠한 작용을 가하지 않거나 상태의 변화 없이 있는 그대로 (2)아무 뜻이나 조건 없이 (3)그대로 줄곧. 이처럼 적혀있다. ‘그냥’은 ‘그’와 ‘양(樣)’이 결합한 말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입말에서 실제로 ‘그양’ 혹은 ‘걍’이라는 준말로 나타나는 경향을 볼 때 이 단어가 본래 ‘그양(樣)’에서 왔다는 설의 타당성이 인정된다는 얘기다. 우리 사전에서는 우선 ‘그 양(樣)대로’, 즉 ‘그 모습대로’의 의미에서 ‘그냥’이 온 것으로 보고 있다.

사람이 좋아지는 이유 중에서 가장 멋진 이유를 꼽으라면 저는 ‘그냥’을 꼽겠다. 논리적이지도 과학적이지도 않은 헐렁한 이유가 ‘그냥 좋아서’다. 사람을 좋아하는 일이 딱 부러진 이유가 있어야만 할까? 그냥은 ‘아무 이유 없이’ 라는 말이기도 하지만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라는 뜻이기도 하다. 어쩌면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 아닐까 한다.

사람이 만든 언어에는 한계가 있다. 인간의 그 복잡다단한 감정을 한 두어 마디 언어로 표현하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생긴 말이 ‘그냥’이 아닐까? ‘그냥’은 여유다. 긴 인생을 살면서 잡다한 이유들은 일일이 상대하지 않겠다는 너털웃음 같은 말이다.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 앞에 ‘그냥’이라는 말 하나만 얹어도 우리 인생은 훨씬 더 헐렁하고, 넉넉하고, 가벼워지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냥 좋은 사람이 가장 좋은 사람이다. 돈이 많아서 좋다거나, 인물이 좋아서 좋다거나, 집안이 좋아서 좋다거나, 학식이 높아서 좋다거나 그런 이유가 붙지 않는 그냥 좋은 사람이 가장 좋은 사람이다. 이유가 붙어 좋아하는 사람은 그 사람에게서 그 이유가 없어지는 날, 얼마든지 그 사람을 떠날 가망성이 많은 것이다.

사람 좋아하는데 이유가 없다. “어디가 좋아서 좋아하느냐”고 물었을 때 딱히 꼬집어 말할 수는 없어도 싫은 느낌이 전혀 없는 사람, 그 사람이 그냥 좋은 사람이다. 말 한마디 없는 침묵 속에서도 어색하지 않고, 한참 떠들어도 시끄럽다 느껴지지 않아 서로의 마음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쁜 사람, 그런 사람이 그냥 좋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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